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초산’
산통産痛이 오는지 개가 운다.
호소하는 듯 긴 울음이
딱딱한 내 몸통 속으로
밀려들어온다.
초산이다, 개는 울음도 그친 채
고요히 새끼 두 마리를 낳고
엎드려 있다.
산 것이 새끼를 낳는 동안
소년가장 같은 땅강아지는 재개재개 기어가고
귀없는 풀들은 비스듬히 기운다.
몸통 속에서 내 것이 되었던 울음들이
다시 몸통 바깥으로 밀려나가고
나는 미역국을 끓이러
부엌으로 간다.
등뒤 칸나꽃이 투명한 공기 속에서
유난히도 붉은 저녁이다.
시집 『붉디 붉은 호랑이』 애지. 2005. 12. 15.
만삭의 몸으로 이삿짐을 쌌다. 그 밤만 지나면 새 발령지로 옮겨가야하는데 양수가 터졌다. 밤중에 쌀뜨물 같은 것을 한 요강이나 쏟았다. 어린 임신부는 진통이 없어서 그게 소변이려니, 태무심했다. 다음날 주인집 아주머니께 말씀드리자, 큰일 났다면서 당장 병원 가라고 호통을 쳤다. 남편은 이사를 하고 나는 앞집 사모님 손 붙잡고 택시를 불러 검진 다녔던 병원으로 갔다. 진통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양수가 다 흘러버려서 태아가 위험하다며 큰 병원으로 보내졌다. 결국 제왕절개로 조산(早產)을 했다. 어미와 자식의 만남이란 그렇게 힘들고 아픈 고난의 대가가 따르는 일이었다.
출산의 경험이 있는 여성 독자라면 이 시가 더 깊이 와 닿지 않을까 싶다. 산통을 견디는 개처럼 안으로 삭였던 긴 울음이 뼛속에서 우러나올지 모른다. 새끼 두 마리를 무사히 낳고 널브러져 있는 장면의 이미지가 선명히 그려진다. 몸 푼 어미 개의 고통을 지우려는 듯 시인은 짐짓 곤충인 땅강아지가 기어가는 모습을 재미있는 의태어 ‘재개재개’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산고의 울음을 듣지 못했을 귀 없는 풀들까지 비스듬히 기울어 초산의 과정을 지켜본 것이겠다. 무릇 시작이 없으면 끝도 없다. 그만큼 세상의 모든 처음은 위대하다. 투명한 공기 속에 미역국 끓이는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