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동 ‘전적기념관’ 최초 제안자 법전사 ‘세계불교 대법황’ 혜륜 큰스님
다부동 ‘전적기념관’ 최초 제안자 법전사 ‘세계불교 대법황’ 혜륜 큰스님
  • 유무근 기자
  • 승인 2023.01.03 15: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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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김영삼 전 대통령 초대도 받은 불교계 큰스님
-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 건립 최초 기획 제안
호국불교 조계종 세계불교 국제 법황청에서 대법황 성하로 추대된 혜륜 큰스님.   <유무근 기자>

 

네팔에서 2021년 12월 5일 세계 큰스님 1천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개최된 ‘세계 대법황 대관식'이 열렸다.

이 행사에서 우리나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법전사’ <호국불교 조계종> 세계불교 국제 법황청 대법황 ‘석혜륜(釋惠輪)’ 큰스님이 ‘대법황’ 성하로 추대되었다.

승가 고승 회의에서 혜륜 큰스님의 평소 활동과 사회공헌 등이 법황의 자격에 손색이 없다 만장일치 추대된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계에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 50년 전 해인사에서 참선 중에 부처님께서 영(靈)과 대화할 수 있는 순간적 기회를 주셨습니다. 참선 속에 다부동 유학산 전투 당시 상황이 그대로 비쳤어요. 다리 어깨에 총을 맞아 피를 흘리고 신체 부위들이 떨어져 나가 절규하는 모습들이 스크린처럼 전시상황 그대로 선명한 형상들이 나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날 밤 운명처럼 부처님의 현몽을 통해 ‘호국영령들의 영혼을 위로하라!’라는 말씀을 직접 들었다. 구천에서 맴도는 영가들을 내가 모셔야 하겠다는 집념에 쌓였다.

                                     ◆ 애국 애족 정신으로 법전사 창건하다.

▶ “자금도 없는데 어떻게 절을 짓는단 말입니까!” “해 보아라!”라는 말씀을 귓전으로 듣고 스님은, 내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애국하고 애족하는 길이 무엇부터 해야 할지를 고뇌했었는데, 이제야 중책을 맡았다는 다짐을 하게되었다.

우선 지역민들을 모아 6.25 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 희생자 전적 기념비 건립 운동을 시작했다. 나라를 위해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바친, 영혼들의 천도와 위패를 모시는 것이 지역민의 숙원 사업이라며 호소하였다. 스님이 할 수 있는 애국 애족 활동을 실천하면서, 유학산 바라보는 가산면 다부동 언덕에 ‘법전사’ 사찰을 창건한 계기가 되었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법전사 본사,당시 격전지였던 유학산이 지척에 있다.    <유무근 기자>

 

▶ 절터 2 천여 평을 손수 곡괭이와 삽으로 주춧돌 자리 잡고, 대들보 하나하나 스님이 손수 올리고, 특히 바지게를 직접 지고 흙과 돌을 날라 소규모 대웅전도 지으며 마을 숙원 사업과 맞추어 하나씩 다져 나아갔다.

오죽하면 동네 사람들이 바지게 지고 밭일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고, “저 중은 꼭 성공하겠다!, 눈만 뜨면 쉬지도 않고 저토록 일하다니!”라고 건강 걱정을 했다고 한다. 지역민으로부터 신임을 받은 것이다.

큰스님의 호국 선불교 조계종 활동은, 다부동 ‘전적 기념비’에도 녹아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몰장병들과 무명의 선열들을 기릴 전적비 건립의 필요성을 진작에 느낀 스님은 지역에서 열 일을 제쳐두고 유치 활동을 계속하였다.

▶ 1980년 초 당시 전두환 정부 때 호국 모범 주지의 한 사람으로 청와대에 초청받은 계기가 있었다. 대통령의 “스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물음에 혜륜 스님은 “다부동에 호국영령을 위한 전적기념관’과 전후 세대의 산 교육장 ‘전적비’가 필요하니 조속히 건립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하여 즉석에서 약속받아 이듬해에 숙원 사업인 전적기념관이 건립되었다. 큰스님의 집념과 공로가 있었다니 실로 놀라운 업적이다. 그러나 내막을 알려고 하는 이는 별로 없다. 부처님의 뜻으로 믿기 때문이다. 법전사에서는 다부동 전투에서 희생된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 해마다 올리고 있다.

법전사 대웅전과 대형 범종. 그 뒤로 유학산 격전지 능선이 보인다.  <유무근 기자>

 

▶ 사찰 창건과정도 큰스님의 피땀이 그대로 배여있는 현장 그 자체다.

스님은 기념비 건립에 맞추어 첫 위령제를 올렸으며, 구천을 떠돌며 배회하는 한 많은 영혼의 통곡 소리와, 가족들의 통곡 소리가 어우러져 30년 만에야 의미 있는 천도재를 올렸다.

