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지역의 명소 군위 인각사
[우리 산하] 지역의 명소 군위 인각사
  • 이승호 기자
  • 승인 2019.05.30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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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 보물로 지정되다

군위 인각사(麟角寺)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스님이 입적한 인각사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스님이 입적한 인각사
부처님 오신날 주지 정화스님과 기념촬영, 주지스님은 시니어매일의 발전을 축하해주셨다
부처님 오신날 주지 정화스님과 기념촬영, 주지스님은 시니어매일의 발전을 축하해주셨다

 

인각사 출토 문화재가 보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에 급히 인각사를 찾았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부처님 오신 석가탄신일이었다. 많은 불자들과 관광객이 북적인다. 정확한 위치는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군위댐 도착직전에 인각사를 발견할 수 있다.
신라 선덕여왕 11년(642)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절 남쪽 높은 산이 화산(828m)이다. 이 산의 형국이 상상의 동물인 기린을 닮았으며, 절이 들어선 자리가 기린의 뿔을 닮았다고 기린인(麟), 뿔각(角)의 인각사라 이름지었다. 당우로는 극락전, 국사전과 부도와 부도비가 단촐하다. 평소에는 한적하며 평지가람 형태다.

인각사 앞 수량이 풍부한 시냇물과 바위절벽이 아름다워 여름 철에는 많은 피서객이 찾고있다
인각사 앞 수량이 풍부한 시냇물과 바위절벽이 아름다워 여름 철에는 많은 피서객이 찾고있다
둔중한 모습의 일연스님의 부도 보각국사정조탑
둔중한 모습의 일연스님의 부도 보각국사정조탑
마모가 심한 보각국사 부도비 민지가 짓고, 왕우군이 쓰다
마모가 심한 보각국사 부도비 민지가 짓고, 왕우군이 쓰다

 

이 절은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집필한 일연스님이 입적한 곳이다. 군위군을 '삼국유사의 고장'이라 부르는
연유이기도 하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 1280년 대 5권 2책으로 된 역사책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함께 우리 고대사 연구에 필요한 귀중한 역사서이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23년(1145)에 김부식을 비롯한 11명의 편사관이 50권 10책의 기전체의 역사서로 정사(正史)라면, 삼국유사는 야사(野事)이다.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한 책이 정사가 '뼈'라면, 주관적으로 민간에 떠도는 사실까지 기록한 책인 야사는 '살'이라 말할 수 있다.  즉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의 누락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준다. 단군신화, 향가, 지리, 문학, 종교, 민속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정보를 담고있다.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스님은 옛 장산군인 경산에서 1206년에 태어났다. 속성은 김씨, 법명은 견명에서 일연으로 바꾸었다. 남해 무량사, 비슬산 대견사, 정림사, 운문사 등에서 수행했다.  1283년 3월 국존(國尊)으로 책봉되어 원경충조의 호를 받았다. 78세 때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개성에서 인각사로 왔을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으며 1289년 7월 이 곳에서 입적했다. 보각국사란 시호를 받을 만큼 국가가 인정한 국사(國師)였다. 시호는 보각(普覺)이고 탑호는 정조(靜照)이다. 절 마당에는 보물 재428호인  '보각국사 정조지탑'이란 명문이 새겨진 부도가 있다. 곁에 있는 부도비는 훼손이 심하여 글씨를 알아 볼 수 없다.

보물로 지정된 공양구, 사진 문화제청
보물로 지정된 공양구, 사진 문화제청
보물로지정된 공양구 알괄 중 청동북 등, 사진 문화재청
보물로지정된 공양구 알괄 중 청동북 등, 사진 문화재청
부처님 오신날 모습의 군위 인각사
부처님 오신날 모습의 군위 인각사

 

'인각사 출토 공영구 일괄'을 찾았으나 보지 못했다.
서울 종로구로 옮겼다고 한다. 기념관에서 사진으로 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문화재청은 2019년 5월 2일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을 보물 제2022호로 지정했다.
2008년 인각사 1호 건물지 동쪽 유구에서 발견된 유물로 통일신라 시대에서 고려 초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사자형 병항로, 향합, 정병, 청동북 등 9종 18점 즉 금속공예품 11점과 청자 7점이다. 이 유물들은 사찰에서 사용하는 청동제 의례용품들로 조형성이 뛰어나고 섬세한 기법이 돋보여서 보물로 지정했다. 보지 못한 아쉬움을 처용가 한수로 달래며 귀가 했다.
               
                처용가
   서울의 밝은 달밤
   밤 늦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것인데, 둘은 누구인가
   본디 내 것이었던 것을 
   빼앗아 감을 어찌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