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① 최선
배철현의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① 최선
  • 시니어每日
  • 승인 2022.11.2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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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몰입하는 순간,
인생은 예술이 된다
프랑스 화가 구스타브 카유보트 (1848–1894) 유화, 1891, 73cm x 92.5cm미국 파사데니 노턴 사이몬 미술관 소장
프랑스 화가 구스타브 카유보트 (1848–1894) 유화, 1891, 73cm x 92.5cm미국 파사데니 노턴 사이몬 미술관 소장

멕시코 원주민들에게는 실로사이빈psilocybin이라고 불리는 환각 증상을 일으키는 버섯이 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이 버섯을 섭취하여 심리적인 자아와 신체적인 자아를 분리하여, 까마득한 어린 시절 기억이나 돌아가신 조상과 영혼 교류를 도와주는 촉매제로 사용한다. 서양에서는 실로사이빈을 말기암환자에게 죽음에 관한 공포를 덜어주는 향신성 약물로 사용한다.

이 버섯은 환자에게 한 가지를 알려준다. “모든 것이 결국 잘 될 거야”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전달한다. 긍정적인 마음이란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 동물들과 식물들, 더 나아가 사물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깨달음이다. 환자들은 죽음을 조용히 응시하는 모의 죽음을 환각적으로 경험한다. 그것은 마치 인생이란 자신만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직전에 행하는 마지막 연습과 같다. 이 경험은, 환자에게 한없이 섬뜩하고 무섭지만, 동시에 한없이 자유롭고 긍정적이다.

“모든 것이 결국 잘 될 거야”라는 마음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담아 1세기 중엽 로마인들에게 전달한 정치가이자 철학자가 있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가 있다. 그는 환각 버섯이 아니라 스토아철학이라는 생각으로 ‘만물의 정교한 연결’을 깨닫고 주장하였다. 그는 악명 높은 네로의 과외 선생이자 고문이었고, 네로는 그에게 자살을 명령받아 죽은 파란만장한 인간이었다.

세네카는 소위 로마세계에서 ‘호모 노우스’homo novus로 등장하였다. 전통적인 로마의 귀족가문이 아니라, 로마 식민지인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고모의 손에 이끌려 로마로 이주했다. 그는 당시 로마 귀족들이 통치자가 되기 위한 과목인 문학, 그리스어, 그리고 수사학을 배워 두각을 내기 시작하였다. 특히 금욕주의와 채식주의를 실행하는 ‘섹스티 학교’에 입문하여 삶을 수련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약골이었다. 평생 천식으로 고생하였고 특히 20살에 걸린 결핵은 그의 건강에 치명적이었다. 그는 고모를 따라 이집트로 이주하여 30살이 될 때까지 건조한 사막에서 요양하였다. 그의 고모부는 당시 이집트를 통치하는 로마 장관이었다. 그는 기원후 31년 로마로 돌아와 로마 황제의 꿈을 꾸며 출세 가도의 길을 차근히 밟기 시작하였다.

그는 로마의 상원으로 당대 가장 훌륭한 법률가이자 연설가였다. 그의 탁월한 실력은 오히려 그를 모든 사람의 시기와 질시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로마 황제 칼리굴라(제위 37-41년)는 그의 인기를 시기하여 그에게 자살을 명령하지만, 칼리굴라 측근들은 세네카가 결핵과 천식으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하여, 겨우 생명을 부지하였다. 그 후에 등극한 클라우디우스(제위 41-54년)도 세네카를 자신의 정권을 노리는 최고의 정적으로 여겼다. 클리우디우스의 아내 메살리나Messalina는 세네카를 선왕 카리굴라의 여동상 율리아 리빌라Julia Livilla와 간통하였다고 거짓 기소하였다. 클라디우스 황제는 세네카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원로원으로 구성된 법정을 그를 그 유명한 코르시카 섬에 8년 유배형을 내렸다.

세네카는 코르시카섬 최북단 캡 코르세(Cap Corse)라는 곳에 있는 ‘루비’라는 마을에서 황량한 세월을 보낸다. 그는 가파른 해안 위의 한 망루에 감금되었다. 이곳은 1,200m가 넘는 고산지대로 주변은 거센비바람과 바위뿐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로마에서 유배 온 세네카를 푸대접하였다. 부와 명성을 누리다가 지옥과 같은 섬에 감금된 세나카의 마음은 분노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면 자신은 그곳에서 사라지는 비운의 주인공이 될 것임을 깨닫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41년에 쓰기 시작한 <분노에 관하여>De Ira라는 책이다.

세네카의 유배는 오늘날까지 스토아 철학자로, 작가로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된 신의 선물이었다. 그는 유배 온 다음 해인 42년에 어머니 헬비아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나는 최상의 환경에 있는 것처럼 즐겁습니다. 실제로 내 주위환경은 최고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맡겨진 과중한 일들이 없어, 내 영혼을 증진하기 위한 여유가 많습니다. 저는 공부가 즐겁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며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묵상합니다.” 세네카의 유배형이 종료되기 몇 달 전, 외아들이 죽었다. 세네카는 로마로 다시 돌아와 폼페이아 파울리나Pompeia Paulina와 결혼한다. 세네카는 산전수전 다 겪은 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49년, 그가 53세 되던 해에 그의 장인 파울리누스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것이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De Brevitate Vitae>라는 편지다. 나는 ‘시니어매일’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 편지의 첫 번째 단락의 번역과 그 해설을 바친다.

“오 파울리누스여! 인간들은 나이가 들면, 인생의 짓궂음과 덧없음을 통렬히 불평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짧은 순간을 위해 허무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주어진 시간의 기한이 얼마나 전속력으로, 얼마나 빠르게 우리에게 주어졌다 도망가 버리는지! 극소수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이제 인생을 잘 살 준비를 마치는 순간, 죽음과 마주합니다. 이렇게 불평하고 신음하는 자는 단순히 보통 사람들이나 생각이 없는 대중뿐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치명적인) 병입니다. 명성을 지닌 사람들도 동일한 감정으로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그래서 가장 위대한 의사(히포크라테스)는 외칩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세네카가 마지막에 인용한 히포크라테스의 문장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장의 의미는 이렇다.

“시간이라는 우주의 주인이 주도하는 인생은 한 번도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가 버리는 강물과 같습니다. 그래서 늘그막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인생은 순간이란 사실을 실감합니다. 그러나, 인생에는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예술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최선最善’입니다. 최선이란 이런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조용히 응시하여,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일에 발견하여, 그것에 몰입할 때 주어지는 신의 선물입니다. 최선만이 순간을 영원으로 탈바꿈시키는 영원입니다.”

당신은 자신에게 자랑스러운 취미를 발견하셨습니까? 발견하셨다면, 그것에 몰입하고 있습니까? 그 몰입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고 영원하게 만드는 묘약입니다.

 

배철현은 고전문헌학자이자 작가. 인류 최초 문자들의 언어인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삼중쐐기문자 비문에 관한 연구로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건명원建明苑 원장과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인류가 남긴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여 후대를 위한 강의와 집필 활동에 몰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