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키워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시사 키워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 이배현 기자
  • 승인 2021.04.05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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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차이는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는 뜻으로 ‘오십보백보’와 동의어
올해 4월 4일 청명, 4월 5일 한식(설,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
근래 '코로나로 죽든 굶어 죽든 그게 그거'라는 변질된 의미로 인용
​청명 풍경화. 국립민속박물관​
  ​청명 풍경화. 국립민속박물관​

전국시대 위나라 혜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나는 이웃 나라 왕들보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힘을 쏟고 있소. 지난해에도 백성들이 흉년에 굶주리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했소. 그런데도 백성 수는 늘어나지 않고 불만만 커지고 있으니 무엇 때문이오?”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빗대어 물어보겠습니다. 화살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한 군사가 겁을 먹고 정신없이 도망쳤습니다. 한 50보쯤 도망가다 앞을 보니 100보쯤 도망친 군사가 보였습니다. 그는 피식 웃으며 100보 도망간 군사에게 비겁한 놈이라며 비웃었습니다. 왕께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혜왕은 별 싱거운 질문도 다 있다는 듯 대답했다.

“50보든 100보든 무슨 차이가 있겠소. 도망가기는 다 마찬가지 아니오?”

그러자 맹자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왕께서 나라를 잘 다스린다고는 하나 이웃 나라 왕들과 비교해 보면 50보, 100보의 차이입니다.”

이 말에 왕은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난 이웃 나라 왕들보다 훨씬 더 애를 쓰고 있소. 지난 흉년 때 내가 백성들을 얼마나 정성껏 돌보았는데 그런 섭섭한 말을 하는 거요.”

맹자가 정색을 하며 답했다.

“지금 백성을 가장 괴롭히는 일은 전쟁입니다. 왕께서 아무리 백성을 잘 돌본다 해도 지금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한창이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비슷비슷합니다. 정말 백성을 생각하신다면 전쟁부터 멈추십시오. 또 흉년에만 백성을 돌보시지 말고 평소 백성들 생활을 따뜻하게 살피십시오. 그러면 백성도 늘어나고 그들에게 어진 임금이라는 칭송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의 유래다. 작은 차이는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는 뜻이다. ‘그게 그거’라는 얘기다. 비슷한 이야기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있다. 한식과 청명은 보통 하루 사이이므로 하루 늦게 죽으나 빨리 죽으나 별 차이가 없음을 일컫는 의미다.

청명은 양력 4월 5일 전후에 든다. 이날은 한식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 있으며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다. 청명이란 말 그대로 날씨가 좋은 날이다. 날씨가 좋아야 봄에 막 시작하는 농사일이나 고기잡이를 하기에도 수월하다. 손 없는 날이라고 하여 따로 택일을 안 해도 산소를 돌보거나 집수리 같은 일을 해도 괜찮은 날로 여겼다.

재일동포 한식 성묘단 고국방문 성묘(1976). 국립민속박물관
   재일동포 한식 성묘단 고국방문 성묘(1976). 국립민속박물관

한식은 4대 명절(설, 단오, 추석, 한식)의 하나로 고려와 조선에서 중요한 절기로 여겨졌다.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불의 사용을 금하거나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은 거의 없어졌다. 농경사회를 벗어난 오늘날은 청명과 한식이 봄나들이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맘때면 전국의 산과 강은 나들이객들로 북적댄다. 그러나 요새도 뜻있는 후손들은 조상을 찾아 성묘를 하고 간단한 제사도 지낸다.

코로나 19가 두 해째 봄을 가로막고 물러날 생각을 않는다. 봄꽃이 한창이고 청명‧한식이 코앞이지만 거리는 썰렁하다. 사람들로 북적대던 공원, 유원지도 예전 같은 생기가 돌지 않는다. 코로나로 일자리는 줄어들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이 힘겨운 실정이다. 이런 판국에 정치인들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편싸움만 하고 있다.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놓고 온갖 장밋빛 청사진이 남발되고 있다.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공약보다는 빚내어 뭘 자꾸 나눠주겠다는 선심이 도를 넘고 있다. 우리나라 곳간은 돈이 얼마나 쌓여 있길래 나눠줄 게 그렇게 많단 말인가.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말이 근래 들어 이판사판, 자포자기와 같은 절망적인 뜻으로 쓰이고 있다. 속된 말로 코로나에 걸려 죽든 굶어 죽든 뭐가 다르냐는 얘기다. 전대미문의 사회적 거리 두기로 골목경제가 초토화되고 있는데 K-방역 성공을 자랑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경제는 제쳐두고 방역에만 몰두하니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절망이 한계에 와 있다.

올해는 4월 4일이 청명, 5일이 한식이다. 농사와 예법을 중히 여기고 충신을 숭상하던 조상들의 지혜가 바래지 않도록 힘을 모아 난관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판사판 행동하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정치권과 나라의 지도자들이 솔선수범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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