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아파트 내 경로당을 찾았다.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화투를 치며 하루 해를 보내고 있다. 한 곳에서는 윷놀이 한판도 벌어져 흥을 돋군다.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집에서 가져온 나물을 다듬거나 수다를 떨기도 한다.
종일 실내에서 갑갑해 하는 어르신들이 바깥에서 즐길 놀이는 없을까 생각해 본다.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는 국민놀이로 숨바꼭질은 어떨까. 경로당 회장과 의논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어르신들이 답답해 하던 차에 잘 되었다고 박수를 친다. 문제는 숨바꼭질은 아이들만 한다는 그들의 고정관념이다. 아니나 다를까. 몇 몇 어르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사래를 친다. 첫 술에 배 부르랴. 기자는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애교를 떤다.
숨바꼭질은 한 사람이 술래가 되고 나머지 사람들이 몸을 숨기면 술래가 숨은 사람을 찾아내는 놀이다. 한국에서의 숨바꼭질은 보통 가위, 바위, 보와 같은 가벼운 게임을 통해 술래를 정한다. 술래는 시야를 가린 후 사람들에게 숨을 시간을 주며, 이 때 숨는 시간을 숫자를 외우기도 하지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를 외치기도 한다. 놀이가 시작되고 술래가 정말 못 찾겠다 싶으면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서 숨은 사람이 나오도록 하는데, 이 경우 술래가 지는 것으로 간주한다.
술래가 정해졌다. 남자 어르신이 꼭꼭 숨어라를 거듭 외친다. 숨는 모습도 각앙각색이다. 숨을 장소를 물색하며 아파트 단지를 빙빙 도는 어르신, 배고픈데 마침 잘 되었다며 상가 김밥가게로 몸을 숨기는 어르신, 기자의 손을 잡고 같이 가자고 보채는 어르신도 계신다. 기자는 어르신과 아파트 모롱이를 돌아 으슥한 곳으로 몸을 숨긴다. 시간이 흐른다. 어르신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어린시절 함께 숨바꼭질 하던 친구라도 생각 난 것일까! 시간이 흘러도 술래가 오지 않는다. 숨바꼭질 하던 기자의 유년시절이 희미하게 달려온다.
해질 무렵 골목길에는 연탄재가 수북했다. 골목대장 철이는 그것으로 차곡차곡 성을 쌓았다. 숨바꼭질이 시작되자 우리는 연탄성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두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그곳은 너무 좁았다. 철이의 몸이 기자에게 딱 붙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연신 뛰었다. 철이의 얼굴이 기자의 얼굴에 닿을 듯 했지만 연탄성이 무너질까 봐 밀어낼 수도 없었다. 연탄성 틈새로 밖을 내다 본 철이가 순식간에 기자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술래가 근처에 왔다는 신호였다. 기자는 불편하게 앉아있어서인지 하필이면 그때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고 말았다. 엉덩이를 살짝 올리는데 아뿔사! 연탄성이 와르르 무너졌다. 우리는 꼼짝 없이 술래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연탄재를 뒤집어 쓴 기자의 몰골을 보고 밥을 주지 않았다.
아파트 마당에 술래가 나타났다. 못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는 술래의 음성이 멀어진다. 경로당으로 돌아오니 김밥파티가 한창이다. 김밥가게로 몸을 숨긴 어르신이 술래에게 잡혀 한 턱을 내고 있는 중이다. 어느 새 화투놀이는 간 데 없고 숨바꼭질이 또 시작될 분위기다. 경로당 회장이 기자에게 다가와 살며시 손을 잡는다.
기자는 "어르신들, 건강한 삶을 위하여 앉아만 계시지 마시고, 매일매일 국민체조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경로당을 나서는 기자 등 뒤로 술래가 또 주문을 외운다.
"꼭꼭 숨아라 머리카락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