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으로 불리는 건 싫다
'노인'으로 불리는 건 싫다
  • 안영선 기자
  • 승인 2023.12.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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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호칭과 연령에 대해서

대구의 반월당 지하철 역은 '대구 노인들의 홍대'라고 불릴 만큼 노인의 비율이 높다. 우리나라 지하철 역중에서 출구가 23개로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노인들도 많은 역으로도 이름이 높다.

며칠 전 반월당 역에서 지하철을 탈 때 "어르신,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나요? 노인들이 지하철역 개찰구에서 경노카드로 찍을 때 나는 소리다. 지하철 무임 승차족을 잡아내려고 노인들에게만 나게 하는 소리 였는데, 며칠 못 가서 그만 뒀다. "늙었다고 망신 주는 거냐" 하는 노인들의 항의에 중단됐다고 하는데, 부정 승차를 잡아 내겠다는 발상으로 시작했다고 했지만 노인들에게는 듣기 싫은 소리였다. 노인들은 어르신이란 말에 거부감을 느끼고, 건강하시라는 말에도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어르신 건강하십시오' 하면 '이 사람은 늙은이 공짜'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건강하십시오'도 만든 사람은 덕담으로 생각 했지만 '뭐하러 나오셨어요.'로 노인들에게는 들렸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세대 갈등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쉽게 해결 되지는 않는다. 노인에게 '어르신'이라고 하며 접근하는 젊은이들도 어르신들은 좋게 생각하지 않고, '이놈이 뭘 사기치려고 이러지' 하는 식으로 받아들여진다. 노인들은 점점 많아지고, 더 오래 산다. 이들의 연금과 생활보조금을 짊어질 젊은이는 줄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을 보이는데,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어서 어르신을 보는 젊은이들의 눈도 만만치 않다. 머지않아 어르신에게 무임승차카드를 주는 제도는 없어지고 일하는 청년들에게 무임승차카드를 주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노인이란, 늙은이를 말하는데, 늙었다는 건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백화점에 가면 아버님, 어머님, 실버, 선생님 등의 호칭을 쓰기도 하고 1998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 공모로 선정된 '어르신'이 가장 흔한 대용어로 통용되었는데, 이 또한 반발에 부딪혀  동사무소 등 행정기관에에서는 그냥 00씨의 사무적 호칭을 붙이기도 한다. 통계청에 다르면 내년부터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우리나라 사람 5명 중 한명이 노인인 나라가 된다.

노인의 호칭 어떻게 불러야 할까? 경기도 의회에서는 65세 이상의 도민을 '선배시민'으로 조례를 공포했다. 노인의 대체 명칭이 지방자치 조례에 명시 된 첫 사례인데 지난 10월에 기독교 단체 '하이패밀리'가 성인 17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82%가 노인의 대체 호칭은 '청장년'이었는데 하이패밀리 측은 '늙을 로'자 대신 '길로'로 바꿔보자는 제안도 했다. 정순둘(한국노인학회장) 이화여대 교수는 "노인 호칭 갈등은 단순한 문화적 차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위한 경제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많은 숙제를 암시한다."고 했다

65세의 노인 연령 기준은, 1889년 독일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통일을 완성한 비스마르크는 전쟁에서 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했다. 이를 위해 노인들을 노동시장에서 퇴출하는 대신 연금이라는 당근책을 제시한 게 시초다. 당시 연금 연령 기준이 65세다. 이후 젊은 생산 인력 투입으로 생산량이 증가하고 세금도 늘어나자, 노인들의 노후를 국가가 보장해 주게 된 것이다.

'65=노인'의 공식은 이제 낡은 공식이기에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해 노인 기준 연령을 높이자고 제안했다. 2025년 부터 10년 마다 한 살씩 올리자는 점진적 상향안을 내놨다. 또 올해 초 노인 기준 연령을 70세로 올리는 방안에 대한 한국갤럽 설문조사(1002명)에 따르면, 찬성60%, 반대34%로 나왔다. 참고로 2015년 조사에서는 찬성46%, 반대 47%였는데 70세로 높이지는 쪽으로 점점 기울어지고 있다.

대구시는 올해부터, 버스와 지하철 무임 승차 제도를 시행하려고 75세 이상자에게 무임승차 카드를 발급해 줬는데, 내년에는 연령을 75세부터 한 살씩 버스는 내리고 도시철도는 65세부터 매년 한 살씩 올려 2028년부터 70세 이상으로 일괄 통일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