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물금(勿禁)의 의미
(1) 물금(勿禁)의 의미
  • 조신호
  • 승인 2019.02.1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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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본 물금 지역.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신라와 가야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도에서 본 물금 지역.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신라와 가야가 자리하고 있었다.

 

유통 측면에서 보면, 신문은 전하고 싶은 말을 종이에 인쇄하여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제조업이다. 그 제조 과정은 글을 쓰고 편집하여 종이에 인쇄하는 것이다. 요즘은 종이뿐만 아니라, 온라인에도 실어 문자와 함께 동영상으로 생생하게 제공한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생산물이 우수하다고 홍보하면서 경쟁사를 물리치고 있다. 소비자들이 좋다고 반응해 주면 그 고마운 목소리에 힘을 얻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언어 제조업이라는 신문의 위상과 품위가 형성된다.

신문이라는 제조업의 원자재는 말이고 제품은 글뿐만 아니라 사진, 그림, 동영상으로 다양하다. 신문의 핵심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언론'이다. 언론의 '론(論)에는 말을 전하는 동시에 의견, 견해, 주장, 이치(道) 등이 들어있어서 세상을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한다는 사명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원자재인 말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연구가 필요하다. 말은 생각의 씨앗이고, 씨앗이 싹튼 생각이 행동을 낳고, 이 두 가지가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도한다. 이것이 역사이다. 그러므로 언론은 역사 변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말 한 마디에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함축성이 있다. 예를 들어서 경남 양산의 '물금(勿禁)'이라는 지명에는 역사적인 사실이 들어있다. 물금이 말 물(勿), 금할 금(禁)이니 ‘금지하는 것이 없다’라는 뜻이다. 물금 마을(里)은 낙동강을 건너가는 물고미(勿古味), 또는 물금진(勿禁津)이었다고 전해진다. 옛날 신라와 김해 가락국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접할 때 두 나라의 관리들이 이곳에 상주하면서 왕래하는 사람과 물품을 조사, 검문하던 행정적 군사적 요충지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나라 사람들이 서로 불편해지자 함께 의논하여 이 지역만은 서로 '금하지 말자' 는 합의를 하면서 ‘물금’이라 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법흥왕 11년(524) 9월에 신라왕이 직접 남쪽 경계를 순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가야의 국력이 쇠미하여 재침할 염려가 없으니 국경경비에 지친 지역민의 고충을 해소하기 위해 자유 무역지로 지정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물금을 영어로 풀이하면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낸 ‘자유무역지역’(free trade area)이다. ‘오늘부터 사람도 물건도 금하는 것이 없다. 우리 모두 하나가 되자!’ ‘한 마음 한 뜻으로 멋지게 살자!’ 참으로 시원한 선언이었다. 이렇게 선포된 그 날 그곳에 모여 있었던 사람들의 표정을 상상하면 참 기분이 흐뭇하다. 그 부근을 지날 때 마다 늘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선조들의 용기와 지혜에 존경을 표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우리 모두 하나가 되자!’ ‘한마음(天心)으로 살자!’ 라는 정신이 부족하다. 남북으로 갈라지고, 동서로 갈라지고, 세대 간에 달라지고, 계층 사이에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물금은 무심코 스치며 지나가는 지명이 아니라, 보고 들을 때마다 한마음 한뜻의 교훈으로 삼아야할 교훈이다. 얼마 전 예천군(醴泉郡) 의원들이 해외에서 수치스런 과오를 범하는 뉴스를 들으며 상호존중이라는 예(禮)가 샘물(泉)처럼 솟는 곳이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지명을 정한 선조들에게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