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단보와 관수루 마애사를 찾아서
낙단보와 관수루 마애사를 찾아서
  • 안영선 기자
  • 승인 2022.03.2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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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로 대구에서 팔달교를 지나 천평을 거쳐서 상주방면으로 1시간 정도 달리면 상주, 선산, 안계로 갈수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가 낙정삼거리인데 상주쪽으로는 선거 다리로 유명한 낙단교의 옛날 낙정나루가 있던 곳이다. 안계방향으로 20여m 가면 관수루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3대 누각은 평양의 부벽루,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가 있고, 낙동강에는 안동에 영호루, 밀양에 영남루, 낙동나루에 관수루가 있고, 지류 남강에 촉석루가 있다. 옛부터 선인들은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루를  만들어 놓고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며 내왕객들이 쉬어 가는 곳으로 이용 되었다.

관수루 전경. 안영선 기자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 낙정나루터 동쪽 언덕에 위치한 관수루는 고려 중엽에 강 건너편 낙동리에 창건 되었으나 유실되었고, 조선초에 지금의 자리(옛 낙정나루 옆)로 옮겨 중건하고 1734년 (영조10)에 상주목사 김태연이 손수 편액을 써서 걸었다. 1843년(현종 9)에 다시 수리했으나 1874년(고종11)에 누각이 강물에 떠내려가 페허가 되었다. 지역 출신 양도학 씨가 자금을, 배주환 씨가 부지를 제공하여 1989년 복원 되었다. 1990년 5월에 준공 기념식이 거행되면서 신현택 군수의 중건기문, 하서룡의 상량문을 추가 했다. 지금도 이규보(李奎報), 안축(安軸), 김종직(金宗直), 이황(李滉) 등 15편의 관수루 제영과 권상일, 유주목 등의 중수기문이 판각되어 걸려 있으며, 뜰에는 양도학의 공적비가 건립되어 있다. 누에 올라 낙동강을 내려보면 낙단교가 한눈에 들어와 들판과 강물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듯 하다. 

낙단보 전경. 안영선 기자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에 있는 낙단보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사업비 1,845억을 투입하여 건설한 낙동강 8개 보중의 하나로 상류에서 2번째 보로 총길이 286m(가동보 142m, 고정보144m)로 홍수시 유수 소통을 최대화 하고 신속한 조작과 능동적 대처를 위해 로러게이트식 수문 3개가 설치 되었다. 연간 1천 470만kwh의 수력발전 시설도 갖추고 있으며, 물고기가 상하류로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단밀면지에 실린 졸시 낙단보를 소개해 본다.

낙동강 상주보에서 내려오다가/ 낙단교에서 올려다 보이는 곳에/ 낙동강 3대 정자 관수루가 있는 곳/ 화강암 바위에 마애보살상 선명한 곳/ 그곳에 가면 새 볼거리 낙단보가 있다네// 의성 상주 구미 세 지역의/ 자연과 역사 문화가 융합되는 자리/ 자연이 이롭고 즐거운 곳(利樂之然)/ 사람이 이롭고 즐거운 곳(利樂之人)/ 그곳에 가면 새 볼거리 낙단보가 있다네// 낙동나루를 복원해 체험공간 만들고/ 야생초화원 자갈침수못도 만들어졌고/ 생태공원 강들바람공원 들꽃바람공원이 있고/ 만경산까지 오르는 등산로도 있는 곳/ 그곳에 가면 새 볼거리 낙단보가 있다네.

낙단보 전시관에 들리면 공정에대해서 안내를 들을 수도 있으며, 이곳이 낙동강 자전거길로 종주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닉단보를 보고 안계쪽으로 100m쯤 오르면 마애사라는 절이 나온다.

마애사 전경. 안영선 기자

마애사에는 생송리 마애보살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제 제432호)이 있는데 이 마애보살좌상은 2010년 10월 8일 낙단보를 건설 하다가 발견 되었는데, 마애보살좌상의 보존을 위해 공사가 잠시 중단 되기도 했으며, 낙단보가 조금 아래쪽으로 옮겨져 건설되기도 했다.

이 마애보살좌상의 동북에서 서남방향으로 낙동강이 보이는 강안 언덕의 화강암 바위면에 새겨져 있으며, 보살상 뒤로는 만경산(499m)의 맥이 흐르고 있다. 마애보살좌상의 조각 양식은 981년(경종 6)에 조성된 경기도 이천의 태평흥국명 마애보살좌상(보물 제982호)과 서울 삼천사지 마애여래입상(보물 제657호) 등과 흡사해 보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 마애보살좌상은 편편한 바위면에 얕게 돋음새김을 하였는데, 머리에는 양쪽으로 약간 벌어진 세개의 꽃잎이 피어나듯 새긴 모양의 관을 써고 오른손으로 꽃을 잡고 활짝핀 연꽃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이 보살상은 10세기 후반이나 늦어도 11세기 초반에 조성 된것으로 추정 되는데, 오랜 세월 동안 땅 속에 묻혀 있어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용모와 형상이 자비로운 보살의 이미지가 잘 표현된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이다. 또 낙동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고려시대 강을 이용한 운송 수단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생송리 마애보살좌상. 안영선 기자

생송리 마애보살좌상 아래 낙동강을 낙정리 사람들은 용바위라고 하는데 용바위에 대한 이야기와 전설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약속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