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문화재지킴이회, 육신사에서 상반기 마지막 사회공헌활동
대구문화재지킴이회, 육신사에서 상반기 마지막 사회공헌활동
  • 안영선 기자
  • 승인 2020.08.04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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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공헌 활동1팀원들

 7월 31일 장맛비가 잠시 멈춘 틈을 이용해 (사)대구문화재지킴이회(회장 황영희) 사회공헌활동 제1팀(팀장 이용우) 11명은 사회공헌활동 전반기를 마감하면서 달성군 하빈면 묘골의 육신사와 하목정 등 우리문화재를 살펴 보고 연수를 했다.

대구문화재지킴이회 사무실에 모여 육신사와 하목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뒤 육신사로 향했다. 먼저 상주해 있던 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들었다.

 사육신의 한 분이신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순천박씨 충정공파 집성촌 묘리는 광복 이전까지만 해도 100여 가구가 있었으나 지금은 30여 가구가 사는 마을이다. 마을 끝 회나무와 육신사의 정문인 외삼문을 지나면 홍살문이 나온다.

사당 앞에는 1979년에 육선생사적건립위원회에서 세운 육각비가 있다. 각 면마다 사육신의 행적이 명기되어 있다. 자신은 물론이요. 온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면서도 절의를 굽히지 않았던 사육신의 불사이군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도 오늘을 살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태고정과 일시루 두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 보물 제554호와 외삼문 오른쪽에 제사로 이용됐다는 숭절당을 봤는데 숭절당은 동재 서재로 구성되었는데 100년이 넘지 않았다고 한다.

육신사를 둘러보고 하목정으로 향하려는데 안영선 회원이 제사 이야기를 했다. 처음 박팽년을 기리기 위한 사당을 지었을 때는 하빈사라고 했는데 그때는 자기들의 조상인 박팽년 선생만을 후손들이 제사를 지냈는데, 선생의 현손인 박계창이 선생의 제삿날 사당문 밖에서 나머지 사육신들이 기웃거리는 걸 꿈으로 꾸고 모두의 재물을 차리고 같이 재사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육신사를 나와 자동차를 타고 하목정(霞䳱亭)으로 향했다. 하목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낙포 이종문(李宗文)이 1604년에 세웠다. 하목정이라는 정호는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서 머문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이종문의 장남인 이지영에게 직접 써주었다고 하는데,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우측 1칸에는 앞쪽으로 누 1칸을 첨가하고 뒤쪽으로 방 1칸을 더 만들어 정자형(丁字形)으로 구성했다. 건물 내부에는 김명석 남용익 등 명인들의 시액이 걸려 있는데 주위에는 베롱나무 꽃이 만발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