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선물-어머니를 추억하며
[어버이날] 선물-어머니를 추억하며
  • 우순자(파란꿈) 기자
  • 승인 2020.05.0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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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로 챙겨야 할 기념일이 많다.

기념일이면 감사한 마음의 표시로 선물을 준비해 주고받는 기쁨을 나눈다.

결혼하고 한 달 만에 첫 어버이날을 맞았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할 선물인데 쿨하게 원하는 것을 하겠다는 거다. 신세대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30여 년 전에는 용돈만 드리면 성의가 부족하다고 할까봐 선물까지 챙겼다. 먼저 결혼한 친구와 동료의 조언을 듣고 몇날 며칠 발품 팔아 재킷을 준비했다.

갓 결혼해 무엇을 살지 고민하고, 재킷을 준비하기까지 애쓴 걸 생각하면 나 자신이 기특하고 뿌듯하기까지 했다. 허나 당신이 좋아하는 색상이 아니라며 교환을 원했다. 웬만하면 입으시면 좋으련만 마음에 안 든다는데 억지로 입으랄 수도 없었다. 교환을 위해 쉬는 날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했으니 선물한 나로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옷은 마음에 들어야 입을 수 있으니 다음해부터는 옷 대신, 가구와 부엌 살림을 바꾸어 드리는 것으로 갈음했다.

첫 번째로 바꾼 것이 어머님 방에 있는 텔레비전 받침대다. 그 자리에 3단 서랍장을 놓고 텔레비전을 올려놓았다. 깜짝 놀라게 해드리고 싶어 귀띔하지 않았는데 기대한 것과 달리 그다지 좋아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아이는 제 물건에 손대는 걸 싫어했다. 너덜너덜 떨어진 옷이 넝마주이들이 입는 옷 같아 버렸을 뿐인데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달라며 싫은 소리를 했다. 어머님마저도 ‘넌, 버리는 걸 좋아하잖아’ 하시지만, 버리는 걸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물건과 아닌 것을 구별할 줄 알았다고나 할까.

모든 걸 자기 잣대로 살 수는 없다. 나로서는 버려도 되는 물건이었지만 아이에겐 아끼는 물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음이다. 어머님 방에 있던 텔레비전 받침대도 다르지 않았다. 해방 전 세대로 가난한 살림에 6남매를 키워야 하는 가장으로 사셨다. 남들은 쉽게 샀을지 몰라도 뼈품을 팔아서 샀을 테고, 비록 낡았다 하더라도 당신에게는 추억이 깃든 물건일 수도 있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했던가. 집을 짓고 입주하며 어머님 방의 가구를 하나만 놔두고 모두 새 가구로 바꾸어 드렸다. 돌아가신 뒤에도 당신 방의 가구를 정리하면서도 그것만큼은 남겨두었다. 두 번이나 버려질 위기를 맞고도 남겨진 것은 어버이날을 맞아 첫 번째로 산 가구인 3단 서랍장이다. 높지 않고 자질구레한 용품들을 넣어두기에 안성맞춤일 뿐이지 특별히 아낄 만큼 비싼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버릴 수 없었다.

어머님이 안 계신 1층을 환하게 밝히기 위해 2층에 있던 서재를 1층 어머님 방으로 옮기면서 덩그러니 있던 서랍장을 또 치워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버리지 않고 작은방으로 옮겨 지금껏 사용하고 있으니 30여 년의 전통을 갖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에서 생활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사람이 그립고 말벗이 그립다.

어머님은 자주 “야야, 넌 어떻게 천 날 만 날 그리 늦노?”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이 말은 외롭다, 말벗이 그립다는 또 다른 말이었음을 안다.

가정의 달 5월이 되면 어머님의 단골 레퍼토리인 ‘왜 그리 늦노’라는 말의 뜻을 되새기곤 한다. 어버이날이라 선물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주 안부 인사를 전하고, 찾아가서 마음을 나누는 5월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