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용진마을에서
팔공산 용진마을에서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1.10.27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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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대 노태우 대통령의 생애를 회고하면서, 서거에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시월의 일요일 오후, 단풍이 아직 이른데도 팔공산 도로는 복잡하다. 서촌국민학교를 지나서 우회전해서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다.

구불구불한 산간도로를 거의 2km 정도 가니 이십여 호 됨직한 작은 마을이 나왔다.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생가(대구광역시 동구 용진길 172)가 있는 용진마을이다.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따라 안마당으로 들어서니 ㄱ자 모양의 아담한 서남형 기와집을 팔공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보통사람 노태우(盧泰愚, 1932∼2021)는 이곳에서 공산면 서기 노병수 씨와 김태향 씨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여섯 살이 채 못되어 아버지를 여의고 시오리길(6km)을 걸어서 공산국민학교를 다녔다. 삼촌의 도움을 받아서 대구공립공업학교를 거쳐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쟁 중에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생도 시절 영어를 잘했으며, 운동(럭비)을 좋아했다고 한다.

육군사관학교를 11기로 졸업한 뒤 보병 소위로 임관한 이후 지휘관으로 월남전에 참전하는 등 승승장구하여 군 생활을 하던 중 10·26 사태를 만나게 된다. 제9 보병사단장으로 12·12 쿠테타에 참가하여 수경사령관을 거쳐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고,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에서 정무장관,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올림픽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시민과 학생들의 민주화와 개헌 시위가 한창이던 제5공화국 말기에 전두환 대통령의 후계자로 정치에 참여하여 당시 여당이던 민정당의 대표로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한 6.29 선언을 발표하다.

1971년의 제7대 대통령선거 이후 16년 만에 치러지는 제13대 대통령선거는 정계의 거물 3김 씨가 모두 출마해서 1노 3김의 각축장이 되었다. 대구 수성 천변의 유세장은 사회 초년병의 넥타이 부대들로 넘쳐나고 동성로 밤거리는 정치 이야기로 뜨거웠다. 전후 세대인 베이비부머들이 처음으로 치루는 대통령 선거였다.

1987년 12월16일,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표방한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가 유효 투표의 36.6%를 얻어 제13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재임 중 그는 역사상 최다 국가가 참여한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러시아, 중국과 북방외교로 수출 대한민국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다. 정계의 거두인 김영삼, 김종필 씨의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민주정의당의 3당 합당으로 여소야대의 정국을 타개하여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여 조직폭력배를 근절하여 민생을 안정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또한 전임 대통령과 달리, 보통사람 노태우의 풍자나 극화를 허용하여 개그 풍년 시대에 동참해서 국민을 즐겁게 만들기도 했다.

'친구야, 밥은 잘 나오나?‘

퇴임 후 5공 특별법으로 구속되어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재판정에서의 대화로 회자되는 ‘친구야’ 개그의 한 토막이다. 군사 쿠테타, 비자금 등으로 징역 17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97년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되었으며, 2013년도에 추징금 2,628억 원을 완납했다.

2019년부터 매년 아들 노재헌 씨가 부친을 대신하여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 참배하면서 거듭 사죄하고 있다.

2002년부터 전립선암, 소뇌위축증 등의 질환으로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고 연희동 자택에서 칩거하여 투병 생활을 하던 중 지난 10월 26일 오후 1시경 별세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해방과 독립,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누구보다 어렵게 공부하고 성장한 구국의 열혈 군인이었다. 

대통령 친구 아래 장관직을 두루 거치며 올림픽을 준비한 그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정치판을 여는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스스로 조국의 운명과 미래를 책임지고 감당해 나갔다.

국가와 민족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최후까지 심신을 지탱해서 존경하던 위인의 기일에 맞추어 운명한 것은 역사의 우연인가? 필연인가?

제13대 노태우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조의를 표한다.

팔공산 용진마을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정신교 기자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팔공산 용진마을). 정신교 기자
코스모스와 억새가 무성한 금호강(공항교) 푸른 하늘 아득한 저 너머 팔공산 용진마을. 정신교 기자
코스모스와 억새가 무성한 금호강(공항교) 푸른 하늘 아득한 저 너머 팔공산 용진마을. 정신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