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모 (32)
녹슨 철모 (32)
  • 시니어每日
  • 승인 2019.11.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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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대대시험이 시작되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어느 날 부대는 완전군장을 하고 막사를 출발하였다. 태원은 자신도 그 행렬에 끼어 있으면서도 스스로 감격하여 가슴이 뛰었다. 앰뷸런스에 앉아 긴 행렬의 뒤를 느릿느릿 따라갔다. 그것은 육군 규정에 의한 행군 형태였다. 어떨 때는 앰뷸런스가 가장 앞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사병들에게 배수의 진을 치라는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이다. 즉 대열에서 낙오되면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말 없는 압력이다. 

출발하는 날 기지촌 사람들이 마치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에게 하듯이 모두 나와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들은 거의 식당이나 술집, 다방, 상점 등의 상인들과 그 종업원들이었다. 동네 주민들은 없었다. 작부들도 없었다. 그녀들은 평소 낮에 외출을 꺼린다. 특히 아침에는 영업 특성상 늦잠을 자기 때문이다. ‘괘씸한 년들’, ‘의리 없는 년들’ 이라고 태원은 실망하고 있었다. 

부대가 멀어지면서 차갑고 세차게 불어오는 북풍은 언 땅을 걷는 병사들의 고통을 더욱 부채질하는 듯했다. 많다는 것, 질서가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완전군장을 한 군인들의 질서와 절도 있는 행군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되뇌며 앰뷸런스에 타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배웅 나온 상인들은 그들의 의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이 창조하는 미를 보러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멍청한 작부들은 오빠들의 진정한 미를 느낄 기회를 스스로 잃고 있는 것이다. 불쌍한 것들.

앰뷸런스에서 행군의 뒤를 따르다 보니 온갖 생각이 태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는 힘들 때면 자주 병주를 떠올렸다. 여성은 남자의 상처를 낫게 해주는 법이다. 엄마처럼 보듬어 주는 느낌이다. 후보생 유격 훈련 때 병주의 이름을 부르며 절벽에서 뛰어내리던 생각도 났다. 

신혼여행 때 생각도 났다. 부산에서 1박하고 제주도로 갔다. 비행기를 이용하기 위해 해운대에서 첫날을 보내야 되었다. 해운대 극동호텔 1층에 자리한 그들의 방에는 밤새 파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병주는 피곤한 탓인지 얼굴이 무표정했다. 태원 역시 이런저런 생각이 얽혀 별 즐거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전방에서 그리고 서울의 여관에서 불붙던 그들의 행동과 감정이 그날은 이상하게 사그라들고 마치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서먹하고 어색한 첫날 밤을 보내게 되었다. 부부로서의 첫날밤에 왜 그렇게 어색하였을까? 피곤 때문일까? 아니면 앞으로 전개될 그들의 앞날에 대한 이상한 예감 때문일까? 파도는 밤새도록 그들의 귓전에서 포효하였다. 태원은 행군의 길 머리에서 그 날의 바다를 회상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행군하여 이름 모를 산 아래 그들의 천막이 쳐졌다. 땅이 얼어 삽이나 곡괭이가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쇠로 만든 땅을 내리치는 소리가 났다. 겨우 만든 천막 속은 너무나 추웠다. 상황실로 쓰는 큰 천막 속에 모닥불을 피웠는데도 전혀 따뜻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태원은 야전복 그대로 침낭 속에 들어가니 추위는 그런 대로 이겨낼 수가 있는데 발이 시려 잘 수가 없었다. 임진강의 여름 숙영 생활은 낮에는 괴로웠어도 밤에는 즐거웠던 덕분에 넉 달을 견딜 수가 있었지만 겨울의 숙영은 전혀 즐거움이 없다. 꿈도 얼어붙어 꾸어지지 않았다. 아니 잠을 못 자니 꿈이 있을 수 없다. 앞으로 일주일을 이런 식으로 지낼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였다.

다음 날부터 시험이 시작되었다. 대항군이 나타났다는 첩보가 날아들었다. 각 중대의 무전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윽고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의무실과 대대 상황실은 전장의 후방이므로 전황은 유무선으로만 알 수 있었다. 

