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활기에다 부수입까지
놀면서도 일하는 방법 체득
도배업의 전망은 더 밝을것
공직에서 은퇴하여 쉴만한데도 일을 계속하는 시니어가 있다. 도배 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임동빈(64. 대구 달서구)씨가 바로 그다. 그는 퇴직 후에 임대업을 하기 위해 퇴직 전부터 준비했다. 대구 서구 두류동에 다가구주택 13세대를 2016년도에 신축하여 초보 임대업자가 되었다. 그런데 겨울철에 결로로 재도배를 몇 번 해 주다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직접 풀을 만들어서 도배를 해보니 이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도배를 정식으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경력자 밑에서 몇 년을 고생해야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막막하여 방법을 찾던 중 서부고용센터를 방문, 국비 전액으로 5개월간의 교육이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어 당시 대구 중구 공구골목에 있는 캐리어도배학원을 찾았다. 도배, 필름, 건축페인트도장 과정에 등록 후 다음해 졸업과 동시에 국가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졸업 전에 강사와 함께 주말에 도배 현장에서 직접 시공도 해보다가 졸업 후에 취업을 하려고 하였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현장에 직접 투입되지 못하고 본격적으로 원룸만 전문으로 하는 프리랜서 일을 시작했다. “운이 좋아서 원룸 일을 주선해 주시는 분이 일을 지속적으로 주어서 처음에는 밤 11시까지도 일을 한 적이 있었고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도배를 하면서 그가 느낀 점은 퇴직 후 몇 개월간은 남들처럼 여행도 하고 운동도 마음껏 해보았으나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무료함이 밀려왔는데 도배를 하게 됨으로써 하루하루가 지겨울 틈이 없어 건강에도 좋고 용돈도 벌 수 있어서 매우 잘한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늘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매일 허름한 작업복에 풀 묻은 옷을 입고 다니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저를 불쌍하게 여기는 눈빛이라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 때마다 그는 자신을 세뇌하면서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내가 가진 게 없어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저 자신에게 계속 말하면서 일을 하다 보니 이제는 반푼수 기술자가 된 것 같아요.”
임동빈 씨에게는 도배를 하면서 기억에 맴도는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저처럼 공직자로 있다가 퇴직한 다가구 건물 주인 집에 도배를 하게 되었어요. 그 주인은 대구시 모 부처에 근무하다가 퇴직했는데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며 저와 비슷한 연배인데 이런 일을 하는 제가 부럽다며 음료수 1병을 건네주었지요.”
그는 퇴직 전보다 더 신나는 삶을 살고 있다. “40여 년을 공직에서 일하다 보니 보고 배우고 몸에 익힌 것이 법에서 정한 대로 법을 위반하지 않고 일을 하는데 치중하면서 늘 변하지 않는 나무같은 인간으로만 살았다면 지금은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나누어서 주어진 일을 내가 정한 시간에 해드리고 나머지 자유시간을 활용하면서 살다 보니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오늘 바쁜 일이 있다면 새벽에도 가서 일을 해주고 낮에는 볼일도 보고... 그런 자유로운 프리랜서랄까...”
그는 도배업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한다. “늘어나는 아파트를 보면 미래를 볼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신축아파트의 경우 5년 정도 지나면서 재도배를 하게 되니 일은 내가 할수 있다면 늘 있다고 봅니다.”
도배기능사 시험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연 4회 시행하며 실기시험으로 치러진다. 시험준비를 하려면 직업훈련원이나 학원을 찾아가 상담하면 된다. 국비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제2의 인생을 그 누구보다도 보람있게 살아가는 임동빈 씨. 임대업과 도배업에 종사하는 그는 자전거, 파크골프, 캠핑 등으로 여가시간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시니어들에 일은 무엇이며 여가활동은 무엇일까? 시니어들의 바람직한 노후생활은 어떤 것일까? 일하는 시니어 임동빈 씨는 반짝 일하다가 마는 사람이 아니라 긴 인생을 통해 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시니어들이 마음은 있어도 선뜻 일을 시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일하는 삶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용기와 적극성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대개 사람들은 현직에서 물러난 후 6개월 정도는 해보고 싶은 일은 거의 다 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는 막막할 겁니다. 줄곧 공원에 앉아서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들어가도록 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운동, 사람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습니다.” 직장에서는 지위만 있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찾아 밥도 먹자고 하고 술도 마시자고 하지만 퇴직 후에는 아무도 찾아주지 않으니 방에서 TV나 시청하게 되고 배우자 뒤만 따라다니는 처지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퇴직할 당시 아내에게 다짐했다고 한다. 점심은 절대 집에서 먹지 않을 거라고. 그에게서 이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제 옆에서 같이 힘들게 40여 년을 살아왔으니 와이프도 거기서 은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주말에는 같이 보내는 게 좋겠죠.”
그는 가야산 밑에 조그만 농막 1개를 갖다 놓고 매주 금요일에는 부인과 함께 영농체험도 하고 별도 보면서 불멍도 한단다. 그곳에는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달서구민 여섯 가구가 들어와서 주말체험농장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는 일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도 만나고 같이 여행도 하고 같이 커피도 마시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이것이 바로 일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주말농장을 저의 놀이터로 삼고 살아갈 겁니다. 물론 도배 일도 계속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