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빙벽 무너질 때마다 펭귄의 평화도 함께 무너져...
남극, 빙벽 무너질 때마다 펭귄의 평화도 함께 무너져...
  • 정양자 기자
  • 승인 2023.08.3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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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도서관 '미래예술의 숲_특별강연'
시민환경연구소 김은희 박사 '남극에 다가가기'

범어도서관은 독서문화프로그램 '미래예술의 숲_특별강연'으로 지난 8월 1일 박수연 홀에서 김은희(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박사의 '남극에 다가가기' 주제로 강의가 진행됐다.  이날 강연은 김은희 박사의 남극 체험기로 실감을 더했으며, 참석한 '지구가 건강해지기 바라는' 지역민 130여 명의 큰 호응 속에 진행됐다.

(좌측)김은희 박사가 지역민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정양자 기자
(좌측)김은희 박사가 지역민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정양자 기자

세종과학기지는 우리나라 최초 남극 과학기지로 1988년 남쉐틀랜드군도 킹조지섬에 세워졌다. 2003년 세계 최초로 남극반도에서 미래자원인 가스하이드레이트의 매장량을 계산했으며, 2009년에는 남극 생태계 보호를 위해 ‘펭귄 마을’로 불리는 남극특별보호구역을 설정한 세계 15번째 나라로 진입했다.

장보고과학기지는 우리나라의 두 번째 남극 과학기지로 2014년 동남극 빅토리아랜드 테라노바만 연안에 세워졌다. 수십만 년 동안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은 빙하와 운석을 분석하고 남극 내륙 안쪽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거점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기지에서 남극 내륙으로 나아가는 독자적인 육상진출로인 ‘K-루트’ 개척이 대표적인 임무로 지난해까지 1740km를 개척했다.

(좌)남극 세종과학기지와 (우)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전경.  사진=해양수산부
(좌)남극 세종과학기지와 (우)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전경.  사진=해양수산부

◇ 빙벽이 무너질 때마다 펭귄마을의 평화도 함께 무너진다

기후변화로 인한 극지방의 눈과 얼음이 녹고 있다. 세종기지 앞 마리안 소만의 빙벽은 지난 60여 년 동안 2 km나 후퇴하고 있다.

최근 남극을 다녀온 세종기지 월동대원들에 따르면 실제 남극 기지 앞바다는 몇 년 동안 겨울에도 얼지 않거나 ‘살짝 어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겨울만 되면 기지 앞 메리언 소만과 맥스웰만이 꽁꽁 얼어붙어 10km 건너 아르헨티나 기지까지 설상차를 타고 다니던 1990년대 초와는 극명히 대조되는 상황이다. 기지에서 약 4km 떨어진 메리언 소만의 빙벽은 지난 50년 동안 1km가량 사라졌다. 그중 절반은 최근 10년 새 사라진 것이다. 문제는 빙벽이 사라지는 속도도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름이 찾아오는 12∼2월이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무너져 내린다.

해안가로 쓸려 온 유빙과 얼음 위 펭귄들 사진=시민환경연구소 김은희 박사 
해안가로 쓸려 온 유빙과 얼음 위 펭귄들 사진=시민환경연구소 김은희 박사 

남극반도 주변의 기온은 매우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로 인한 해빙 감소를 초래한다. 해빙은 크릴새우의 번식에 필수적이다. 해빙 바닥에 유충과 새끼가 서식하면서 여기에 붙어 있는 식물플랑크톤을 먹고 산다. 따라서 해빙이 줄어들면 크릴새우가 감소하게 되고 이에 의존하는 펭귄을 비롯한 남극의 해양생물들의 번식과 생존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남극 세종과학기지가 있는 킹조지섬에는 펭귄들의 집단 서식지 ‘펭귄마을’이 있다. 세종기지에서 남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해안가 언덕에는 젠투펭귄, 턱끈펭귄 등 조류 14종이 살고 있다. 턱끈펭귄 2900쌍, 젠투펭귄 약 1,700쌍, 갈색도둑갈매기 10쌍 등이 사는 조류의 천국이다. 맨땅에 둥지를 트는 턱끈펭귄과 젠투 펭귄에게 펭귄 마을은 알을 낳기에 이상적인 서식지로 손꼽힌다.

남극에서 눈이 녹는 몇 안 되는 곳인 이 마을은 해마다 여름이 찾아오는 11월부터 2월 산란하는 펭귄들로 북적거린다. 이리저리 먹이를 주워 나르는 수컷펭귄, 갓 태어난 새끼 펭귄들이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진풍경을 이룬다. 한눈에 봐도 영락없는 펭귄의 낙원이다. 펭귄의 이웃사촌들도 살고 있다. 남극제비갈매기, 남극도둑갈매기, 윌슨바다제비 등 조류들도 펭귄과 함께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아델리 펭귄과 남극가마우지 등 5종의 조류와 코끼리해표와 웨델 해표가 자주 목격되기도 한다.

펭귄마을은 대표적인 극지 식물의 낙원으로도 손꼽힌다. 이끼를 비롯해 각종 지의류, 현화식물 등 식물 88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 년 새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남극 좀새풀 같은 꽃이 피는 식물도 점점 늘고 있다.

펭귄의 쉼터로 활용되던 빙하와 빙붕이 이처럼 녹으면서 펭귄은 생존에 직접적 타격을 받고 있다. 먹이를 찾다 지친 어린 펭귄이 쉼터를 찾지 못해 죽는 경우가 늘고 있다. 따뜻한 바닷물이 유입되고 남획(濫獲, Over catching)이 계속되면서 주식인 크릴이 줄어들어 굶어 죽는 펭귄도 생기고 있다. 생존 경쟁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세종기지 주변  유빙들 사진=극지연구소
세종기지 주변  유빙들 사진=극지연구소

남극의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국제 공조도 최근 점점 강화되는 추세다. 그런 노력 중 하나가 남극 일대에 조약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남극특별보호구역(ASPA)’을 지정하는 것이다. ASPA에 들어가려면 해당 지역을 관리하는 국가가 마련한 지침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한다. ASPA에는 연구 목적 이외의 출입이 제한되고 설상차 등 동력을 이용한 운송 수단이 금지되는 등 엄격한 보존 조처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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