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근대골목] 대구 중동의 이득심 송덕비
[대구근대골목] 대구 중동의 이득심 송덕비
  • 안영선 기자
  • 승인 2021.05.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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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처음 조성된 송덕비. 안영선 기자

대구시 수성구 중동행정복지센터(수성로50길 38) 안 오른쪽 마당에 작은 비 2기가 있다. 이 비는 구한말 고종 때 상궁을 지낸 이덕심의 선행을 기리는 송덕비로 1923년 처음에 세운 비의 글이 닳아 보이지 않게 되자, 같은 비문으로 다시 세웠다.

이득심은 1850년 전후 대구 중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현풍 현감을 지낸 이재연으로 어린 나이에 궁궐로 들어가 궁녀가 되어 내명부 정5품 상궁에까지 올랐다(상궁은 왕의 후궁인 내관을 제외한 궁녀로서는 내명부에서 가장 높은 지위다.)

조선 말기 고종 때 국운이 쇠퇴하고 조정의 조직이 축소되자 상궁을 사직하고 고향인 중동으로 돌아와 사재를 털어 주민들의 조세 부담을 덜어주고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들을 구호했다. 이후 주민들이 그녀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당산나무 아래 송덕비를 세웠다.

처음의 비는 지금의 중동네거리 우리은행 부근에 있었다고 김한구(85세 중동 거주) 씨는 말했다. 그 뒤에 비는 중동경로당 (신축되기 전 중동사무소) 앞 길가로 옮겼다가 2016년 11월 현재의 자리로 옮기고 안내판도 설치했다.

비의 앞면에 전정경부인이득심지송덕비(前貞敬夫人李得心之頌德碑)라 새기고 좌우에는 그의 덕을 칭송하는 글이 한문으로 새겨져 있다.(규방 범절 익혀 궁중에 살았고 사직 위해 지극 정성 제사를 이었도다. 가산을 털어 이웃과 종족을 도왔으며 사재를 출연해 의를 높인 덕을 돌에 새겨 기리노라) 또 비의 측면에 계해년(1923) 1월 중동에 세우다. 라고 새겨져 있다.

직계 후손들은 모두 대구를 떠났기에 안타깝게도 이후의 이득심에 대한 기록은 알 수가 없다.

1923년 1월 새로 만든 송덕비. 안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