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이름으로 서양 문화 읽기
(67) 이름으로 서양 문화 읽기
  • 조신호 기자
  • 승인 2020.08.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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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픽사베이

 

창세기를 보면, 세상 만물에 하나씩 '이름'을 붙여주면서 천지창조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삼라만상은 유형별 구분(classifacation)에 이름(name)을 더하여 인식된다. 사람도 태어나면 아무개라는 이름으로 이승의 삶이 시작된다. ‘이름 가진 사람’에서 ‘이름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날마다 노력하며 성장, 발전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라는 속담이 국어사전에 있다. 이 속담은 엄밀한 의미에서 틀린 문장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 못하니 그렇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처럼 역사에 길이 빛나는 업적이 없으면, 이름을 남길 수 없다. 무명의 용사들처럼 대부분 사람들의 이름은 소멸되고 만다.

우리 한국인들은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작명(作名)의 어려움을 잘 안다. 아들은 가문의 항렬(行列)에 따라 이름을 짓는다. 이를 무시해도 자모음의 음향(音響) 조화와 이름 글자의 의미를 동시에 구성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작명가를 찾아가서 의뢰하지만, 요즈음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작명가들이 이름을 세 가지 지어 부모가 선택하도록 한다.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과제도 쉽지 않다.

서양 사람들은 자녀의 이름을 ‘짓는다’기 보다, ’가져온다’ 또는 ‘선택한다’. 성서의 인물들 또는 역사적인 위인들이라는 이름 저장고에서 하나를 골라 정하기 때문이다. 성서에 들어있는 존(John,요한), 피터(Peter,베드로), 폴(Paul,바울), 마이클(Michael, 미카엘), 메리(Mary, 마리아), 엘리자베스(Elizabeth) 등을 가져오고, 역사적인 인물에서 윌리엄(William), 아더(Arthur), 알렉스(Alexander)와 같은 이름을 선택한다. 영국의 왕가(王家)처럼,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름에 II(2세), III(3세)만 붙여 같은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 방법은 상파울로(São Paulo), 샌디에고(San Diego), 산티아고(Santiago)처럼 지명에도 적용하고 있다.

서양의 대표적인 남성 이름, 윌리엄(William)의 경우를 살펴보자. 월리엄은 게르만어의 will(의지, desire)과 helm(투구, helmet)의 합성어이다. 그러니 윌리엄은 아들의 이름으로 손색이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잉글랜드의 ‘정복왕 윌리엄 1세’(William the Conqueror, 1028?~1087)가 비조(鼻祖)이다. 그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윌리엄이라는 남성들이 등장했다. 위키백과에 검색해 보면, 명사(名士)로 수록된 ‘윌리엄’이 340여 명이나 된다.

윌리엄은 윌(Will), 윌리(Willys), 빌(Bill, 발음 변이)이라는 애칭으로도 사용되기도 하고, 끝부분을 잘라서 리엄(Liam)이라고 한다. 리엄은 아일랜드 출신임을 의미한다. 윌리엄은 유럽의 각국에서 조금씩 다르게 발음된다. 빌헬름(Wilhelm, 독일), 기욤(Guillaume, 프랑스), 굴리엘모(Guglielmo, 이탈리아), 빌렘(Willem, 네덜란드), 빌게름(Вильгельм, 러시아)이라고 한다.

여성 이름 엘리자베스(Elizabeth)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사촌이자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에서 유래된 것이다. 히브리어 인명, ‘엘리셰바’의 고대 그리스어 표현인 ’엘리사베트(Ἐλισάβετ)’에서 온 것인데, '하느님이 약속하심' 혹은 '하느님은 충만하심' 이라는 의미이다. 애칭은 엘리(Ellie), 엘리자(Eliza), 리사(Lisa), 리즈(Liz), 리지(Lizzie), 베스(Beth), 베티(Betty), 엘리제(Elise), 엘제(Else), 엘자(Elsa) 등의 애칭으로 다양하다. 스페인어로는 ‘이사벨’이라고 하고, 프랑스어로는 엘리자베트(Élisabeth)와 이자벨(Isabelle)이라고도 한다. 러시아어로는 옐리자베타(Елизавета)이고, 애칭은 리자(Лиза)이다. 헝가리어로는 에르제베트(Erzsébet)라고 한다.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 주 사람들은 옛 이름을 선택하는 문화에 살고 있고, 한국과 같은 동양은 이름 창작 문화 살고 있다. 동양과 서양은 이름을 비롯하여 많은 것이 정반대인 것이 많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