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스피노자와 사과나무의 함의(含意)
(31) 스피노자와 사과나무의 함의(含意)
  • 김영조 기자
  • 승인 2020.04.06 10: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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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이에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위기를 하나의 주어진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무시하며, 꿈과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 말을 우리나라에서는 스피노자(Spinoza)의 말로 알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한 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루터가 어릴 때 쓴 일기장에 이 내용의 이 글귀가 적혀 있다. 그리고 독일의 아이제나흐(Eisenach)라는 시골마을에 이 글귀가 새겨진 루터의 기념비가 한 그루의 사과나무 그늘 아래 세워져 있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든다.

마르틴 루터    위키백과
마르틴 루터 위키백과

 

그러나 이 말은 모든 사물은 원인과 결과라는 필연적인 관계로 되어 있다는 스피노자의 철학에 부합되는 말이니 스피노자가 한 말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누가 한 말이냐는 것보다 이 말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스피노자가 말했다는 전제하에서 이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첫째,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결코 이에 굴복하지 않고 나의 삶을 꿋꿋이 살아가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표시한 것이다. 꼭 지구의 멸망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 커다란 어려움과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결코 굴복하거나 삶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나타낸 말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충언을 간하던 옛 충신들이나 일제의 압제에 굴복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펼친 우리 선조들의 순국의지 또는 서슬 퍼런 독재 치하에서 정의와 민주를 외치던 민주투사들의 강골의지에서 그 단면을 볼 수 있다. 

둘째, 지구가 멸망한다는 것은 필연적 사실이니 나는 이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그저 내 할 일이나 하겠다는 순종의 의미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서 이루어진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지구가 멸망하거나 위기가 올 수 있고, 그것은 당연하고 필연적인 사실이다. 그러니 나는 이것을 운명이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살아가겠다는 의미이다.

죽음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순리로 받아들이겠다는 위대한 사상가나 철학자들에게서 이를 볼 수 있다. 중국의 도가(道家)사상가인 열자(列子)可以生而生 天福也(가이생이생 천복야) 살 수 있는데 사는 것은 천복이요”, 可以死而死 天福也(가이사이사 천복야) 죽을 수 있는데 죽는 것도 천복(天福)이다라고 한 것은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것이 순리이고 행복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열자는 可以生而不生 天罰也(가이생이불생 천벌야) 살 수 있는데 살지 못하는 것은 천벌이요”, 可以死而不死 天罰也(가이사이불사 천벌야) 죽을 수 있는데 죽지 않는 것도 천벌이다라고도 하였다.

셋째, 스피노자는 자연 자체가 신()이고 항구적인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범신론적인 그의 입장에서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나는 지구의 종말 같은 사실은 아예 부정하거나 무시하고 내 할 일이나 하겠다는 의미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절대적인 전력의 열세 속에 있던 병사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하여 生卽死 死卽生(생즉사 사즉생)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라고 한 말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패배할 수 있으니 아예 죽음이라는 생각을 부정하거나 무시하고 최선을 다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넷째, 비록 지구의 종말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이 내 할 일 하다보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즉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항상 희망과 가능성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과 역사는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인생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과정이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라는 의미이다.

이상 네 가지의 함의(含意)를 종합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 어려움과 위기가 닥쳐올 수 있으나, 이에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위기 자체를 하나의 주어진 조건이라고 생각해야 하며, 나아가 위기 자체를 무시해버리고, 오히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자기 직분에 충실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21세기 최대의 위기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이러한 위험은 언제든지 닥쳐올 수 있는 하나의 자연현상이라 생각해야 하며, 따라서 이를 무시하고, 언제가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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