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만나다] 더 실크 이상수 대표
[CEO를 만나다] 더 실크 이상수 대표
  • 강효금 기자
  • 승인 2023.06.28 13: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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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갯빛 화려한 실크, 비싸지만 최고의 소재”
온도와 환경에 예민한 옷감 실크, 다루기 힘든 만큼 색감 깊어
가업 도우며 개인사업 확장, 부친 ‘향토뿌리기업’에 선정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기술 위에 자신의 노하우를 더해 새로운 기록을 써가는 더 실크 이상수 대표. 이원선 기자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기술 위에 자신의 노하우를 더해 새로운 기록을 써가는 더 실크 이상수 대표. 이원선 기자

비단, 명주실은 누에의 고치를 풀어 실로 만든 것이다. 실의 단면이 삼각형이어서 프리즘 효과를 내기 때문에 옷감이 무지갯빛을 내며 아름답게 빛난다. 실크는 온도에 민감하다. 온도뿐 아니라, 주위 환경에도 예민해서 다루기 힘든 소재다. 입었을 때 가볍고 몸에 닿는 감촉도 부드러우며 염색하면 풍부하고도 깊은 색감을 낼 수 있어, 비싸지만 최고의 소재가 실크다.

더 실크 이상수(32) 대표는 디자인만 아니라, 실크의 전 공정을 다룰 줄 아는 ‘실크 전문가’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 힘든 과정을 마스터하게 된 걸까?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뛰어든 시장

이 대표는 어릴 적부터 시끄러운 기계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밤낮없이 기계를 돌리며 일하는 부모님을 보며, 왜 많은 업종 중에서 이 어려운 업종을 하는지 원망도 했었다고 한다. 학교 다니고 아버지 일을 도우며, 젖어 들 듯 이 일이 직업이 되었다. 어려운 공정, 하나하나 수작업을 거쳐야 아름다운 비단을 얻을 수 있었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매일 공장에서 고생하는 부모님을 보며 일손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졸업하던 해, 그동안 모은 전 재산으로 서문시장에 작은 가게를 얻었습니다. 아버지가 손수 만든 원단을 좀 더 많이 팔고, 좋은 데 팔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더 실크’(대구 중구 대신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시장에 온 아버지는 깜짝 놀라셨습니다. 기계를 돌려 실크를 생산하기만 했지, 직접 고객을 만나 판매하는 일은 생각하지 못하셨지요.”

종잣돈으로 가게를 마련하고, 젊은 혈기로 경영 방법을 연구하고 고객들과의 접촉면을 늘려나갔다. 틈틈이 시간만 나면 누에고치에서 실을 자아내는 법부터 실을 짜는 법, 염색하는 법 등 실크의 전 과정을 경험하고 익히며 실크의 모든 것을 배웠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이면 염색공장을 찾아 염색 과정을 배워나갔다.

“아버지(이종하·70)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김천에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일부터 배우셨습니다. 가난하고 힘들던 시기, 아버지는 먹고 재워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며 그 기술을 익혀 오늘날 ‘나영 실크(경북 경산시 남산면)’를 만들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지난 연말 ‘2022 경상북도 최고장인 및 향토뿌리기업’으로 선정되어 인증패를 받는 모습을 보며 감격했습니다. 솔직히 그 자리에 서 계시는 아버지를 보며 존경스러웠습니다.” 이 대표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빛나는 비단이 탄생하는 것처럼, 묵묵히 그 말 못 할 시간을 견디어 낸 아버지의 모습이 비단을 닮았다고 했다.

옷은 유행이 있지만, 원단은 유행이 없다

이 대표는 실크에 주목하게 된 것은 부모님의 영향도 있지만, 실크가 주는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했다.

“옷에는 유행이 있지요. 1920년대와 50년대, 90년대 옷은 제각기 다른 특색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유행이 있지요. 하지만 원단은 유행이 없습니다. 이 원단에 우리만의 것, 한눈에 우리 것임을 알 수 있는 한국적인 것을 새기고 싶었습니다.”

실크는 일일이 염색도 사람의 손으로 작업해야 하기에 똑같은 색을 낼 수 없다. 염색하는 사람의 감(感)에 의존하는 작업이기에,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하다. 기술을 이어받겠다는 사람이 없어, 기술자의 대부분이 고령층이다. 누에의 종류,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실크의 종류가 달라진다. 그만큼 다루기 힘들고 보관하기도 까다롭다 보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싼 가격의 중국산에 손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들은 실크를 금보다 귀하게 여겼다. 시집가는 딸의 혼수품으로, 원앙금침도 실크로 만들었다. 이제 시대가 바뀌면서 실크의 수요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이 대표는 판매처를 서울 강남과 경기도, 인천 쪽으로 넓혀가고 있다. 아무래도 그쪽이 가격보다 품질을 선호하는 고급 제품을 많이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만난 디자이너들은 젊은 사람이 어떻게 실크의 복잡한 공정을 꿰뚫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는 용도에 맞게 원단을 직조하고 염색하고 고급화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옷도 자리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듯이, 원단도 쓰임새에 따라 직조 방법도, 염색도, 바느질도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2022 경상북도 최고장인 및 향토뿌리기업’으로 선정되어 인증패를 받는 아버지 이종하 대표. 이상수 대표 제공
‘2022 경상북도 최고장인 및 향토뿌리기업’으로 선정되어 인증패를 받는 아버지 이종하 대표. 이상수 대표 제공

‘실패’ 아닌 ‘성장통’

이 대표는 실패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성장통’이라는 말을 쓴다. 그의 부모님은 그에게 도전할 용기를 주었다. 늘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밀어주셨다.

“무엇이든지 해 봐라!”

부모님의 얘기는 살아가는 데 힘이 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저는 ‘실패’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실패라고 하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 같거든요. 대신 ‘성장통’이라는 말을 씁니다. 아이들이 자라나려면 성장통을 겪잖아요. 그렇게 저는 성장통을 겪으며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사)대구경북한복협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니, 세대를 넘어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여러 형태의 패션쇼도 기획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