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속 동백꽃!
폭설 속 동백꽃!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12.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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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중 동백꽃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임을 만난 듯 반갑다.
소년의 철석 간장은 봄 눈 녹듯 녹아내린다.
눈 속에 묻힌 동백꽃. 이원선 기자
눈 속에 묻힌 동백꽃. 이원선 기자

서해안의 폭설 소식을 접하고 달려간 곳에서 설 중 동백꽃을 만났다. 밤새 솜털처럼 살포시 내려앉은 눈송이를 흠뻑 뒤집어 쓴 동백꽃이 핏빛보다 검붉다. 많은 나무 중 두서너 그루를 빌어서 피다보니 더 귀해 보이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임을 만난 듯 반갑다.

겨울에 꽃을 피우는 꽃 동백(冬柏)은 차나무과 동백나무속 상록교목이다. 한국과 일본, 대만, 중국 등 동북아시아 등지에 자생한다. 꽃은 붉은색이지만, 흰색이나 분홍색 꽃도 있다. 동백은 꽃이 붉고 크다보니 소설이나 노래, 드라마 제목 등 여러 곳에 등장한다. 드라마로써는 ‘동백꽃 필 무렵’이 있고 소설로써는 김유정의 ‘동백꽃’을 꼽을 수 있다. 또 노래로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있다.

사실 김유정 소설 속 동백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동백꽃이 아닌 생강나무 꽃을 이르는 말이다. 소설 속의 주 무대는 강원도다. 강원도는 동백나무가 자라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런 곳에서 동백꽃의 등장은 지역의 특성에 맞지 않은 것이다.

피다 만 동백꽃이 눈을 이불처럼 덮고 있다. 이원선 기자
피다 만 동백꽃이 눈을 이불처럼 덮고 있다. 이원선 기자

“둘은 부둥켜안은 채 한창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린다” 그리고 그때 둘의 코끝으로 알싸한 냄새가 났다고 했다. 이는 생강나무가 부러지며 풍기는 생강 향을 뜻하기도 하지만 둘의 짜릿한 풋사랑을 비유적으로 표현함일 것이다.

늦가을의 무서리를 건너서 함초롬 눈을 뒤집어 쓴 모습이 시대를 거슬러 순박하다 못하여 어리숙한 나와 점순을 기억하게 한 것이다. 사실 그 닭싸움은 닭싸움을 이기려는 것보다 마름의 딸로 말괄량이 같은 소녀 점순을 이기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는지도 모른다. 고추장까지 먹여 가며 이기기를 소망한 끝에 패하자 점순네 닭을 때려죽이고 만다. 이 때 점순은 소년에게 자기 말을 들으면 일러바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소년의 철석 간장은 봄눈 녹 듯 녹아내린다. 그 찰나지간 마름의 딸이 아닌 소녀로서 마음에 품었던 소년을 껴안아 생강나무 꽃밭에 묻힌 것이다.

겨울의 초입에서 만난 설 중 동백꽃!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은 또 다른 나와 점순 같은 풋풋한 사랑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