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 전망대 참새 한 마리
앞산 전망대 참새 한 마리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3.06.12 10:1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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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과 앞산(대덕산)은 대구의 아버지와 어머니
대구시와 팔공산 전경(2023,6.7., 앞산 전망대에서)
대구시와 팔공산 전경(2023.6.7. 앞산 전망대에서)

현충일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앞산 공원을 찾았다.

호국의 성지 팔공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을 환영하는 글을 쓰고 난 후이다. 역사 속에 든든하게 대구를 지켜 온 팔공산의 모습을 정면에서 넓게 바라보고 싶었다. 팔공산이 대구의 아버지라면 앞산(대덕산)은 어머니와 같다. 비슬산과 이어진 산골짜기에서 대구 도심으로 젖줄같은 신천을 흘러내리고 있다.

승용차를 공영주차장에 대놓고 천천히 산길을 걸어 올랐다. 전망대 케이블카의 운행이 10시 반부터라서 맞은편의 은적사를 찾았다. 은적사(隱跡寺)는 고려 왕건이 후백제 견훤에게 공산전투에서 패주하여 숨은 곳이다. 후백제 병사들이 다가오자 신비한 안개가 사흘 동안 산을 감싸 왕건이 목숨을 구해 통일의 대업을 달성하게 됐다. 이후 이곳에 절을 짓고 은적사라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대웅전 옆에 왕건이 숨었다고 하는 작은 굴이 있다.

대덕산 은적사(2023,6.7.)
대덕산 은적사(2023.6.7.)

 

케이블카 첫 손님으로 대덕산을 올랐다. 오를수록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대구시는 그저 뿌옇기만 하다.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앞산 전망대는 산 아래로 2, 3백 미터 내려간다.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커다란 짐승처럼 길게 누워있는 팔공산의 모습이 장관이다. 정면에서 가장 오른쪽으로 영천 보현산과 금호강이 겨우 보이고, 왼쪽에 낙동강이 겨우 보일락 말락 한다. 이곳저곳의 알만한 거리와 고층건물들이 퍽 가깝게 와서 닿는다. 정면에서 11시 방향으로 군위, 의성으로 나가는 국도와 다부동이 희미하게 보인다.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은 다부동 전투에서 패하고 영천으로 올라가 다시 남침을 시도하지만 결국 패주하고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으로 쫓겨 간다. 종군기자인 시인 조지훈은 그의 시 ‘다부원에서’에서 55일 동안의 참혹한 전투 현장과 대구가 바로 지척지간임을 토로하고 있다.

뽀얗게 구름과 안개에 싸인 팔공산은 그저 말이 없다. 잠시 뒤로 물러서 전망대 카페에서 키오스크에서 아내를 도와 비빔국수와 물국수를 주문해서 점심 요기를 했다. 식사 후 아크릴 가드가 달린 바깥 조망대로 나오니 바람이 시원하다. 자그마한 참새 한 마리가 길게 나무 바닥에 누웠다. ‘갈매기의 꿈’이었던가?, 이 참새도 갈매기 조나단과 같이 그저 높이 날아올랐다가 투명창에 부딪혀 변을 당한 것일까?

‘다부동 전투에서 패하여 대구가 적의 수중에 넘어가고 적화통일이 됐더라면, 이곳에 전망대도 카페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이 참새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의 이 참새는 그날 다부동에서 산화한 수많은 병사의 혼일지도 모른다.’

옷깃을 여미고 잠시 묵념한 뒤 돌아서 나왔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산골짝에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지나간다.

앞산 전망대 카페의 참새 주검(2023,6.7.)
앞산 전망대 카페의 참새 주검(202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