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②간극間隙
[배철현의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②간극間隙
  • 시니어每日
  • 승인 2023.01.0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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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가만히 돌아보는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지금-여기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내가 걸어온 삶의 궤적軌跡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궤적에는 처음이 있고 끝이 있다. 그 중간에 수 많은 점들로 이어진 선형적인 움직임이다. 놀랍도록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였다. 내가 말로는 궤적을 그려왔다고 스스로 자화자찬해왔고, 타인들에게 그렇게 보이도록 애써왔지만, 궤적이 아니라 그리다 포기한 셀 수 없는 점들과 단선들의 집합이었다. 궤적을 그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원하는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 그 이미지는 자기 삶의 배경에서, 자기 삶의 Sitz im Leben에서 배태되어야 만 하는 유일하고도 독창적이며, 타인과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고, 비교해서는 안된다. 수 많은 풀들이 있지만, 개별 풀들이 저마다의 생김새를 가졌듯이, 인간도 자신의 생김새로도 온전하게 이미지라고 불리는 ‘내면의 자신’과 조우하여 그것을 자신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이 간극間隙을 발견하고 실의에 차 있었다. 과연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살고 있고, 그것을 달성하고 있는가? 아마도 예수, 붓다, 공자, 소크라테스도 스스로 그렇게 살지 못했을 것이다. 돌아본 자신의 삶은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아쉬움과 회한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물컵에서 없어진 물을 다시 주워 담으려는 어리석음이지만, 이런 시도도 너무도 인간적인 시도다. 철학자 니체는 플라톤과 낭만주의 신봉자였던 작곡가 바그너에 실망하였다. 스스로 일생을 수련해온 고전문헌학이 자신이 살고있는 삶의 현장에서 별로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바젤대학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그런 후, 그가 쓴 책이 <너무도 인간적인>이란 책이다. 이성과 질서가 선이라고 착각한 유럽인들에게 본능과 혼돈이 근본적인 선이란 사실을 알려주려 시도했던 금언집이다. 니체도 자신의 말처럼 살기가 힘들었지만, 그런 삶을 붙잡고 있다고 신경쇠약으로 인생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지냈다.

이런 간극을 살다간 가장 유명한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 로마시대 스토아철학자이자 집정관이었던 세네카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는 65년, 보통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생을 마쳤다. 삶의 이상과 현실, 용기와 주저, 이기심과 이타심, 평정심과 욕심이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만큼 충돌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독재자인 네로 황제를 폐위시키려는 모반에 연루되어 자살을 명령받았다. 세네카가 죽은 후, 30년쯤 지나 역사가 타키두스Tacitus는 그가 어떻게 인생을 마감했는지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세네카는 소크라스테스처럼 친구들과 그를 따라 죽겠다는 아내와 함께 있었다. 그는 65세 혹은 67세였다. 그의 몸은 정기적인 운동을 통해 건강을 겨우 유지했다. 고기 섭취를 삼가고 빵과 과일을 곁들인 검소한 식단으로 몸은 말랐고 어려서부터 앓은 고질적인 기관지염과 아스마로 약해져 있었다. 손목을 칼로 그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피가 금방 응고되어 실패했다. 소크라테스처럼 독배를 마셨지만, 그것마저 극심한 고통만 주었지, 그의 목숨을 빼앗지는 못했다. 그는 이 광경을 지켜보고 경악하는 아내와 친구들이 보는 가운데, 기지를 발휘하여 뜨거운 욕탕으로 들어가 증기로 호흡곤란으로 죽었다. 호흡기 질환으로 일생을 보낸 그를 저 세상으로 보는 것도, 역설적으로 바로 호흡이었다.

일생은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을 연습한 철학자의 임종 장면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대실수다. 그의 마지막은 우리가 그의 삶에서 자주 발견했던 수많은 의문점과 역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황제 네로로부터 자살명령을 받고, 플라톤의 <파이돈Phaedo>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임종 장면을 모델로 삼았다. 소크라테스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오후를 독배를 마시면 제자들과 함께 철학을 토론하여 조용히, 죽어갔다. 자신이 가고 싶었던 ‘꿈을 꾸지 않는 잠’인 죽음으로 진입하였다. 그러나 세네카의 죽음은 달랐다. 그는 독배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지만, 목숨이 남아 있었고 전혀 철학적이지 않은 칼로 손목의 동맥을 자르는 행위로도 죽을 수가 없었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기지를 발휘하여 생각해낸 수증기를 통해 기도 질식사는 소크라테스 모델과는 닮은 데가 하나도 없다.

더욱이 그에겐 자신의 죽음을 미화하여 기록해줄 플라톤과 같은 제자가 없었다. 일생을 권력과 명성을 따라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해줄 무명의 친구들에 둘러 쌓지만, 그 누구도 그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로마제국의 거울’로 창조하고 싶었다. 그는 로마제국의 황제에 해당하는, 아니 황제를 능가하는 철학자로 묘사되길 바랬다. 타키투스로 세네카의 이런 욕심을 알아차렸는지, 세네카의 유언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신을 소개하고 철학으로 그들의 도덕을 타락시켰다면, 세네카는 소크라테스의 모델을 이어받아, 어떻게 살 것인가, 더 나아가 어떻게 죽은 것인가를 가르쳐왔다. 그가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7권 3단락에서 자신의 철학을 이렇게 말한다.

“사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일생이 걸립니다.

더욱이 당신을 더욱 놀라게 만들 것은 이것입니다.

죽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일생이 걸립니다.”

그의 최후는 자신이 일생 동안 수련한 철학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지적인 허식에 정반대가 되는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는 고상한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 고문, 그리고 연설기록관으로 일하면서 황제만큼의 권력과 명성을 거머쥐면서, 로마 황실과 둘러싼 음모에 깊이 관여하였다. 네로는 자신을 제거하려는 세네카가 죽기를 바랬다. 그의 죽음은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였다. 그가 자신의 죽음을 고상하게 철학적이며 사상적인 이유로 각색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하였다. 정치에 깊이 몸담은 철학자와 철학에 깊이 심취한 철학자가 되고 싶은 그의 욕망이 그의 최후를 이렇게 만들었다.

세네카는, 세속적 욕망과 정신적인 추구 사이의 간극을 자신의 죽음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우리 마음속에 강력하게 도사리고 움직이는 물질적인 추구, 하니 물질이라고 명명된 베헤모스와 같은 상징이 우리를 초라하게 만든다.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인 세네카가 오히려 삶의 위안이다. 나는 나로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 간극에서 괴로워하는가? 아니면, 그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임무를 찾고 있는가?

 

고전문헌학자이자 작가. 인류 최초 문자들의 언어인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대왕이 남긴 삼중쐐기문자 비문에 관한 연구로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건명원建明苑 원장과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블로그 <배철현의 매일묵상>(blog.naver.com/eduba)을 통해 일상의 소소한 관찰을 글로, 유튜브 채널 <배철현의 더코라 THE CHORA>을 통해 동서양 경전과 고전을 통해 얻은 혜안을 영상으로 올리고 있다. 2020년 교육기관 ‘더코라(www.thechora.com)’를 설립하여 청소년과 예술청년들을 위한 인문학교 ‘서브라임’과 경영인들을 위한 ‘코라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여정』 『배철현의 위대한 리더』 그리고 위대한 개인을 발굴하기 위한 에세이 시리즈 『심연』

『수련』 『정적』 『승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