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박의 횡포
가시박의 횡포
  • 현태덕
  • 승인 2021.09.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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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강이 불로동과 봉무동을 지나는 구간
불로제 주변에 가시박이 토종 식물을
말려 죽이는 횡포를 부리고 있다

 

금호강이 화담산 자락으로 향하는 물길을 불로제가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불로제의 둑 비탈에는 한 가지 식물만 보인다. 불로제 일부 구간에는 토종의 잡초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가시박의 꽃, 잎, 덩굴이 융단처럼 제방의 비탈을 점령하고 있다. 제방의 턱이나 제방 아래의 둔치에 서 있는 나무까지도 녹색 융단으로 완전히 덮어버렸다.

가시박 덩굴에 덮인 불로제 비탈
가시박 덩굴에 덮인 불로제 비탈. 현태덕 기자

 

가시박은 겉보기에는 아주 연하고 약한 식물로 보인다. 줄기의 지름이 5mm 이내로 가늘다. 가시박의 줄기는 아주 부드럽고 연약하여 손으로 당기면 쉽게 잘린다. 잎은 호박잎과 박잎의 중간 정도 크기로 오각형에 가깝다. 그런데 줄기는 하루에 한 자 정도 자라며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평지로 뻗는 것은 물론이고, 마디에 생긴 덩굴손으로 경사면도 타오르고, 풀이나 나무도 감고 오른다. 가시박 덩굴의 길이는 보통 4~8m인데 생장 환경이 좋으면 12m까지 자란다고 한다.

불로동 금호강 둔치, 가시박 덩굴에 감금된 나무
불로동 금호강 둔치, 가시박 덩굴에 감금된 나무들. 현태덕 기자

 

가시박이 융단처럼 나무를 완전히 감싸고 있는 장면을 보면 섬뜩한 느낌이 든다. 가로등 높이 정도로 자란 오동나무를 타고 올라 오등 나무의 큰 잎 위로 뻗어 나간다. 키가 작은 나무들은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 치마폭으로 덮듯이 나무를 감싸버린다. 가죽나무, 느릅나무, 뽕나무 등이 가시박에 덮여 신음하고 있다. 이 나무들은 사실 가시박보다 훨씬 강하고 크고 단단하다. 그런데도 속수무책으로 가시박에 당한다.

오동나무를 감싸고 있는 가시박 덩굴
오동나무를 감싸고 있는 가시박 덩굴. 현태덕 기자

 

가시박은 어떤 식물이든 그 잎 위로 올라가 덮어버린다. 그러면 나뭇잎이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하여 광합성 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가시박에 덮인 나무는 시든다. 게다가 가시박의 타감작용으로 숨쉬기가 불편하다. 가시박은 지주식물을 말려 죽이기 위하여 강력한 생화학물질을 분비한다고 한다. 제대로 영양분을 만들지 못하고 숨도 편안하게 쉬지 못하는데 몸을 덮고 있는 가시박 융단 덩굴이 무거워 가지가 처지고 부러지기도 한다. 가시박에 덮인 나무는 시들시들하다가 3~5년 안에 말라 죽는다. 가시박 덩굴에 덮인 풀은 아예 시들어 녹아버린다. 가시박이 번성하는 지표의 토종 식물은 사라지고 가시박만이 녹색 융단을 펼쳐놓고 벌의 춤을 즐기고 있다. 가시박은 주변 식물을 고사시키는 특성 때문에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봉무동 불로제 주변, 가시박에 덮인 나무
봉무동 불로제 주변, 가시박에 덮인 나무들. 현태덕 기자

 

가시박은 가시로 자신을 방어한다. 줄기에는 잔가시가 나 있다. 이 가시박의 줄기가 손, 팔, 목덜미, 다리 등에 스치면 생채기가 생긴다. 가시박의 열매는 온통 가시로 덮여있다. 가시는 녹색으로 길이가 1cm 미만이고 지름은 머리카락 굵기의 삼 분의 일도 안된다. 기자가 사진을 찍으려고 가시박 덩굴 속으로 한 발을 디밀었더니 수십 개의 가시가 양말에 달라붙었다. 양말을 벗어 가시를 하나씩 손으로 뗐다. 그런데 발이 가렵고 아파서 자세히 살펴보니 이미 발에도 수십 개의 가시가 박혀 있었다. 피부염으로 악화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가시박의 열매와 열매에 나있는 가시
가시박의 열매와 열매에 나있는 가시. 현태덕 기자

 

이처럼 식물생태계를 교란하는 가시박을 제거하는 방안이 마땅하지 않아 당국이 고민이다. 가시박을 제거하기 위하여 제초제를 사용하면 주변의 모든 식물도 말라죽으니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제초제를 사용하면 수질이 오염되어 수생 동식물까지도 해를 입을 수 있고 상수원이 오염될 수도 있다. 가시박의 천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가시박을 제거하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줄기가 5cm 미만인 성장 초기에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가시박을 모두 뽑아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시박을 없애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번식력 때문이다. 가시박은 길이 1cm 정도의 가시로 덮인 별 모양의 열매를 맺는다. 한 포기에 최대 25,000개 정도의 열매가 달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가시박의 씨는 땅속에서 7년을 견딘다고 하니 7년 동안 계속하여 발아하는 대로 바로 뽑아내어야만 한다. 그러니 가시박을 사람의 손으로 뽑아서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시박이 한창 번성하기 이전에는 환삼덩굴이 제방 비탈에 번성하고 있었다. 이 환삼덩굴과 가시박이 생존경쟁을 하면 가시박을 없앨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삼덩굴은 억세고 강하다. 환삼덩굴의 줄기는 가시박의 줄기보다 가늘지만, 훨씬 질기고 억세다. 보통 성인의 손으로 당겨서 자르기가 쉽지 않다. 환삼덩굴의 잎도 가시박의 잎보다 억세다. 환삼덩굴도 덩굴손으로 비탈이나 나무를 타고 오른다. 그래서 환삼덩굴도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결과는 환삼덩굴의 참패였다. 환삼덩굴과 가시박이 한데 엉켜 다투다가 어느 순간에 가시박 잎만 보인다. 타감작용의 영향도 있겠지만 외형상으로는 잎의 크기가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 환삼덩굴은 약용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가시박은 약용으로도 사용하는 방안이 알려지지 않았다.

가시박은 추위에 약하다. 서리가 내리면 바로 풀이 죽어 잎줄기가 쓰러지고 잎의 색깔이 변한다. 이 약점을 이용하여 가시박을 퇴치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행정당국에서 가시박 퇴치 작업을 펼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렇지만 화담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불로제 주변에서 가시박 퇴치 작업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상당한 예산을 들여서 가시박 퇴치 작업을 한다는데 효과는 어느 정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현재는 식물계에 가하는 가시박의 횡포를 막을 효과적인 방법을 알지 못한다. 과학자와 연구자가 가시박의 생태를 더 연구하여 방제 방안을 찾아내기를 바랄 뿐이다. 나아가서 가시박을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되어 토종 식물계와 공존시키는 방안도 모색되기를 바란다.

가시박 덩굴에 덮인 나무
가시박 덩굴에 덮인 나무들의 기이한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