당시 마을 주민은 인근 초. 중학교 학생들에게까지 위령제 참가를 안내해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지역민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위로했다.

▶ 이후 합동 충혼비 제막식에는 적극적으로 권유해 김영삼 대통령도 참석하여 친필 시비 휘호를 받았다. 그해 50사단과 함께 전몰장병 유해발굴단을 통해 '다부동 전투' 전사자 유골 700여 구를 발굴했다. 법전사 큰스님이 계획한 ‘다부동 전적기념관’ 합동 안장식 제막식이 전국적으로 홍보하는 지역의 브랜드가 되었다.

▶ 참가 학생들의 ‘글짓기 대회’도 함께 열어 학생들에게도 숭고한 애국정신 교육의 장이 되었으며, ‘눈물로 얼룩진 위령제’라는 제목의 글을 써 대상을 받은 학생을 큰스님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렇듯 포교와 사찰 운영 활동보다, 전몰장병과 순국선열의 뜻을 기리는 일에 더 적극적이었던 큰스님은 호국불교의 조개종 큰 스승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 불교계 종정에서 대법황으로

<한국 호국불교 조계종 종정>

<세계불교 국제 법황청 세계 대법황 성하>

<종정협의회 원로회 최고 고문>

<태국 왓몽코루 대학 불교학 박사/교수>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CEO 과정 20기 수석부회장>

<전국 환경연합 감시단 총본부 총재>

<법전사 청소년 수련원 원장>

<호국불교대학장>

<애국애족 위령제 보존회 총재>

큰스님은 대법황으로 추대될 만큼 큰 업적으로 불교계에 정평이 나 있다.

호국 불교 조계종, 세계불고 법황청 대법황 대관식 때 큰스님이 법황복을 입고 있다.  <유무근 기자>

 

                                  ◆ 봉암 스님을 상좌스님으로 모셔

▶ 혜륜 스님의 승가 과정은 스승으로 섬긴 ‘봉암 스님’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봉암 스님’ 또한 ‘명성 큰스님’을 통해 불가에 몸을 의탁하고 큰 스님이 되신 분이다., 불자가 되기 전에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의 대표로 불렸던 ‘광주학생운동의 선동자’가 봉암 스님이다.

광주학생운동은 1929년 나주에서 광주로 통학하는 열차 안에서 일어났던 일본 학생들과 조선 학생들 사이의 패싸움으로 시작된 민족해방운동으로, 당시 일본 학생들의 성희롱과 조롱을 당한 여학생들을 대신해 일본 학생들에게 조선의 매서운 주먹맛을 보여준 학생이 바로 봉암 스님이었다.

▶ 이후 광주학생운동은 전국 학생운동의 불씨로 확대되었으며, 스님은 일경의 추적을 피해 ‘백용성 스님’의 상좌로 몸을 숨겼다.

이에 따라 ‘봉암 스님’은 ‘용성 큰스님’을 통해 상좌가 되었고, 호국 선불교의 명승(名僧)은 스님이었던 ‘봉암 스님’을 거쳐 지금의 혜륜(惠倫) 큰스님에게 정통으로 계승된 것이다.

▶ 혜륜 큰스님은 늘 생활화된 애국 애족을 불교계에 설파한다. 휴대 전화 신호음도 애국가가 흘러나와 국가관을 고취 시킬 의도로 정통 애국 스님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분단국가로 안보 상태는 제2의 6.25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도 역설한다.

이 때문에 애국 애족 정신을 고취하려고 안보 강의는 거절하지 않는다.

초창기에는 '법전사'를 찾은 신도들조차 스님이 불공에 전념하지 않고 절간을 비워놓고 출강 다닌다며 '안보에 미쳤다!'라는 소리를 대놓고 했다고 한다.

                               ◆ 부처님 가르침을 몸으로 실행

▶ 법전사 사찰내 150여 평의 건물은, 1층은 대강당, 2층은 300여 명 수용 식당과 침대 및 치료실을 갖춘 요양시설, 3층은, 세계 대법황성하 큰스님의 집무실로 사용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별채에 가난한 손길이 필요한 노스님들을 위한 공간으로 열반에 들 수 있는 별도의 공간까지 갖추었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가난한 스님들의 노후를 위한 미래 지향 복안이다.

시대가 그렇지 못해 자식이 있어도 노후에 봉양 받을 수 없으므로 형편이 어려운 스님들을 이곳으로 모실 수 있도록 부도 탑 8기, 안장 장소 20여 개도 미리 준비했다는 것이다. 혜륜 큰스님의 불교사랑 숭고한 정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 당시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이의근 경북도지사가 도 예산을 지원해 줄 테니 복지예산으로 창건에 보태라고 권유했다. 큰스님은 “마음만으로 감사하니 내 손으로 내 힘으로 짓겠다.”면서 그 예산은 더 필요한 곳에 쓰시라고 사양했다고 한다.

