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도 값진 나의 인생’ 저자 정성현 씨
‘아름답고도 값진 나의 인생’ 저자 정성현 씨
  • 우남희 기자
  • 승인 2021.05.05 17: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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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자천댁!

팔남매 다섯째 열일곱 계집아이

이 편지글은 슈타이너 심리상담소의 도움을 받아 만든 '아름답고도 값진 나의 인생' 자서전에 '들어가는 말'로 실려 있다. 우남희 기자

찌들은 시골생활 생활고 쫓겨

위로는 오래비, 아랫 동생들

학비마련 도움 되려 도시직장 떠났지

엄동설한 마다않고 오릿길 걸어 출퇴근

연필, 책, 어디가고 베틀만 놓였는가

보라매 제모에 프른 제복 군바리

애닯던 연애시절 어언 사십 년

대로변 소음 잦은 단칸방

알토란 첫 아이 본 지 삼십 육년

선비풍 시부님, 엄한 시모님

네 아이 부양하며 보낸 이십 년

뜻하지 않은 사고에 청각 잃고 일손 놓은

고집쟁이 서방 대신 궂은 일 마다않고

생활전선 뛰어든 지 어언 십 수 년

삼교대 직장생활, 대소간 집안일

지쳐가는 몸과 마음, 침침해진 눈동자

긴 세월 겹겹이 쌓인 울분 속에서도

한 맺힌 꿈, 갖고 싶었던 연필, 책가방

중학, 고등학교, 전문대 이년 넘기고

또 다시 정규대 편입,

이제 남은 일 년만 더……

여보 자천댁

늘그막에 정년 다 되어서 꿈은 이루어가지만

그놈의 졸업장, 많은 자격증들은 다 뭐하게?

뭐하긴 뭐해 니 죽고 나면 소고기 사무야재

보태준 거 없이 보낸 자식들, 신세질 일 없다

잘난 시숙, 동서들 너거마 학부 출신이가?

나도 인자 학부 출신이다,

무시하지 마라 흥!        

                       -2015년 새해에 마누라 자천댁에게 당신의 남편이 -

이 글은 시의 형식으로 쓴 편지글로 2015년, 남편이 정성현(64. 대구시 달서구 도원동)씨에게 써 준 글로 정씨가 선배 졸업식에 가서 낭독해 졸업식장이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7남매의 막내며느리임에도 불구하고 87세에 돌아가신 어른을 26년간 모신 효부이자 가장이다.

▶출생 및 성장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영천시 화북면에서 8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형제가 많은데다 딸인 제게까지 배움의 기회가 돌아오지 않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떼를 써 대구로 오게 되었습니다. 대구로 와 처음 일한 곳이 고향사람이 가내공업으로 양산을 만드는 산격동이었습니다.

낮에는 그곳에서 일하고 밤에는 중학교 과정을 배우기 위해 산격동에서 동인동에 있는 고시학원까지 걸어 다녔지요. 중학 과정을 다 마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다 낫고 다시 대구로 와 대한방직에 취직했습니다. 그 당시 회사에서 고등학교를 보내주어 주경야독으로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료들이 많았는데 저는 중학교 졸업장이 없어서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동료직원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삶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정성현씨.    우남희 기자
삶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는 정성현씨. 우남희 기자

결혼하고 사는데 급급해 공부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IMF로 40대 중반의 남편이 실직해 삶의 현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답니다.

배움도 짧고 기술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하다가 보리밥집을 하게 되었습니다. 식당 경험, 역시 없었지만 집 밥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는데 다행히 잘 되었습니다. 식당이 안정화 되어가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접어두었던 배움에 대한 갈증이 다시 생겼습니다. 그래서 식당일을 마치고 한남성인중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계시는데 이 일은 언제부터 하셨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한남성인중고등학교에서 중등과정과 고등과정을 마치고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습니다. 사회복지학과는 복지시설에서의 실습이 필수인데 지금의 근무지인 요양병원에서 4개월 실습하게 되었습니다. 틈틈이 간호학원에 다녀 조무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지요.  졸업 후,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니 병원에서 정식 직원으로 채용했고 8년 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정성현씨.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정성현씨.

▶ 동화구연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던데 어떻게 취득하게 되었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배움에 대한 욕구가 강했습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고, 졸업할 무렵 선배들의 권유로 사이버대학에서 한국어교육학과에 입학해 한국어 교원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틈틈이 월성복지관 한국어교실에서 보조교사로 활동했는데 지금은 코로나로 활동 자체를 못하고 있습니다. 동화구연을 배운 것도 타 지역에 사는 손주가 오면 동화를 들려줄까 해서 배우게 되었는데 근무지에서 가끔 환자들에게 동화구연 하듯이 얘기하면 좋아들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 할머니로도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녀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비롯해 간호조무사 자격증, 보육교사자격증, 한국어교원자격증, 동화구연 3급지도사 스피치 지도사, 가정의례지도사 등, 국가 자격증과 민간 자격증을 여러 개 취득했다.

정성현씨가 취득한 자격증들.   우남희 기자
취득한 자격증들. 우남희 기자

바쁜 와중에도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생각에서 7년째 문화재지킴이로 활동하며, 취미생활로 무명, 광목, 염색한 천 등에다 그림을 그리는 천아트를 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