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스피노자와 미신
(28) 스피노자와 미신
  • 김영조 기자
  • 승인 2020.01.07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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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과 이성으로 미신의 예속에서 벗어나자
바뤼흐 스피노자 위키백과
바뤼흐 스피노자 위키백과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는 신()은 우주를 창조한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모든 자연 만물을 생성시키는 자연 그 자체 즉 자연의 법칙이 바로 신이라는 범신론을 주장하였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낮과 밤이 순환하고 하는 것, 사람이 사랑하고 증오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것 그 자체가 신의 섭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필연적, 결정론적 세계관을 주장하였다. 우주는 필연적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이며,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써 필연적으로 서로 맺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예속에 맞서 자유를 주장한 철학자이다. 사람들은 본질이 아닌 상상력이나 미신에 예속되는 경우가 많다. 얼굴이 험상궂게 생겼다고 범죄자로 생각하여 접근을 피하고, 벼락은 전생의 업보 때문이라 믿고 무속의 방법으로 이를 퇴치하려는 경우가 그것이다.

미신은 약한 지성과 강한 상상력에 의하여 발생하고 확대된다. 세상에 우연히 제멋대로 일어나는 일은 없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과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스피노자는 사람들이 그 원인과 인관관계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나 인식 없이 결과만을 보고 여러 가지 상상을 하기 때문에 공포와 불안이 생긴다고 하였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은 적게는 1/3에서 많게는 2/3 가량의 유럽인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 원인을 모르던 시절 사람들은 미신으로 이를 해결하려 했다. 하늘이 내린 천벌이라 생각하고 기도하다가 죽고,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자신을 알몸으로 채찍질하여 피투성이가 되어 죽기도 하였다. 유대인이 물에 독을 탔다고 생각하여 유대인을 생매장하거니 산채로 불태워 살해하기도 하였다. 파리의 한 대학 의학과는 토성과 목성이 겹치는 천체이변의 결과라고 공식 발표하기도 하였다, 본질과 원인을 모르고 결과만을 생각하며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미신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결과는 공포와 불안 상황에서 나아가 광기의 상황으로 흘러갔다. 교황의 권위로 자제를 호소했지만 상상력과 미신에 빠진 군중에게는 허사였다.

1923년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역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가 14만 명, 이재민 340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재난 피해가 있었다. 이 와중에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방화하였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조선인과 조선인으로 의심받았던 중국인이나 일본인까지 대량 학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미신과 상상력의 예속으로 인한 참극이다.

스피노자는 본능이나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전체를 살펴서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돕는 것이 바로 이성이라고 했다. 그는 감정이나 본능을 철저히 불신하고 이성을 무한히 신뢰한 합리주의자였다. 그는 상상적 원인을 근절하고 지성을 통해 적합한 원인을 인식하는 것 즉 합리적 질서를 파악하는 것이 예속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하였다.

어렸을 때 다쳐서 얼굴이 험상궂게 되었고, 벼락은 구름의 충돌로 인한 자연현상이며, 흑사병은 쥐벼룩이 옮기는 질병이며, 지진은 지하 지질의 붕괴의 자연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미신에 예속되지 않을 것이고, 공포와 불안과 광기도 없어지거나 줄어들 것이다.

오히려 원인을 정확히 알았다면 나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고, 보다 빨리 피뢰침이나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를 발명하고 지진대피 방안을 강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원인과 이유를 정확히 알면 증오나 분노, 실망의 마음이 사라지고, 진정으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버스 경로석에 학생 하나가 앉아 있었다. 나이 든 할머니 한 분이 버스에 올라 학생 앞에 섰다. 그러나 학생은 전혀 자리를 양보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좋지 않는 시선으로 학생을 주시하고 있었다. 질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얼마 후 학생이 내리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보니 학생은 다리가 매우 불편한 중증장애인이었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만약 처음부터 그 원인과 이유를 알았더라면 그런 오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중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미신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 역사적으로 통치자들은 국민들을 착각, 오해, 상상 등의 미신에 빠뜨려 통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국민들은 또 그렇게 쉽게 미신에 빠져들었다.

김일성의 자손이니 백두혈통이니 당연히 위대한 지도자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박정희의 딸이니 국태민안(國泰民安)의 부강한 나라를 만들 것이라 생각했고, 김대중의 후계자이니 민주주의를 꽃피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위대하지도 않았고, 부강하지도 않았으며, 민주적이지도 않았다.

지금 우리 국민은 이러한 미신의 예속에 빠져 있다. 정치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 정치를 잘 할 것이라고 상상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니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평안해질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 착각과 상상, 오해 속에서 우리는 보수는 부패와 타락으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과 무능으로 망한다는 경험을 반복해 왔다. 원인과 이유, 본질을 따지지 않고 이념과 계파라는 미신에 사로잡힌 결과이다. 이제 지성과 이성을 되찾아 진정한 정치가 무엇인지 진정한 정치인이 누구인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미신의 예속에서 벗어나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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