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향기] 근사록(近思錄)
[고전의 향기] 근사록(近思錄)
  • 정재용 기자
  • 승인 2023.03.2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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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은 삶과 유리된 학문이 아님을, 인간의 삶에 가장 가까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이완재 교수. 이원선 기자
유학은 삶과 유리된 학문이 아님을, 인간의 삶에 가장 가까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이완재 교수. 이원선 기자

대구 향교 명륜대학에서 열린 ‘근사록’(近思錄) 강의로, 유림회관 소강당은 114명의 수강생들로 만원을 이뤘다. 강사는 영남대 철학과 이완재(92) 명예교수였다.

‘근사록’의 의미

‘근사록’은 성리학의 완성자인 주희(1130~1200)가 친구인 여조겸(1137~1181)과 함께 쓴 성리학 입문서다. 성리학 하면 사람들은 흔히 ‘관념적’, ‘비실용적’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런데 정작 저자 본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성리학은 오히려 그 반대다.

책 제목인 ‘근사록’의 ‘근사(近思)’는 ‘논어’에서 가져왔다. 논어에서 공자의 제자 자하가 ‘널리 배우고 뜻을 독실히 하여 절실히 묻고 가까운 것을 생각(近思)하면 그 가운데 인이 있다’(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라고 말하는 내용에서다.

학문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먼 것’이 아닌 ‘가까운 것(近)’, 즉 자신 또는 사람들의 삶과 직접 관련되는 것을 ‘생각해야(思)’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이 바로 타인의 입장을 자기 일처럼 살피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인(仁)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인(仁)과 유학(儒學)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仁)은 ‘사람 인’(人)에 ‘둘 이’(二)를 합한 글자다. 인간관계는 ‘나와 너’ 두 사람의 관계다. 둘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진실로 사랑할 수 있다면 같은 원리를 만인에게 적용할 수 있다. 유학의 유(儒)는 ‘사람 인’에 ‘필요할 수’(需)를 더한 글자다. 수요(需要)할 때 그 ‘수’ 자다. 유학은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도록 하는 학문이다.”

대학(大學)과 주자

이 교수는 “송(宋)나라 때는 ‘사서’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다. 주자(朱子)가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을 뽑아서 사서(四書)로 정했다. ‘대학’은 송대(宋代) 원문의 책(冊) 끈이 끊어지면서 흩어져 죽편(竹片)이 섞여버렸는데 주자가 순서대로 짜서 새로 엮은 책”이라고 했다.

이날 강의는 대학에 관한 내용부터 시작됐다. “이천(伊川)선생이 말씀하셨다. ‘초학자(初學者)가 덕(德)에 들어가는 문은 대학만한 것이 없고, 그밖에는 논어와 맹자만한 것이 없다’ 주자(朱子)가 말씀하셨다. ‘대학은 규모가 비록 크나…… 배우는 자의 일상생활에 간절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바로 ‘근사’다.

주자(朱子), 주자학, 성리학

주희는 근사록의 서문에서 “여조겸이 자신에게 들러 열흘을 머물면서 주자(周子), 정자(程子), 장자(張子)의 저서를 읽고, 그들의 학문이 광대한 것에 찬탄하고, 입문하는 자들을 위해 도(道)에 관계되는 것과 일상생활에 절실한 것을 취하여 편찬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여기서 주자(周子)는 주돈이(周敦頤)를 존칭한 것이다.

주돈이를 비롯한 유학자들의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현상에는 그렇게 되도록 하는 원리가 내재되어 있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현상을 보다 잘 실천할 수가 있다’는 이론을 집대성한 사람이 주자(朱子)이다. 이에 따라 이 학문은 ‘주자학’(朱子學)으로 불리고 ‘인간의 본성이 곧 우주의 원리(性卽理)’라고 주장한 데 따라 ‘성리학’(性理學)이라 불렸다.

실제 쓰임을 위한 학문

여조겸은 ‘근사록’ 후서(後序)에서 “낮고 가까운 것을 싫어하고 높고 먼 것에만 노력을 기울이거나, 차례를 뛰어넘고 절차를 무시해 공허한 데로 흐르게 되면 결국 의지할 곳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찌 ‘근사’라 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을 보는 자는 마땅히 이것을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일상에서 동떨어진 것을 추구해 공허한 데로 흐르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근사록’ 안에서도 ‘책 내용을 기억하고 암송하여 넓게 알기만 하는 것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본뜻을 잃는 것과 같다’(以記誦博識 爲玩物喪志)라고 말하고 있다.

단지 기억하고 암송하는 것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책 내용을 기억하고 암송하는 것은 그것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어떤 쓰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상생활에 응용되지 않는 지식, 인간의 삶에 도움 되지 않는 지식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겠는가?’로 이해할 수 있다.

퇴계가 말하는 진리

‘동방의 주자’라 일컫는 퇴계는 ‘자성록’, 남언경(1528~94)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공부는 그 ‘거대’에 대한 환상과 강박을 떨치는 데서 시작한다. “진리는 일용평이명백처(日用平易明白處)에 깃들어 있다.” 사물의 원리는 일상적이고 단순한 데에서 드러난다는 얘기다.

나날의 삶, 그 신기할 것도 없고 후줄근한 삶에 진리가 있다. 현재의 삶, 삶의 자리에 집중하라. 유교는 환상도, 종교도 만들지 않는다. 다만 근사(近思), 즉 구체적인 것에, 짜잘한 것에 주목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