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기자의 포토 에세이] 한해의 끝자락에서
[방 기자의 포토 에세이] 한해의 끝자락에서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3.12.06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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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던 산야가 만산홍엽이다
대구향교 뜨락 은행잎    사진=정지순 기자
 은행잎이 떨어진 대구향교 뜨락   대금 (황영달) 시조창 (방종현) 사진=정지순 기자

푸르던 산야가 만산홍엽이다. 대구향교 뜨락에 은행잎이 지전이다. 식물의 잎은 광합성을 통해 태양에서 에너지를 얻고, 이를 이용해 물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영양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태양의 일조량이 줄어들고, 온도가 낮아지면서 광합성이 감소한다. 이로 인해 나무는 더 이상 잎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게 되는데, 이때 잎의 색상이 변하고, 엽산과 카로틴 등의 색소가 드러나면서 다양한 색깔로 물들게 된다.

인간은 만신창이가 된 나무의 아픔을 모르고 그저 아름답다고 탄성을 지른다. 아픔의 겨울을 나면 돌아오는 봄에 다시 잎을 튀우고 푸름을 구가하리라.  나목으로 겨울을 나며 찬란한 봄을 기다리는 나무의 의연함을 본다. 한 계절 끝자락에서 세분 중견시인의 작품을 소개한다.

팔공산 카페                     사진=방종현 기자
팔공산 카페 사진=방종현 기자

찰나의 풍경/김인강

떠나기 싫은 가을과 재촉하는 초겨울 사이

바람의 꼬리를 잡고 색색이 회오리치는

그 찰나의 황홀함을 보셨습니까

눈부신 햇살 아래 비처럼 떨어지는

나뭇잎의 마지막 연주를 들어보셨습니까

차바퀴에 뒹굴려 흩날리고 모아지는

환상적인 공중곡예에

죽었던 심장이 펌프질합니다

다가올 계절을 걱정하지 않는

반짝이는 떨림을 온몸으로 나타내는

행위예술의 춤사위

한 생을 누군가의 가슴을 울리고

유유히 떠나는 자유로운 영혼들

서러움이 빚어낸 아름다움의 절정입니다

붉은 조명이 꺼지는 허공의 무대에서

한 조각 바람으로 사라지더라도

오늘에 혼신을 다하는 저 대단한 낙엽들

우리네 삶도 찰나의 풍경을 찾아가는

낙엽 같은 여정입니다

 

(김인강)경북 상주 출생

2006년 《사람의 문학》 으로 등단

시집 《느낌이 있는 삶》《멸치를 따다》 대구신문 '名詩작품상'수상

대구문인협회 이사, 대구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성구문인협회 재무국장, 瑞雪동인

 

이천동 가로수   사진=방종현 기자
이천동 가로수 사진=방종현 기자

꽃 진 자리 / 류인서

꽃잎 지고 난 가을 뜰에서

둘러앉은 시간의 고분군을 만납니다

불붙어 싸우던 허공마다

깜깜하게 깊어진 그늘이 봉분처럼 돋아올라

빛을 삼키며 침묵의 블랙홀로 가고 있네요

날아오르고 싶은 바람홀씨들

기억 저 끝과 이 끝은 유물로 가라앉아 있을까요

 

벽화 속의 채운(彩雲) 하늘과

하늘을 기울여도 쏟아지지 않는 붉은 해

해의 동공에 사는 세발까마귀 눈뜨고, 웅얼웅얼

오음 음계 노랫소리 꽃물처럼 번져나와

바람 깨워 흔들며 내게로 스밉니다

그 노래를 배음으로 이울었다가 다시 부풀기도 하는

먼바다의 더 먼 별자리까지 궁상각치우, 익고 익어 따스합니다

 

(류인서)200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여우』,『신호대기』『놀이터』 .

육사시문학상-젊은시인상, 대구시협상, 지리산문학상, 김춘수시문학상 등 수상.

현재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 이사

보도를 메운 무수한 나뭇잎    사진=방종현 기자
보도를 메운 무수한 나뭇잎 사진=방종현 기자

겨울비/정화섭

두터운 각질 속에 솟구치는 눈물방울

어느 님 그리다가 차 오른 신열이기에

이 겨울 객기 부려서 뒷걸음 치고 있나

 

고인 말 뱉어내며 하늘도 눈을 감고

떨어진 낙엽들은 젖은 몸 눕히는데

더듬는 아련한 추억 물무늬로 어우러져

 

누군들 없겠는가, 악착같이 살다가도

젖은 실타래 풀어가듯 미로 속 걷는 걸음

땅위에 옹이진 물 속 갇힌 내가 절룩인다.

 

(정화섭) 2005년 제1회 백수전국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등단/ 《나래시조》신인상/시조집 『먼 날의 무늬』외.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나래시조 회원, 대구시조 회원, 대구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