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들의 겨울 여행일기
시니어들의 겨울 여행일기
  • 박영자 기자
  • 승인 2024.01.04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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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 경로식당에서 2023년도 급식봉사를 마지막 하는 날 1박2일 겨울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복지관에서 만난 일자리 동료들이며 시간 되는 사람들이 너덧 명 모이면 가끔 가까운 곳으로 떠난다.

오늘은 특별하다. 송년회 겸 겨울여행이니까.

봉사도 하고 또 영화 ‘리향’ 시사회를 보러 간다.

‘리향’관람은 시니어매일 덕분이다. 이 할매들이 가당치도 않은 시사회의 초대를 받아 문화생활을 하니 일단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좌석이 넘친다는 소식에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롯데시네마에 갔다.

‘리향’은 장애를 입은 모든 사람에게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이야기다.

봉사와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을 때 결과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주위를 돌아보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주는 따뜻한 우리의 이야기다.

팔공산, 신천둔치, 경상감영공원 등에서 촬영했으니 실감도 났다.

대구시민들의 자긍심을 올려주는 대구의 자랑인 ‘리향’을 감명 깊게 보았다

밖으로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일행은 서둘러 팔공산으로 갔다.

시사회에서 받은 맛있는 떡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우리는 지금부터 노인이. 아니고 여자다. 일상에서 벗어나 그냥 자유롭게 신나게 놀기만 하자며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시끌벅적 하하호호다.

팔공산 속 깊이 있는 회원(임00)의 질녀 집으로 간다.

주말은 여행객들이 사용하니 목요일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초행길이라 무서운 생각이 든다.

'마늘 까는데 잡혀가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하면서도 어느새 서로 손을 꼭 잡는다.

꼬불꼬불 가다보니 하얀 집에 도착했다.

모두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내복만 입어도 부끄럼 없이)짐을 푼다.

정말 웃지 못할 일이 생겼다.

가방 속에서 나온 물건들은 각양각색이다. 약은 말할 것도 없고 화투, 동전, 얼굴팩, 과자, 반찬 등 별의별것이 다 모였는데 특히 (칫솔, 치약, 티슈, 물티슈)등 노인복지관에서 받은 물건들이 나란히나란히다.

우리가 언제부터 노인이 되어서 생활 용품 하나까지도 노인이란 이름이 들어간단 말인가. 노인을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세월이 흘러 나이 70~80세가 되어서야 늙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알뜰 근성이 있는 우리 세대는 어쩔 수 없다. 알배추와 무, 밀가루를 가져와 겨울 별미 배추전과 무우전을 부쳐서 먹고, 콩나물을 아삭아삭하게 삶아 콩가루에 묻혀 먹으니 맛이 희안하다. 콩나물은 왜 (임00)가 가져왔는지? 입에 들어가는 순간 아~아~ 소리가 나온다. 부침개로 저녁을 떼운 후~, 스마트폰에서 알고 싶었던 것과 모르는 것을 서로 배우고 가르쳐주며 실습도 했다.

모이면 빠질 수 없는 판을 벌려 치매예방 공부를 하고 마지막엔 딴 돈을 기분 좋게 돌려주고 (심00)이 준비해온 팩을 함께 얼굴에 붙이고, 우리는 침대와 온돌 중 각자 선택해서 잠자리에 들었다. 서로 코를 골았다며 네탓 내탓도 한다.

눈을 떠보니 어제 밤 캄캄했던 이곳은 아담한 시골동네... 아침햇살이 웃음 지며 우리를 반겨준다. 평화롭고 상큼했다.

떡국으로 아침을 간단히 먹고 동네한바퀴 산책에 나섰다.

친구의 선산이 가까이 있어 우리 모두 참배를 하는 이벤트도 있었다.

친구는 돌아가신 시부모님께 울면서 보고프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우리도 잠시 눈물 ~!!

왕건둘레길이 있어서 한참을 걷다가 우리는 내려왔다.

한사람이라도 의견을 내면 함께하며 양보하는 맘들이 생겼다.

더 걷고 싶었지만......

오후 시간 내가 점심 밥할 테니 다들 '노세요'라는 왕언니(심00)의 배려심도 한 몫을 했다.

어제의 패자가 오늘의 최고 수익을 냈으니 밤새 공부한 보람이 있다.

기쁜 기분은 자기의 몫이고 딴 돈은 되돌려주는 메너도 우리는 배웠다.

화투놀이는 노인에게 치매공부 시간이다.

이웃에 사는 친구의 사돈이 대문에 걸어두고 간 팔공산 미나리로 맛있게 점심을 먹은 후,

그제야 집 구경을 하면서 그네도 타보고 장독도 열어보고 여고시절로 돌아간 냥 사진도 찍었다. 1박2일간의 아주 보람차고 의미 있는 2023년 송년의 밤을 보냈다.

우리 새해에는 좀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복지관 일자리를 희망차게 시작해 보자는 위로와 다짐을 하며 짐 보따리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