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빈축(東施嚬蹙): 동쪽의 서시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다.
동시빈축(東施嚬蹙): 동쪽의 서시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다.
  • 이원선 기자
  • 승인 2019.11.04 11: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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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애칭은 침어(浸魚)다.
범려와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삐쩍 마른 년이 밥 굶는 것을 보며 손녀지만 너도 가끔은 낯설어!”

 

서시는 춘추시대(春秋時代)말 월나라의 가난한 나무꾼의 딸이었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시이광(施夷光)으로 완사녀(浣紗女)라고도 했다. 그녀의 이름이 서시가 된 까닭은 마을의 서쪽에 사는 시씨라는 데서 기연되었다. 이때 동쪽에 사는 서씨를 동시라고 했다. 서시의 어머니는 빨래를 직업으로 완사(浣紗)라고 했으며 고향마을 시내를 완사계(浣紗溪)라 불렀다. 서시 자신도 병사들의 갑옷을 빨았기에 완사녀(浣紗女)라 했던 것이다.
양귀비, 초선, 왕소군과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불리는 그녀의 애칭은 침어(浸魚)다. 어느 날 갑옷을 빨다가 잠시 손을 놓고 물에다 얼굴을 비추자 그녀의 미모에 반한 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은 데서 유래되었다. 

그즈음 오나라가 순식간에 월나라를 무너뜨리고 월왕 구천과 함께 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에 범려와 문종은 월나라 여인들을 대상으로 미인대회를 열었다. 이때 일차로 200여 명이 선발되었으며 몇 년 간의 비밀훈련 속에 최종 선발된 여인이 정단과 서시다. 그녀들은 오왕 부차에게 받쳐지는 일종의 공녀였다. 이는 부차의 마음을 녹이는 등 눈을 흐려 국력을 약화시키는 임무도 함께 주어졌다.
이에 연환계를 철저하게 완성시킨 여인이 서시다. 같이 간 정단은 질투에 눈이 멀었다. 자칫하면 원화 남모와 준정의 다툼처럼 자멸할 수도 있었지만 서시는 이성적이면서도 냉철했다. 이에 정단은 부차의 마음이 점차로 서시 쪽으로 기울자 분함을 삭이지 못해 스스로 죽어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서시의 계획, 즉 범려와 문종의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중국의 미인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양귀비(양옥환)로 인해 안사의 난이 일어나 헌종이 피난길에 오르는 등 당나라는 누란의 위기에 빠졌고, 초선으로 인해 천자를 꿈꾸던 동탁의 머리가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던 왕소군은 그런대로 편안했지만 북쪽 오랑캐(흉노)의 서슬 퍼런 칼날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녀의 계획은 느리고도 치밀했다. 뱃놀이를 빌미로 대운하 건설을 감행했다. 이로 인해 국력손실은 물론 팽팽하던 활시위는 아교가 녹아 느슨하게 늘어지고 창칼을 창고에 흩어져 녹슬었다. 뿐만 아니라 고소대 건립을 핑계로 과도한 부역과 과중한 세금징수 등으로 백성들을 핍박하여 원성을 사게 했다. 이런 와중에 월나라에서 온 간자들을 보호하는 한편 간신 백비를 이용하여 오나라 신하들을 차례로 포섭하여 월나라의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이즈음 그녀를 가장 미워한 사람은 초나라출신 오자서였다. 그는 틈만 나면 서시를 죽이라고 간언을 하는 등 눈엣가시로 등장하고 있었다. 성격이 과격하면서도 괄괄한 그는 부차 앞에서도 늘 당당했다. 이에 부차는 베갯머리송사로 어느 날밤 서시에게 오자서의 평을 물었다. 이때 서시는 지나가는 말로
“소녀가 무얼 알겠습니까? 가끔 상하를 모르겠나이다”하였다. 이에 분노한 부차는 명검을 내려 자결을 명한 것이다. 이는 초나라를 탈출할 당시 어부의 입을 막고자 칼을 휘두르는 오자서의 모습에서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언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즈음 구천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통을 감내하며 암암리 국력을 키우고 있었다. 부차가 아버지의 복수를 핑계로 단숨에 월나라를 제압했지만 구천을 살려주고 화근인 서시를 받아들임으로써 그의 시대는 좀이 슬 듯 서서히 저물어 갔던 것이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국력을 회복한 월나라군대가 밀어닥치자 속수무책으로 포로가 된 부차는 구천 앞으로 끌려나오자 머리를 조아리며
“나는 그대의 목숨을 살려 주었소! 그대 또한 나를 살려 주시오!”목숨을 구걸했지만 “나는 살기 위해 그대의 매화(똥)까지 맛 보았소!”고 말을 마친 그는 과거의 굴욕으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단칼에 목을 베어버린다. 이후 구천은 포로 때의 암울한 삶을 입에 올린 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 모조리 죽여 버리는 잔인함을 보였다.

오나라가 멸망한 후 서시의 삶에 대해서는 범려와 함께 도망쳐서 장쑤성 우시시에 있는 태호 안에 있는 호수 여호(蠡湖)에서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는 설과, 부차를 사랑하여 그를 따라 죽었다는 설과. 나라를 망친 요물이라 하여 오나라 사람들이 물에다 던졌다는 설과. 구천 역시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같이 살았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중 범려와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는 범려가 서시를 미인계로 보낼 때는 이미 그녀와 정을 통했고 그녀를 책임지겠다는 약조를 했던 것이다.

이즈음 서시를 흉내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동쪽에 사는 서씨로 동시였다. 매일 황혼이 질 무렵이면 서시가 즐겨 입던 의상을 벤치마킹(Benchmarking), 차려입고는 대문간에 기대서서 이마를 찡그리는 것이다. 그녀가 이마를 찡그리는 이유는 평소 편두통이 심했던 서시는 자주 이마를 찡그렸다고 한다. 이에 서시가 오나라에 있을 때에는 오나라 여인들조차 그녀를 흉내하였다고 하니 그녀의 미모가 가히 짐작이 가질 않는다. 코가 조금만 높았더라도 세계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미녀 클레오파트라나 사형장에서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사형집행관의 “쏴”하는 명령에 공중으로 총을 쏘았다는 마타하리(여명의 눈동자)정도는 가볍게 능가하지 않았을까?
뚱뚱하고 들창코에 못난이 동시가 서시를 흉내한 모양을 본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정신세계를 의심했으며 모두들 손가락질했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은 동시빈축(東施嚬蹙:동쪽의 서시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다.)이라 했다.

할머니와 손녀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한참을 보고 있던 할머니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손녀에게 물었다.
“저기 나오는 자가 어제 봤던 가제!”
“누구 말인데?”
“저기 원피스 입고 예쁘장한 제 말이다.”
“할매는 참 어째 자가 가꺼? 아이씨더!”
“내 눈에는 가가 가 같은데! 아이가! 그럼 쌍둥이가?”
“하나는 한씨고 또 하나는 김씨로 나이도 서너 살 차이가 지는데 어째 쌍둥인교?”
“희얀타! 쌍둥이도 아니고 성도 틀리고 나이도 틀리고 근데 어째 저리도 똑 같노! 내사마 자세히 봐도 잘 모르겠다.”
또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할머니는 “요즈음 젊은 것들은 한 공장에서 맨든 것처럼 오뚝한 코하며 똥그란 눈매하며 어째 베낀 듯 똑 같노! 쯔쯔쯔~!”손가락질 끝에 눈살을 찌푸려 손녀를 돌아보며
“삐쩍 마른 년이 밥 굶는 것을 보면 손녀지만 너도 가끔은 낯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