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기자의 PHOTO 에세이] 갈대와 억새
[방 기자의 PHOTO 에세이] 갈대와 억새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4.02.17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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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것은 여자의 마음만 아니었다
황매산 억새밭  사진 황여정작가
황매산 억새밭. 사진 황여정 작가

황매산 억새밭 화왕산 억새밭 신불평원 사자평 등 국내 최고의 억새 군락지에는 탐방객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전국 산야 햇빛이 잘 드는 풀밭에는 어김없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다. 갈대와 억새는 4촌 격으로 구분하자면 갈대는 꽃이삭이 다소 수더분하게 생겼고 강가나 물가 등에 나는 습생식물이지만 억새는 꽃이삭이 질서정연하게 생겼고 주로 들이나 산에서 난다. 줄기는 마디가 있는 속이 빈 기둥 모양이고 곧게 서며 키가 1~2m 정도 된다. 굵고 짧은 땅속줄기가 있으며, 여기에서 줄기가 빽빽이 뭉쳐난다. 가장자리가 까칠까칠하고 밑 부분에는 잎집이 줄기를 싸고 있다.

소슬바람이 불면 더불어 흔들리는 억새들의 몸짓이 황홀하다 못해 현란할 정도다. 억새가 머리를 풀고 솜털 같은 여린 꽃술들이 바람에 서걱인다. 억새의 '아우성'을 들으며 걷다 보면 꿈결같이 흐르는 세월에 빠져본다. 흔들리는 것은 여자의 마음만 아니었다. '은빛 유혹'으로 울렁증이 온다. 가을은 그렇게 깊어져 가고 있었다.

중견 시인 두 분이 노래한 억새를 소개한다.

억새 황영목 사진 작가
억새 황영목 사진 작가

사라진 을숙도/손영숙

(경남 마산 출생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문학청춘』 신인상으로 등단시집 『지붕 없는 아이들』 『바다의 입술』제5회 『대구문학』 올해의 작품상 수상)

아직도 서걱이고 있을까

낙동강 하구 그 갈대숲

마주 서기만 해도 뜨거워지던 피

갈대 울타리 카페에서

새해의 한 잔 차를 나누던 그때

다가올 시대로 향하던 무수한 의문부호처럼

스물여섯 그 겨울을 건너가던 철새떼는

지금 어디

한 시대의 더운 피톨로 개펄 속에 묻혀 있을

그 겨울의 발자국처럼

거구의 생태공원 에코센터 유리벽에 찍힌

새들의 비상을

갈대 사라진 인공 습지에서

예순여섯 저문 피로 바라본다.

억새 사진 황영목 작가
억새 사진 황영목 작가

겨울 억새/최화수

최화수 2011년《시조시학》등단. 시조시학 젊은시인상, 제13회 열린시학상, 제1회 시에그린 한국동시조문학상수상. 시조집『풀빛엽서』외. 현대시조선집『바람을 땋다』. 동시조집『파프리카사우루스』『내 발도 꽃이야』.

요양원 미술시간 밑그림에 색 입힌다

다홍, 초록색 골라 스적스적 칠해놓고

거창 댁 반색을 하네 어제 각시 됐다하네

꽃나이 헤살 놓은 마른하늘 벼락을 이고

별명처럼 억세게 억새로 산 일흔 해

강골의 죽지도 꺾고 새댁으로 돌아갔나

자리 밑에 묻어 둔 흑백사진 더듬는다

한 아름 억새를 안고 지아비와 마주 웃는

지어미, 되마중하네 광배(光背) 부신 저 너머

억새   사진 황여정 작가
억새 사진 황여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