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부 권
거 부 권
  • 석종출 기자
  • 승인 2023.06.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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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권은 협상의 결과물이 아니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사실상 지구상 나라에서 최상위 지도국이라는 표현에 저항받지 않는 국가다. 근(近) 며칠 사이 미국 행정부의 디폴트와 관련하여 대통령 바이든과 야당 소속 하원위원장과의 협상을 보면서 우리나라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과 야당 대표와의 관계를 덮어 생각해 보았다.

만약에 미국이 국가부도, 채무불이행, 디폴트 선언이라는 상황이 온다면 세계경제는 상상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축 통화인 달러의 가치는 급격하게 하락할 것이고 국제거래의 결제 대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각 나라에서 보유하고 있는 달러의 가치도 속절없이 하락하게 될 것이다.

현실에서 중국은 우리나라 돈으로 무려 4천조 정도가 넘는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만약 미국이 디폴트를 선언하게 되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나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와 중국의 관계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서로가 의존하지 않으면 매우 불편할 정도로 밀접한 관계임에 틀림없다. 이런 면에서 적도 아군이라야 한다. 우리는 산업화 과정에서 대마불사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설마 미국이’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는 신뢰를 넘어 맹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디폴트 관련 방송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 바이든과 하원위원장과의 협상 소식도 함께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이쯤에서 기자는 미국 대통령이 야당과 국정을 협상하는 모습과 우리나라 대통령이 국회의 입법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포개어 보았다.

행정학 사전에서는 거부권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입법기관(국회)에서 채택한 법률의 성립을 집행부(행정부)가 저지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대통령은 국회나 연방의회를 통과한 법안의 발효를 부인하고 의회에서 재의하도록 요구할 권한을 갖고 있다.’

국회에서 협상력이 없거나, 협상 자체를 거부하거나, 무능하거나, 혹은 무책임의 극치와 함께 남 탓만 하는 다수의 의원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작금의 여당과 대통령실의 움직임을 보면 거부권이라는 커팅칼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비빔밥을 요리하는 주걱과 큰 그릇으로 감칠맛 나는 정치 요리를 할 수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다.

한편에서는 입법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어떤 특정 법률안에 대해 미리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발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회와 행정부 간의 조화나 합의 내지는 협의 의사가 전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독재자가 통치를 위해 오로지 자기편만을 위한 법률 외에는 거부해 버리겠다는 독재적 발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매우 우려스럽다. 항간에는 대법관의 임명 제청에 관하여도 누구누구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를 보면서 삼권분립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보여주는 행태가 맞는지를 의심스럽게 한다.

확증편향의 문제는 고착화되어가는 경향이 뚜렷하여 못내 아쉽지만 ‘함께, 같이’ 꼬인 정국을 풀어 보자고 하는 제안은 칼을 잡고 있는 대통령 쪽에서 취할 행동이라고 해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협상의 황금비를 51:49라고 하는 것도, 이기는 듯 지기도 하고, 지는 듯 이기기도 하는 절묘함을 의미한다고 보면 협상의 부재나 배타적인 국정운영에서 ‘같이’의 부족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너무나 귀에 익숙한 말 ‘큰 정치와 화합과 양보’가 있는 정치를 자유를 외치는 소리를 듣는 만큼 익숙하게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