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홈: 향연(饗宴)’-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5 - 이쾌대
‘웰컴 홈: 향연(饗宴)’-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5 - 이쾌대
  • 김영창 기자
  • 승인 2021.08.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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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의 예술세계
이쾌대와 대구

 

부녀도 : 1940, 73x60.7, oil on canvas, 개인소장.   김영창 기자
부녀도 : 1940, 73x60.7, oil on canvas, 개인소장.   김영창 기자

이 기사는 대구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 전시자료와 기자가 현장에서 촬영한 작품사진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참고자료를 활용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이쾌대 (李快大, 1913-1965, 칠곡/대구)

"사람의 속 모습을 꿰뚫어 보아야

인물이 종이 위에 제 모습을 차지한 채

영원히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쾌대의 말' 이주영의 아들 이명학과의 서면 인터뷰 중에서, 2010. 11. 22.

 

경북 칠곡에서 태어난 그는 이인성과 수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서울의 휘문고보 재학시절인 1932년 일본의 데이코쿠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에 입학하여 '하라바츠’, ‘녹포사' 공모전 등에 입상하였다.

1938년 졸업, 귀국 후 1941년 이중섭, 진환, 최재덕 등과 조선신미술가협회를 조직하고, 1944년까지 도쿄와 서울에서 동인전을 가졌다. 1945년 광복 후 1950년 초 까지 성북회화연구소를 열어 후학을 가르쳤다.

1947년 진정한 민족예술의 건설을 표방하면서 김인승, 이인성 조병덕 등 18명으로 이루어진 조선미술문화협회를 결성하였고 1949년까지 4회의 회원 작품전을 가졌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독도 어민 참변 사건을 다룬 대작 「조난」(1948년), 초인적 의지의 인간상을 표현한 「걸인」(1948)과 「군상Ⅰ-해방고지」가 있다.

 

추과(秋果) : 연도미상, 40x60, oil on canvas, 개인소장.   김영창 기자
추과(秋果) : 연도미상, 40x60, oil on canvas, 개인소장.   김영창 기자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서양화부 추천 작가로 참가하여 정물화 「추과(秋果)」를 출품하였다.

6·25전쟁 직후, 북한 체제의 남조선미술동맹 인민 의용군으로 참전하였다가 포로가 되어 거제 수용소에서 휴전을 맞이하였다. 이때 수용소에 있으면서 이주영에게 해부학의 기초를 가르치기 위해 책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남북 포로 교환 때 북한으로 넘어갔다. 월북 후 1954년부터 전후 건설성 미술제작소의 미술가와 조선미술가동맹 미술가로 선출되었고, 1957년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 임원에 선임되었다.

이쾌대는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시대인 일제강점기와 6·25전쟁기에 활동하면서 당시 시대적 주제와 정서를 담아낸 예술가이다. 이쾌대는 전통적인 회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향토적인 주제 혹은 민족의 기상을 형상화한 서사적 회화를 추구했다. 한국의 전통 복식을 소재로 하거나 동양화의 채색과 선묘의 특징을 살린 묘사법을 구사하는 등 화법의 독자적인 해석과 향토색을 통한 민족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많은 관심을 둔 화가였다.

이쾌대는 53세인 1965년 위 천공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그에게 많은 영향을 준 친형 이여성(李如星)도 월북하여 조선 미술사 연구와 창작 활동을 하였다.

 

항구-대표작 중의 하나 : 1960, 캔버스에 유채, 33.5×44.5cm, 이건희 컬렉션 . 김영창 기자

이쾌대는 월북 전에는 한국적 화법과 전통 소재를 구사하거나 인체의 표현에 원숙한 화법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는 민족적 정체성을 밝히는 데 많은 관심을 두었고, 1940년대 말에는 <군상>시리즈 등 역작을 제작하였다. 월북 후 그의 활동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3·1운동 등 역사적 주제와 소박한 일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알려진다. 이 작품은 그의 북한에서 활동을 알려주는 반가운 작품이며 여전히 원숙한 그의 기량이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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