벌써 부상자가 생겼다. 경상 몇 명, 중상 몇 명으로 의무대로 연락이 올라왔다. 전방 각 중대에는 이미 위생병과 들것병들이 다 나가 있는 상태였다. 전투 중 발생한 환자들은 일단 대대 구호소(평시 의무대)로 와서 중상자는 후송하고 경상자는 자대 치료를 한다. 태원은 전방에서 올라온 서류상의 환자를 분류하여 그 처치에 대한 보고를 무전으로 대대 상황실에 보고한다. 환자 발생 정도로 봐서 치열한 전투가 대대 전면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실감나게 했다. 오후가 되니 드디어 전사자가 생겼다. 병사는 죽으면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전사자는 물품으로 분류되어 의무대 소관을 떠나 보급관이 이송 책임을 진다. 트럭으로 전사자를 후방으로 이송한다. 부대가 전진했다고 한다. 초전에는 아군이 이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눈이 내린다. 병사들의 복장이 바뀌고 있다. 어느새 모두 하얀 전투복 차림이 되어 있었다. 산과 들에 하얗게 눈이 내렸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건만 산야는 아름다웠다. 아니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병사들의 긴 행렬과 흰 눈은 모두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죽음이 전제되는 행동이 시작될 때 우리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참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병사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들은 평소 그들의 부모 형제가 살고 있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죽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총을 쏘고 있는 지금 그들은 부모 형제를 생각하며 돌진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만 본능적으로 그를 죽이려는 적을 죽이기 위해 돌진하는 것일까? 지금 대대 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들은 대부분 국민학교나 중학교 정도만 졸업한 젊은이들이다. 무학자도 있다. 전방에는 고졸도 드물다. 이들은 힘없고 가난한 집 출신들이다. 만일 부모 형제가 없는 사병은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하는가? 매일 아침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이룩하자 유신과업‘을 외친다. 그럼 이들은 이데올로기를 위해 싸우는 것일까? 무학의 시골 출신 병사는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닐까?

6·25 때 중공군에선 모택동의 아들도 참전했는데 전사했다고 한다. 유엔군 사령관 벤 프리트 장군의 외아들도 한국전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관대작의 아들이 한국전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많은 외국 기자들이 한국전에 종군하다 죽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자가 죽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고졸, 대졸이 없는 전방의 병사들, 지금 그들은 이 엄동설한에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저렇게 기를 쓰고 다치고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부상자와 전사자는 많지만 아군의 전진은 계속되었다. 눈이 더욱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전방 중대들이 먼저 공격하고 대대 지휘부는 가장 뒤에 따라가게 되어 있다. 대대장 차의 뒤를 앰뷸런스가 따랐다. 날이 어두워졌다. 각 부대에 다음 집합 장소가 하달되어 있다. 독도법에 익숙지 못한 태원으로서는 대대장 차를 놓치면 전선에서 미아가 될 판이라 죽기 살기로 따라붙었다. 언덕이 나타났다. 대대장 차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뒤를 따라 구급차가 올라가는데 계속 미끄러졌다. 계속 힘을 써보지만 바퀴는 헛돌기만 했다. 조금 올라가다 뒤로 또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니 이러다가 군의관도 전사하게 생겼다. 태원은 구급차를 뒤로 돌렸다. 작전 계획과 관계없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부대 이동지점을 평지로 스스로 찾아가기로 하였다. 

전시에 명령 없이 후퇴하면 총살이다. 대대시험 중에 대항군에 포로가 되면 부대의 점수는 낙제점이 될지도 모른다. 죽어도, 낙제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언덕을 올라갈 수도 없고, 무전기도 작동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무작정 오던 길을 되돌려 큰길로 나와 전방 쪽으로 차를 돌렸다. 전쟁 중에 이러다가 억울하고 허무하게 죽음을 당한 사람도 많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캄캄한 밤중에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군의관과 위생병들은 단지 감으로 전방 집결지로 향하고 있었다. 조금 가노라니 저쪽에서 한 무리의 군인이 뭉쳐서 걸어오고 있다. 특전사로 만들어진 대항군들이었다. 그들의 철모에 둘려진 붉은 띠가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 적군에게 발각되면 포로가 된다. 태원의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다행히 눈이 심하게 오는 탓에 대항군은 행군의 오와 열을 맞추지 않고 완전히 군기가 빠진 상태로 제멋대로 패잔병 꼴로 걸어오고 있었다. 모두들 정면으로 눈을 맞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태원네를 보고도 응급환자를 후송하는 구급차로 여겼는지 검문검색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들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한참 밤길을 달려가다 보니 다리가 보였다. 도상 훈련 때 지도에서 본 그 다리 같았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마음을 졸이며 본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원의 계산으로는 본대가 산을 넘어오고 있으므로 아무리 빨리 출발하였어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예상외로 일찍 통과해 버렸다면 기다릴수록 손해가 아닌가도 걱정이 되었다. 위생병들은 불안한 눈초리로 태원을 쳐다보았다. 우두머리란 정말 힘 드는 일이다. 밤중이지만 그들은 태원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태원은 무심한 표정을 짓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