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34)
녹슨 철모 (34)
  • 시니어每日
  • 승인 2019.11.1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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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 장교들은 이상하게 군의관만 보면 마치 그들의 피부에 두드러기라도 돋는 듯 거부감을 보였다. 대부분의 사병과 장교들은 표현을 잘 않지만 때로는 사람에 따라 대놓고 ’군의관이 군인이라면 전봇대에 꽃이 핀다'며 빈정대고 놀려대는 사람도 있었다. 하긴 군의관들도 보병 장교들을 무식한 놈들이라고 깔보는 사람도 많았다. 

태원은 2대대에 와서 한동안 새벽에 일어나 사병들과 함께 구보를 하였다. 원래 그의 천성이 강박적이고 융통성이 없는데, 그런 그의 단점이 오히려 군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하였다. 두발이나 복장이 보병들보다 더 군인다웠으니 보병들은 태원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그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개중에는 악의를 갖고 어떤 이는 장난으로 예의 그 속담을 대며 그를 놀려대고 하였다. 

그날도 ‘안케 전투의 영웅' 이야기 다음에 또 그런 농담이 오갔다. ’군의관이 군인이면...' 운운하는 이야기와 위생병들이 군인이냐 등의 이야기들이 오갔다. 태원은 발끈해져 이들과 한 번 겨뤄 혼을 내주어야겠고 마음을 먹었다. 보병 장교들은 정보가 어두운 모양이었다. 얼마 전 연대사격대회에서 의무중대가 1등을 하였고, 육군 규정시험도 의무중대가 1등을 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좋아. 그렇다면 우리 애들하고 당신 애들하고 사격시합 한 번 해볼까?” 

태원이 시비를 걸었다.

그는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꼭 한 판 붙고 싶었다. 말단 대대 보병들은 학력이 높지 않거나 어려운 환경 출신들이고 위생병들은 최소한 고졸 이상의 학력이었으므로 무엇을 해도 보병보다는 나았다. 그런 배경을 믿고 있었으므로 한 번 해볼 만했다. 그리고 훈련 때는 각 중대에 위생병들이 파견을 나가는데 도와주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기를 한번 눌러놔야 앞으로 그런 소리가 줄어들 것 같았다. 보병 중대장들은 불쾌한 얼굴들을 하였다. 어찌 감히 ‘핀셋’이 보병들에게 총 쏘기 시합을 하자는 말이냐는 투였다. 사실 장거리 구보나 행군 그런 것들은 위생병이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기술과 정신력이 필요한 사격은 위생병이 나았다. 태원과 중대장들은 무엇이든 한판 붙어 보자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군의관 당신 애들하고 우리 애들하고 배구시합 한 판 해보자고.”

7중대장이 도전장을 던졌다. 7중대장은 자신의 중대에 연대 배구 대표선수가 몇 있다는 생각에 자신있게 한 판을 제의한 것이다. 태원은 내심 뜨끔하였다. 그쪽의 전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으면 앞으로 군의관과 위생병은 싸잡아 보병들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차라리 싸우다 지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그는 바로 대답했다.

"그거 바라던 바야. 좋아. 우리 그냥 할 게 아니라 뭘 걸고 해야지.”

그는 불안을 큰 소리로 감추고 대들었다. 태원과 임 대위는 서로 차용증서를 썼다. 누구든 이기면 그 증서를 갖고 PX에서 기재된 만큼의 물건을 사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다음 날 오후 배구시합이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태원과 그의 선임하사는 운동과는 담을 쌓은 사람들이고 김철수 병장만 만능 운동선수였다. 의무실 병력 전부가 참가해도 배구팀 선수 수를 겨우 채울 정도로 빠듯한 형편이었다. 많은 보병이 모여들어 이 흥미로운 시합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 병장이 말했다.

“군의관님, 우리가 불리하지만은 않다고요. 얼마 전에 온 신병 있잖아요. 그 녀석이 선수였대요.”

“뭐, 뭐라고?"

태원이 화들짝 놀라며 반문하였다.

"그 친구가 자기 대학 배구선수였대요. 비록 후보기는 했지만요. 그러니까 한 번 해볼 만하다는 얘기입니다.”

