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맞이한 새해 첫 일출
조용히 맞이한 새해 첫 일출
  • 권오훈 기자
  • 승인 2024.01.02 0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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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일출 명소는 인파와 차량행렬로 몸살
지자체마다 일출맞이 행사
우리 민족의 못 말리는 극성

친구는 해마다 섣달 그믐날 자정에 식구들을 태우고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비교적 한산한 도로를 달려 바닷가 적당한 장소를 정해 주차하고 잠시 눈을 붙인다. 해뜰 무렵 일어나 일출을 보며 가족의 건강과 한해의 소원을 빈다. 그런 덕인지 가족간에 정이 깊어지고 매사가 잘 풀린다고 한다. 일종의 액막이이자 구복의식인 셈이라 여긴다. 

달성습지 건너편 낙동강가에서 맞은 새해 알출. 권오훈기자
달성습지 건너편 낙동강가에서 맞은 새해 일출. 권오훈기자

 

그런가 하면 새벽녘에 집을 나선 어떤 이들은 바다가 가까이 갈수록 속도가 떨어진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다가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가고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일출 예정시간이 된다. 그 자리에서 내려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게 된다. 어떤 해는 일삼아 바다까지 갔는데 해무가 짙어 오랜 기다림 끝에 중천에 나타난 해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기도 한다.

전국 각지의 산과 바다, 심지어는 강둑, 언덕까지 지자체에서 마련한 일출 맞이 행사장은 일출 두어 시간 전부터 밀려드는 차량과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다. 주최 측은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풍악을 울리고 즉석에서 끓여 뜨끈뜨끈한 떡국을 나눠주기도 한다.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나온 가족도 많다. 이쯤되면 우리 민족의 새해 일출맞이는 못 말리는 극성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낙동강 둑길에 새벽부터 사람들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권오훈기자
낙동강 둑길에는 새벽부터 사람들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권오훈기자

 

나만의 일출맞이 장소는 따로 있다. 거의 매일 아침운동을 하는 나는 맑은 날이면 운동하는 도중에 먼산 위로 떠오르는 햇님을 일상으로 맞는다. 일출 광경은 늘 멋있다. 산봉우리 주변이 붉게 물드는가 싶으면 어느새 해님이 살며시 얼굴을 드러낸다. 그리곤 한눈팔 새 없이 순식간에 쑤욱쑥 올라온다. 찬란한 태양이 창공으로 솟아올라 눈이 부신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지만 매일 매일이 새롭다. 그때마다 찍은 수많은 일출 사진이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다.

오늘도 예외 없이 어둑살에 집을 나선다. 한산한 도로를 달리는데 휴일치곤 유난히 차가 많은 느낌이다. 어느 순간부터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새해 첫날이라 공휴일인데 웬차들이 이렇게 많을까.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조금 더 가니 도로는 아예 주차장으로 변해간다. 짚이는 게 있어 폰을 꺼내 지역 해맞이 행사장을 검색해 본다. 인근에는 사문진 나루와 강정보, 송해공원 등에 행사장이 마련되었단다. 사문진교 가까이 가니 도로 양쪽에도 차들이 주차했다. 다리를 건너 강둑길로 들어서니 그곳 초입에도 차를 세운 사람들이 아직은 어둑한 동쪽 하늘을 향해 둑에 늘어서 있다. 둑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나의 운동장이다. 여느 때처럼 몇 사람만 나와 운동을 즐기고 있다. 추운 날씨 탓인지 겨울철에는 새벽운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출 예정시간이 가까워오자 아래쪽 사문진 행사장에선 노랫소리가, 윗쪽 강정보쪽에선 풍악소리가 들려온다.

낙동강가에서 조용히 맞은 갑진년 새해 첫일출. 권오훈기자

 

아랑곳없이 운동하는데, 여느 날처럼 강 건너 먼 산 위로 붉게 물든 봉우리, 살며시 고개 내미는 해님, 찬란한 햇살과 함께 쑤욱쑥 크기를 키우더니 어느새 둥싯 하늘로 솟아오른다. 아쉬운 게 있다면 옅은 안개로 인해 새해 첫날 햇님이 선명하진 않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찍는데 새해 첫날이니 당연히 찍어야지. 좋은 기운을 주변에 나눠줘야지.

지인들이 단체방에 각자의 해맞이 장소에서 찍은 일출 장면을 올린다. 바닷가로 간 사람들은 짙은 해무로 인해 보지 못했다고 투덜댄다. 산으로 간 사람은 나뭇가지 사이로 찍은 해님 사진을 올린다. 어떤 이는 예전에 찍은 일출 사진을 올리며 장난을 친다. 내가 찍은 사진은 구름으로부터도 나뭇가지로부터도 가리워지지 않아 온전하다. 옅은 안개가 깔린 낙동강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몽환적이란다. 더구나 강물 위로 붉고 길게 비친 반영은 압권이란다. 어쨌거나 우리 민족 모두가 살 맛나는 한해였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