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홈: 향연(饗宴)’-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6 - 김종영
‘웰컴 홈: 향연(饗宴)’-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6 - 김종영
  • 김영창 기자
  • 승인 2021.09.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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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영의 예술세계
김종영과 창원

 

작품67-4 1967 42×26×19 marble 이건희 컬렉션.   김영창 기자
작품 67-4, 1967, 42×26×19, marble, 이건희 컬렉션.   대구미술관

이 기사는 대구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 전시자료와 기자가 현장에서 촬영한 작품사진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참고자료를 활용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김종영(金鐘꽃1915-1982, 창원)

“나는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드는 것 -

이런 따위의 생각을 갖고 싶지 않다.

표현은 단순하게 내용은 풍부하게”

김종영, 아름다운 것, 『초월과 창조를 향하여』, 열화당, 1983, p.33

 

드로잉 1961 52x37 ink and watercolor on 김종영미술관 소장.   김영창 기자
드로잉, 1961, 52x37, ink and watercolor on, 김종영미술관 소장.   김영창 기자

김종영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접목하여 주체적인 한국 현대조각을 이룬 조각계의 거장이다. 그는 어린 시절 한학을 가까이한 집안의 영향으로 서예에 능숙하고, 회화에도 재능을 보였다.

 

인체드로잉 연도미상 24.5x19.5 ink and watercolor on paper 김종영미술관 소장.   김영창 기자
인체드로잉, 연도미상, 24.5x19.5, ink and watercolor on paper, 김종영미술관 소장. 김영창 기자

호는 우성(又誠). 경상남도 창원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의 휘문중학교를 거쳐 1936년 동경미술학교에 유학, 조각을 전공하여 1941년에 졸업하고 이어서 연구과도 수료하였다. 다테하다 가쿠조(建昌燮造, 1919-2006)나 무카이 료키치(向井長吉, 1918-2010) 등 전후 일본 현대조각에서 중요한 인물들과 교류하였다.

 

자화상, 1975, 34x23, ink on paper, 김종영미술관 소장.   김영창 기자
자화상, 1975, 34x23, ink on paper, 김종영미술관 소장. 김영창 기자

1946년에 서울대학교 예술대학에 미술학부가 창설될 때 조소과 교수가 되어 1980년에 정년퇴임할 때까지 근속하였다.

김종영의 조각은 인물과 식물, 산에서 조각의 모티브를 찾아 자연현상에서 구조의 원리와 공간의 미를 경험하고 조형을 탐구하고자 했다.

1960년대 초에는 형태의 단순화가 현격해져 자연 대상으로부터 유추된 유기적 추상과 순수조형의 기하학적 추상을 표현하였다. 나무와 잎사귀와 같은 식물, 사람의 얼굴과 인체 등 자연에 실재하는 대상의 형태를 유려한 곡선과 기하학적 직선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엄격한 형태의 구조 원리와 공간을 구축하였다.

 

작품 80-5, 1980, 25x8x46, bronze, 김종영미술관 소장.   김영창 기자
작품 80-5, 1980, 25x8x46, bronze, 김종영미술관 소장. 김영창 기자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가 말한 '불각(刻)'의 개념, 즉 ‘깎지 않는다는 것’은 공간의 여백을 허용하는 것으로 이는 서예의 여백과도 상통한다. 이러한 불각의 아름다움은 필연적으로 단순성을 보이고, 공간미를 만드는 인위적인 조화, 균형 등에서부터 벗어나 자연성에 바탕을 둔 세계를 추구하였다.

 

작품 80-1, 1980, 31x9x53, color on wood, 김종영미술관 소장.   김영창 기자
작품 80-1, 1980, 31x9x53, color on wood, 김종영미술관 소장. 김영창 기자

후기 작품에서는 불필요한 부분의 제거를 통해 절대적 공간성의 획득이라는 본질적 과제에 접근하고자 했다.

1982년 예순여덟에 생을 마감하였다.

 

작품 67-4, 1967, 대리석, 42×26×19㎝, 대구미술관 소장, 이건희 컬렉션

처음 작품 사진 해설

김종영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접목하여 주체적인 한국 현대조각을 이룬 조각계의 거장이다. 그는 자연 생태와 가까운 재료와 한국의 풍토와 기질이 나타난 순수조형 의지를 ‘불각(不刻)의 미’라는 철학으로 추구한 조각가이다.

이 작품은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인 조각을 추구한 시기에 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서예의 조형성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거나 자연의 본래 형태를 드러내는 순수 추상작업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