김철수가 상대편 선수들이 들으라는 듯 태원에게 큰 소리로 귀띔해주었다. 드디어 배구 그물이 쳐지고 오늘의 주심인 본부 중대장의 호각 소리와 함께 배구시합이 시작되었다. 시합은 예상대로였다. 시작하자마자 일방적으로 위생병들이 당하기 시작하였다. 리시브는 물론이고 서브도 실수하고 상대방의 힘없는 블로킹에도 마냥 당하기만 하였다. 태원은 타임을 불렀다. 그는 일생에 처음으로 운동시합의 감독이 되었고 게다가 타임도 처음 외쳐 보았다. 무슨 작전지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야, 져도 아무 상관 없어! 내 돈만 조금 손해 보면 되니까 말이야. 하지만 지더라도 남자답게 져야지 너무들 움츠리고 있잖아. 힘내서 해.”

이런 시답지도 않는 지시로 작전타임을 마치고 다시 시합이 계속되었다. 작전지시가 효과를 본 것일까? 돌연 신병 이 일병이 활약을 시작했다. 이제야 그의 몸이 풀린 모양이었다. 그가 내리치면 7중대에서는 공을 받을 사람이 없었다. 그쪽으로 넘어오는 공은 그가 다 받아내었다. 드디어 게임이 역전되었다. 

이번에는 7중대장이 타임을 걸었다. 그는 선수들을 불러내 작전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니고 실수를 한 사병들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두들겨 팼다. 태원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런 분위기면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다. 7중대장은 게임 중에 수시로 군기를 잡는다고 선수들을 위협하고 꾸중을 하였다. 보병들은 그들의 동료가 처참하게 깨지는 모습에 우울해 하고 반면 노상 보병들에게 무시당하던 위생병들은 더욱 신이 나서 상대방의 그물 너머로 공을 내리쳤다. 이 광경은 이스라엘의 ‘6일 전쟁’을 방불케 하였다. 아랍 연합군의 그 큰 덩치가 소리 없이 허물어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시합이 끝난 그 날 오후 해는 지고 있는데 7중대원들은 완전군장을 하고 부대 밖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여보, 7중대장 너무 하잖소. 운동시합 졌다고 그렇게 애들을 들볶는 법이 어디 있소?"

웃으며 태원이 이야기를 하자,

“그게 아냐. 이 새끼들이 평소에도 군기가 다 빠져 있었어. 내 오늘 그 군기를 다시 집어 넣어주려는 게지. 배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야.”

변명하듯 말을 던지고 자신도 완전군장을 하고 부하들의 행렬 앞으로 뛰어갔다.

 

병주로부터 편지가 왔다.

“여보, 보고 싶어요. 저는 한참 망설였어요. 뭐라고 당신을 부를까 하고 말이에요. 막상 부르고 나서도 부끄러워요. 당신은 부대에서 여전히 고생이 많으시죠? 저 역시 편하지는 않네요. 

예상은 했지만 당신 집과 친정은 너무나 다른 점이 많아요. 그래서 힘이 들 때가 자주 있네요. 아직 식구들 호칭도 힘들지만 집안 분위기에 웃음이 없는 게 가장 힘든 점이에요. 모두 묵묵히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은 좋지만 표정들이 너무 굳어 있어요. 저는 혹시 시부모님께서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가 하는 걱정도 해본답니다.

빨리 우리 함께 살아요. 당신이 왜 평소 저에게 그렇게 냉담하고 무뚝뚝하게 느껴지는 말과 행동을 했는지 이제 약간은 이해가 되네요. 집안 식구들이 많기도 하지만 시어머님이 남자 같아서 저는 친정 엄마와 너무 다르게 느껴져요. 속으로야 정이 많으시겠지요. 혹시 전에 부모님이 정해 놓으신 여자가 있었거나 아님 당신이 나 몰래 어디 선본 여자는 없었나요?

심지어 그런 걱정도 해본답니다. 보고 싶지만 마음대로 갈 수도 없고 편지조차 혼자 쓰고 있으면 어쩐지 눈치가 보여요. 보고 싶어요. 빨리 집을 마련해서 저를 이 집에서 데려가 주세요. 이만 쓸 게요.

