셰익스피어와 함께 가을을
셰익스피어와 함께 가을을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3.11.0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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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로부터 배우는 삶과 인간 통찰에 대한 지혜’, 수성도서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에 퇴직해서 수성도서관을 찾았다. 논어를 공부하고 철학을 논하고 화랑공원을 산책했다. 그리고 올여름, 장마 끝에 문자 한 통을 받았다.

8월 초에 개강한 ‘셰익스피어로부터 배우는 삶과 인간 통찰에 대한 지혜’ 강좌는 그렇게 시작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권력과 사랑, 우정으로 나누어 맥베스부터 리어왕까지 섭렵하는 방대한 내용을 12주에 돌파하는 강행군이었다. 햄릿과 맥베스 등의 4대 비극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일정표 중의 다양한 주제 작품을 대하고 깜짝 놀랐다.

셰익스피어 강좌(조재희 교수). 대구수성도서관 제공
셰익스피어 강좌(조재희 교수). 대구수성도서관 제공

영국의 부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극작가 셰익스피어(1564∼1616)의 직업에 관해서는 견해가 다양하다. 왕립 극단원이었으며 극단을 소유하기도 했고, 법관이었다는 말도 있다. 그의 작품들은 1590년부터 1613년까지 4기로 구분된다. 대표작인 4대 비극은 3기(1601∼1608) 작품이다. 작품의 무대는 영국에 국한되지 않고,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피렌체와 덴마크 등지이며 역사를 거슬러 고대 로마와 이집트도 포함된다. 등장인물도 왕과 귀족, 법관과 관료, 승려와 수녀, 상인과 시골 아낙네, 형리와 죄수 등 다양하기 짝이 없다.

강좌는 매주 수요일 오후 3시간, 조재희 교수(경북대)의 ppt 강의와 영상을 보고 작품의 필사 낭독과 토론으로 진행됐다. 개강 때 스무 명 가까이 되던 시니어 수강생들이 하나둘 빠져나가 종강 무렵에 겨우 열 명 남짓 남았다. 해당 작품들을 미리 조금씩 읽어 둔 터에 겨우 강의를 따라잡을 수 있었으나, 희곡은 소설과 달리 상상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퍽 힘이 들었다. 수업 전후에 도서관 앞의 화랑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읽고 들은 내용을 반추하곤 했다.

대구수성도서관 화랑공원(2023.10.25). 정신교 기자
대구수성도서관 화랑공원(2023.10.25). 정신교 기자

무더위 속에 ‘권력과 정치’를 주제로 한 작품 ‘맥베스’로부터 시작된 수업이 ‘로미오와 줄리엣’(사랑의 유형)을 거쳐 어느새 서늘한 바람과 함께 ‘리어왕’(우정과 배신)으로 종강을 맞았다.

넓은 영지를 딸들에게 미리 나누어주고 배신당하는 리어왕의 입장에 공감하면서 수강생들은 사전증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중지를 모았다.

한국도서관협회의 수료증과 함께 조재희 교수는 수강생마다 작은 축하 케이크를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제20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기념으로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오페라 '오텔로‘를 관람했다. 17세기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오셀로는 셰익스피어가 이탈리아의 단편 소설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희곡이다. 셰익스피어에 매료된 베르디(1813∼1901)는 말년에 4막의 오페라로 작곡했으며, 1887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첫사랑은 화려한 색깔로 모든 것을 꾸미고 가리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삶에 거미줄이 끼인다. 언어와 문화 등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와 갈등이 커지고 깊어지면서 삶 속에 거미줄은 점점 크게 드리워진다.

​공연 내내 얼기설기 무대를 가리는 커다란 거미줄이 인상적이었다.

’오텔로‘ 제작진과 출연진(2023.11.3., 대구오페라하우스). 정신교 기자
’오텔로‘ 제작진과 출연진(2023.11.3., 대구오페라하우스). 정신교 기자

셰익스피어를 읽고 듣고 보고 생각하며 지낸 행복한 가을이었다. 작품들을 원어로 읽고 도시들을 찾아보는 것을 버킷리스트에 조심스레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