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의 '감자꽃'
박노해의 '감자꽃'
  • 김채영 기자
  • 승인 2019.06.27 16:47
  • 댓글 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9-06-25 합천에서
2019-06-25 합천 황매산자락에서

 

박노해의 ‘감자꽃’

 

감자꽃 피는 6월

무성한 감자밭 가에 앉아

깜박 졸았다

 

6월 한낮의 어지러운 꿈

감자꽃이 피면

감자알이 굵어진다

 

하얀 꽃 피면 하얀 감자로

자주 꽃 피면 자주 감자로

꽃과 뿌리가 일체인

정직한 순종의 꽃

 

햇살 뜨거우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알이 굵어지고

 

무성한 감자밭 가에 앉아

나는 6월의 순박한 꿈과

정직한 뿌리를 그리워한다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걸음, 2010-10-16

 

반 고흐의 도록圖錄을 넘긴다. ‘감자먹는 사람들’에 눈이 멎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고흐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네모난 식탁에 다섯 가족이 빙 둘러앉아 식사하는 장면이다. 이 그림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수준 미달이라는 혹평과 비난뿐이었다. 선견지명인가. 정작 고흐는 자신의 그림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남을 거라 이야기했다하니 놀랍다. 화풍이 그의 인생만큼이나 어둡고 음산하다. ‘감자먹는 사람들’은 더욱 피폐해 보인다. 천장에 켜인 희미한 호롱불은 오히려 어둠을 의지한다고 할까. 얼핏 화목해 보이지만 시선이 제각각 흩어져 있다. 퀭한 눈동자와 툭 튀어나온 광대뼈, 포크를 불끈 쥔 마디 굵은 손가락, 가난하고 고단한 농부의 삶을 대변하는 현주소 같다. 뜬금없이 그림 속에서 시어머니 얼굴이 겹친다.

강단 있던 어머님이 팔순 줄에 드시고는 부쩍 연로해지셨다. 그런데도 땅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서 안타깝다. 내 손이 마이너스의 손이라면 당신 손은 마이더스의 손이다. 어떤 작물을 심어도 늘 풍작이다. 평생 땅만 믿고 사신 분인데 어련하랴. 먹을 만큼만 하시라고 노래해도 우이독경, 풍년이 들어 그렇다며 둘러댄다. 콩밭과 고추밭 고랑이 우리 집 거실보다 더 말끔하다. 작황이 좋은 건 당연지사다. 먹을 사람도 없고 판로도 마땅찮은 터에 수확량이 많으면 고민은 내 몫이다. 어제 감자 20kg짜리 네 박스를 사와서 지인들한테 돌렸다. 벌써 수년째 반복되는 일인데 용돈 드리는 셈 치면 즐겁다. 여생을 편케 보내시라 걱정해도 소용없다. 몸을 쓰는 게 건강에 좋다하지만 행여 들에서 쓰러지기라도 할까봐 염려스러운 것이다.

이 시는 크게 어려운 구절 없이 술술 읽힌다. 감정의 비약이랄까. 생각이 감자 꽃의 운명으로 흘러간다. 꽃이 피자마자 사람 손에 꺾이는 게 감자 꽃이다. 꽃한테 양분을 뺏기면 감자알이 굵어질 수 없는 까닭에 그렇다. 밭가에 앉아 깜박 조는 틈을 타고 감자 꽃이 피고 감자알이 굵어진다. 하얀 꽃은 하얀 감자, 자주 꽃은 자주 감자, 꽃과 뿌리가 일체한 데서 시인은 정직과 순종을 이끌어낸다. 어떤 강조의 의미인지, 수미상관을 맞추려는 의도인지 ‘무성한 감자밭 가에 앉아’가 한 번 더 등장한다. 은유가 시의 기본이다. 그 테두리 안에서 다시 살피면 여러 해석을 유추할 수도 있겠다. 감자 꽃에 빗댄 숨은 뜻이 무엇일까. 6월 한낮의 어지러운 꿈, 순박한 꿈과 정직한 뿌리는 또 무엇일까. 고민하는 사이에 어느덧 6월이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