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 역사와 문화 발굴, 소개에 이바지하다
대가야 역사와 문화 발굴, 소개에 이바지하다
  • 우남희 기자
  • 승인 2023.03.10 22: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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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축제추진위원장을 역임한 유병규 고령노인대학장을 만나다

 경북 고령군은 대구 달성군과 인접한 군으로 8개의 읍·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도시지만 2개의 박물관으로 대가야박물관과 우륵박물관이 있으며 철의 고장이다. 인구는 3만 300여 명이다. 갈수록 고령화 되어 가는데 고령군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한노인회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대한노인회 고령군지회(지회장. 백원치)에서는 이들의 건강한 노후생활, 건강관리, 인문학강좌 등 다양한 교육을 통해 노년을 건강하게 보내는데 앞장서고자 노인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대학을 이끌어가는 유병규 학장님을 만났다.

대한노인회 고령군지회 유병규 노인대학장       우남희기자
대한노인회 고령군지회 유병규 노인대학장. 우남희기자

▶노인대학을 이끌어가는 학장으로서 인사말씀 부탁드립니다.

: 학장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백원치 지회장님을 비롯하여 임원들의 권유로 노인대학장과 노인대학원 원장을 2년 째 맡고 있다.

노인대학과 노인대학원은 일주일에 각각 한 번씩 운영된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노인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대학이 되도록 하고자한다. 개설된 강좌로는 교양교육뿐만 아니라 노래교실, 건강 체조, 전통문화체험활동, 웃음치료특강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이 많아야 한다. 친구들을 만나려면 자신을 가꾸게 되고 자신을 가꿈으로 자존감이 높아지며 삶의 의욕을 찾게 된다. 그러다보면 우울증,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을 수 없다. 노인대학생들이 즐거워하며 건강을 지키는 모습에 학장으로서 보람을 느낀다. 한 번 더 감사한 마음이다.

▶청소년들의 교육에 앞장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평생을 교육계에 몸담은 분들이 많지만 저는 그렇지는 않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을 맞고 6.25 전쟁을 겪은 세대로 가난한 농촌에서 배움의 기회를 갖는 것은 쉽지 않다. 감사하게도 전쟁 말에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나에겐 희망과 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형제들도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녔으니 그 당시 아버지의 학구열뿐만 아니라 재력도 있는 편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정부가 주도한 농촌계몽운동으로 새마을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을 때 고령에서 선봉자로 나섰다. 심훈의 상록수를 읽은 영향이 컸다고나 할까. 그때, 배우지 못한 학생들을 모아“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하자”라는 슬로건으로 뜻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보건진료소 자리에 재건학교를 설립하였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가난한 청소년들을 모아 가르쳤으니 상록수에 나오는 농촌계몽운동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때 가르친 학생들이 800여 명 정도 되는데 뜻있는 분들의 참여로 이진환 초대민선 군수가 교장을 맡았다. 나중에 다산면에 있는 다산중학교 설립자의 도움으로 고령농업기술학교를 고령향교에서 개교하여 청소년들의 교육에 앞장섰는데 교육계의 경력은 이것이 전부다.

노인대학 특강을 하는  유병규학장.       우남희기자
노인대학 특강을 하는 유병규학장. 우남희기자

▶문화원장으로 활동하시면서 가야사 연구에 이바지하였다고 들었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 문화원에 들어가기 전에 고령체육회 일을 했다. 고령체육회 총무, 재무를 맡아 체육발전을 위해 활동하면서 군민체육대회와 도민체육대회 등 굵직한 행사를 진행하다가 우리 지역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고령 문화원 사무국장, 부원장, 원장으로 수년 동안 활동하면서 지역문화 활동뿐만 아니라 향토사 발전에 이바지하였고, 국사편찬위원 사료조사위원으로 위촉받아 대가야국의 실체와 잘못된 사료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예산문제로 직원 1명을 두고 무보수로 일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 당시로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야문화권 지역발전혁신 광역협의회장을 민간인으로 맡았다. 고령이 대가야 도읍지이기 때문에 후기가야의 맹주로써 대가야 역사와 문화를 발굴, 소개하는 일을 주로 했다. 앞서 말했듯 대가야에 대한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대가야국의 성장과 문화』를 발간하였고『고령지방의 마을사』, 『송암 김면선생의 일대기』등의 책자를 발간하면서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고령출신으로 독립운동을 위해 활동한 김철휴선생, 남형우 선생, 김상덕 선생, 최영돈 장로, 김재열 선생 등의 공적비를 세운 것이 기억에 남는다.

가야문화에 대해 자료를 조사하고 연구하다보니 대가야축제 추진위원장까지 맡게 되었으며, 전국적인 축제로 승화시킨 것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평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일을 했다. 나이 들어서 욕심을 내면 보기 흉하다. 이만큼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 이제 인생을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싶다.

유학장은 앞서 한 일 이외에도 제2의 건국 고령군 추진위원장, 문화재보호위원, 지역혁신협의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협의회장, 새마을금고 중앙회대의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고 지금은 시니어들을 위한 교육을 위해 노인대학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