병주 올림“

태원은 콧등이 시큰함을 느꼈다. 글이 길진 않지만 정확하게 분위기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태원도 그런 집 분위기가 싫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떠나 일부러 서울로 대학 진학을 했던 것이다. 태원은 선을 본 적이 없었다. 이런저런 말은 있었어도 응하지 않았다. 병주의 편지를 보니 그의 부모가 뭔가 며느리에 대한 불만이 있는가 하는 걱정도 되었고 또 자신이 그렇게 벗어나고 싶던 집에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있다는 안쓰러움과 그녀가 그런 분위기에 억눌려 지낸다니 화도 나고 기분이 상했다.

 

태원의 집은 큰 공장에 붙어 있는 일본 적산가옥이었다. 공장 종업원과 가족들이 와글거리는 대식구였다. 조용하고 아늑한 가정이 아니라 늘 전장처럼 소란하고 싸우고, 이기고 그래서 쟁취하는 것이 목적인 그런 장사꾼의 집이다. 그런 공격적인 분위기가 태원을 공부하도록 독려하고 그 결과 오늘날의 전문직에 이르게 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탓에 태원이 한식으로 된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부러움과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들 부모의 한가하고 느릿한 행동을 보면 어쩐지 딴 나라 사람들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태원이 그의 아버지에게 받은 일본식 교육과 사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들이었다.

새댁 병주는 흡사 자신이 다른 나라에 시집와 사는 기분이었다. 어려서부터 풍족하게 살았고 과수원과 정미소를 했지만 이 집처럼 늘상 이런 북새통과 전장 분위기는 아니었다. 뭔가 앞만 보고 급하게 달려가는 사람들, 남에게 지면 안 되는 사람들, 싸워서 이겨야 하는 사람들, 그러기에 그들은 웃음이 없었고 항상 긴장되어 있었으며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능률적이지 못하거나 약한 사람들을 낮춰 보고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태원의 부모였다. 이런 이질감 때문에 병주는 견디기 힘들었다.

병주가 힘들어 해도 태원으로서는 지금 당장 어쩔 수가 없었다. 전방에서 살림하는 장교들은 없었다. 다만 하사관들은 거의가 다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장교들은 한 부대에서 근무기한이 2, 3년밖에 안 되므로 그때마다 이사를 다닐 수가 없었고 또 그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대개 대도시에 가정을 두고 있었다. 이에 비해 하사관들은 한 번 전속하면 오래 동안 근무하는 탓에 아예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태원은 좀 무리를 하더라도 병주와 함께 살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전방 기지촌의 분위기는 일반인이 살기에는 너무도 부적합했다. 도시 한가운데서 이 꼴 저 꼴 다 보고 자란 태원으로서도 견디기 힘든 환경인데 도저히 병주 같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달 뒤면 자신이 후방으로 전출되기 때문에 그동안만 참기로 한 것이었다.

태원은 6·25 때 국민학교를 다녔다. 그의 국민학교는 미군이 점령하여 부대로 사용하고 있어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저학년들은 변두리에 판잣집을 지어 가교사에서 공부하고 고학년은 강변에 나가 노천수업을 하였다. 그 덕에 저학년들은 그나마 비나 눈은 피할 수 있었다. 그래도 교실이 부족해 한 교실에 두 반을 합해 수업하였고 그것도 모자라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하였다. 태원의 국민학교는 도시 한복판에 있었으므로 학생들도 크게 세 부류로 나뉘었다. 잘사는 동네 애들과 못사는 동네 애들, 그리고 이북에서 피란 온 애들이 함께 다녔다. 그래서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도 서로 말씨나 습관이 달랐다. 먹고 입는 모습도 달랐다. 가난한 집과 피란민 애들의 부모는 밤이 되어야 귀가를 하니 애들은 점심도 굶었다. 그리고 딱히 갈 곳도 없으니까 오후반 애들도 아침 일찍부터 대개 학교에 나왔다. 그러나 운동장에는 못 들어오게 하니까 학교 밖 길거리에서 오후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