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법'에 대한 단상
'구하라법'에 대한 단상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0.07.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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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라는 명분으로 재산을 상속받는 것에 대하여 반발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병원으로 이송된 그는 그날 밤 끝내 숨지고 말았다.
상실감에 젖는 노년의 암울함은 누가 위로해 줄 수 있을까?

2019년 11월 24일 유명 걸그릅의 가수 ‘구하라’가 외로움과 악플(악성 댓글)의 고통 속에 허덕이다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하였다. 9살 때 집을 나간 친모가 갑자기 나타나 상속자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부모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가운데 단지 어머니라는 명분으로 재산을 상속받는 것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반발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에 대해서 2020년 4월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일명 ‘구하라법’이 발의 되면서 그녀의 죽음과는 별개로 현재의 상속법에 대해서 문제점이 제기된 것이다. 이는 가수 ‘구하라’라는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그동안 여러 곳곳에서 그 문제점이 종종 표출되고 있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현재 국민의 정서상 부모라면 당연히 부양의 의무와 교육의 의무 등등 자식을 돌보아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등한시 한 채 자신의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오직 금전적인 이익만을 취하려는 검은 속내를 드러낸 것에 대하여 국민들은 용서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현재의 상속법으로 볼 때 미혼의 자녀나 결혼을 했더라도 자녀가 없는 경우에 사망 시 친권자인 부모에게 그 상속권이 부여되고 있다. 이러한 법 취지를 볼 때 법률상으로는 하자가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대부분은 정상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런 경우를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서 그때의 안타까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약 20여 년 전으로 기억된다. 회사에 Y군이 입사했다. 할머니의 슬하에서 자랐다는 그는 다소 소심한 성격에 내성적이었다. 잘 웃지 않았던 그가 어느 정도의 적응기간을 거치자 서서히 활기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웃음이 늘어나자 할머니의 슬하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점점 잊어갔다.

그 무렵이었다. 그것은 정말 우연이며 뜻밖의 사고로 고속도로 상에서 일어났다. 고속도로 갓길에서 공사를 할 때면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서 매뉴얼에 따라 만전을 기한다. 설령 그렇더라도 불의의 사고는 어쩔 수 없다. 그날도 공사현장에서는 일정거리를 두고 공사 중을 알리는 차량을 배치했다. 하지만 졸음운전 화물차가 1차로 추돌한 공사안내 차량이 앞으로 튕기면서 현장을 덮쳤다. 병원으로 이송된 Y는 그날 밤 끝내 숨지고 말았다.

사고가 나고 직원이 사망하자 잘잘못을 떠나 회사에서는 장례에 따르는 일체의 비용을 부담한 가운데 애인의 손에 의해서 한 줌의 재가 된 Y군은 자연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장례가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부모가 하늘에서 떨어진 듯 나타난 것이다. 이에 따라 모든 상속권은 부모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보험회사의 사망보험금을 포함, 회사의 위로금과 퇴직금 일체를 포함해서 말이다.

졸지에 생때같은 손자를 잃은 할머니는 망연자실했다. 꿈인가? 생신가? 그저 눈물바람이었다. 잠시 정신줄을 놓았다가 깨어보니 모든 것이 현실임을 알아차린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하소연했다고 했다. 빚이 약 800만 원 정도 있는데 제발 그것만이라도 갚아 달라고! 하지만 아들과 며느리는 철저하게 외면했고, 사무실에서 만난 할머니는 어떻게 방법이 없느냐고 하소연했지만 또렷한 방안이 없기에 그저 죄송하다고만 했다. 단지 위로금과 퇴직금을 수령하려온 Y군의 아버지께 사실을 털어놓고는 할머니의 편리를 부탁할 뿐이었다. 한데 후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들과 며느리는 모든 상속에 따른 금전적인 계산이 끝나자 다시 종적을 감추었다는 것이다. 그때 사망보험금을 포함한 상속재산의 총액은 알 수가 없다. 할머니의 부채를 제외하고도 상당한 금액이었을 것이다.

그리스의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 까닭에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법 조항에 문제점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불특정다수의 국민들이 불편을 느끼고 손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면 이는 당연히 보완하여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부양의무를 다하지 못한 경우 재산 상속권을 박탈한다는 일명 ‘구하라법’이 국민동의 청원까지 하여 발의되었으나 안타깝게도 20대 국회의 무능으로 폐기되고 말았다. 법이 발의된다고 국회의 문턱을 전부 넘을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동의 청원에 올라온 소위 ‘구하라법’은 국민들 대다수가 공감하고 찬성하는 분위기로 흘렀었다. 이는 현재의 상속법에 대해서 분명 하자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불특정 다수인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법을 개정하든지 아니면 보완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는 여전히 침묵 중이다.

근래에 들어서면서 조손가정이 점차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이혼율이 높고 자신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는 자녀들의 삶이 어떻게 되든 간에 배척한다는 방증이기도하다. 나아가 산업전선에서 해방, 이제 막 노후를 즐기려는 시니어들에게는 무거운 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고사 등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따위가 없으면 좋으련만 남의 일 같은 불행이 언제든 내게도 닥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 ‘구하라법’이라도 있어서 어느 정도 위로를 받으면 좋으련만 그간의 공은 없고 과만 가득하여 상실감에 젖는 노년의 암울함은 누가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이 마당에 무얼 더 바라겠어요! 걸음도 시원찮은 늙은이가 빚이라도 없으면 좋으련만...!” 하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쓸쓸하게 사무실 문을 열던 할머니의 뒷모습에 대한 기억이 미래의 나를 보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