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던 한국적인 전통문화
목화는 아욱과 한해살이 식물로 동아시아가 원산지이다. 14세기 고려 시대 공민왕 때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에서 들여온 겨울 추위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 당시 솜옷과 솜이불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더할 수 없는 고마운 식물이다.
유년 시절 먹을 것이 귀했을 때, 뒷동산에 뛰어놀다가 목화밭에 들어가 부드러운 열매를 따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먹을거리와 입을 거리를 제공해준 의식주의 기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넓은 목화밭을 많이 구경할 수 있었지만, 요즈음은 화학섬유와 수입 면에 밀려 재배하는 풍경을 볼 수 없어 아쉽다. 솜털을 가공하여 실을 뽑아 짠 옷감은 땀 흡수가 잘되어, 천연섬유인 면직물은 운동복으로 제격이다.
목화의 꽃 밑에는 삼각형 모양의 작은 포 3개가 꽃잎을 갈고리처럼 움켜쥐고 있어, 그 속에서 꽃봉오리가 자란다.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은 3일도 채 안 된다. 8월~9월에 걸쳐 꽃이 반복해서 피고 지다가 열매가 익기 시작한다. 열매가 다 익으면 껍질이 벌어지면서 흰 솜이 터져 나온다.
목화에서 얻은 솜은 옷감 외에도 이불솜· 옷솜· 탈지면 등으로 이용한다. 씨앗에서 짠 기름은 마가린· 비누· 화장품의 원료로도 이용된다. 뿌리는 염료로 쓰거나 피부염의 치료제로도 쓴다. 일상생활의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는 목화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유산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온돌방에서 작은 솜이불 하나로 서로 당기면 발이 불쑥 튀어나오면, 서로 덮어 주고 가족애를 키울 수 있었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어르신들의 세대는 아직도 사랑은 솜이불처럼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싼 화학섬유 이불을 덮으면서 그래도, 지난날 작은 솜이불로 덮어주고 당기던 시절이 그립다. 화려하고 좋은 것만 제일이 아니라, 누구나 한국적인 순박함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역시 한국인은 소박함이 묻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전통적인 대가족이 함께 어울려 웃던 지난날이 있어,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