호국영령 순국선열 위령제도 사비로 지금까지 46회 위령제를 모셔 온 큰스님의 덕목이 담겨 있다.

그동안의 노고와 헌신은, 순국선열들의 미망인회의 감사패가 말해준다.

칠곡군 법전사 풍경이 유학산 젊은 영령들과 속삭이는 듯 보인다.  <유무근 기자>

 

 

                              ◆ 뿌리 깊은 애국 스님 공익 환경운동가

큰스님의 사회 공익위원 활동도 다양하다.

법무부 장관 위촉으로 소년분류심사원 종교지도위원으로, 선화 교육 선도 등 20여 년 활동한 실적들은 열거하기 어렵다.

특히나 결손 가정으로 갈 곳 없는 아이들은 법전사에서 따로 숙식을 제공해 교화 활동, 일자리 알선, 취학 지원 등 사랑에 목말라 있던 아이들에게는 부처님의 자비를 그대로 실천했다.

▶ 큰스님의 활동 중에 또 하나는 바로 환경운동가 이력이다.

1990년대는 정부조차 환경부의 비중이 높지 않았던 때, 스님은 사비를 출연해 환경감시단을 결성하고, 전국 관광지 등을 찾아다니며 페트병 수거 일반쓰레기 수거 등 환경 정화 활동에 전념했다.

수질오염을 통한 환경 오염은 당시 낙동강 페놀 유출사태, 발암성 물질 무단 방류 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수질 정화, 환경호르몬을 발생하는 플라스틱 등의 사용자제 등, 전국 순회 계몽 운동 등도 함께 전개했다.

▶ 특히나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라는 슬로건은 미래를 꿰뚫고 만든 표어다. 이때 ‘쓰레기 되가져가기 범국민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한 계기를 만든 이 운동의 주역이 바로 혜륜 큰스님이다.

▶ 지금도 종교 강연 등으로 종교단체나, ‘인생과 삶의 가치’, ‘효와 애국’ 등의 주제로 고등학생 대상 강연, 기업체 강의, 예비 승려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출강 등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동안 법전사를 거쳐 간 신도 수는 교적 상 약 5,000명이 넘고, 주요 행사 때에는 1천 명 정도 모여 성황을 이룬다.

 

                               ◆ 큰스님의 좌우명

음지에 있는 그들은을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라!"가 그의 좌우명이다. 눈에 의지해 모든 사물을 보면 내면의 모습을 결코 볼 수 없으니 마음으로 보는 방법을 익혀야 부처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큰스님의 말이다.

30년 가까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족들에게 버림받았던 정신 질환자들을 거두어 새사람으로 다시 사회구성원으로 취업시켜 되돌려보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 큰스님은 생전에 남북통일의 대업을 호국영령들 제단에 바치는 것이 일생의 염원이지만, 이 과업을 이루지 못하고 열반에 들어도 동국대학 상좌스님들이 법전사를 물려받아 토대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며 대물림은 생각한 바 없다고 했다.

▶ 맡은바 나라에 이바지할 젊은 세대에게 관심이 많다. 세계를 다녀보아도 우리나라처럼 살기 좋은 나라는 찾아보기 어려우니, 젊은이들에게 국가관 애국정신을 가지길 바란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정부에서는 인문학 과목을 더 편성해 인성교육에 더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 장학사업과 자비를 몸소 실천 중이다. 큰스님의 사비와 신도들의 불전 보시, 찬조금으로 지역 내 활동을 계속 해 오고 있다. 종교인부터 솔선수범하던 것을 앤드 코로나를 계기로 다시 부처의 사바세상을 알릴 준비를 하고 있다.

 

                                            ◆ 혜륜 큰스님의 저서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라>. <보배로운 가르침>. <靈의 세계와 천도제>

<육조 단경>. <나무 묘법 연화경>. <불교 입문교리>등 다수있다.

 

‘세계불교 국제 대법황청’ 석혜륜 성하 큰스님의 본사가 경북 칠곡군 가산면에 자리한 것에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한국 불교계에 미칠 선한 영향력과 그 역할이 기대된다. “부처님 자비를 실천하는 데는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라며 복지 사각지대 음지를 살핀다. 큰스님으로 인해 호국 순국선열의 숭고한 넋들이 이제 구천에서 맴돌지 않아서 위안된다는 지역민의 정평이다. 당신께서는 세계 대법황 성하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호국불교 조계종 종정 큰스님 대관식 의상 정복  <유무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