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친근한 달성공원
우리에게는 친근한 달성공원
  • 안영선 기자
  • 승인 2023.10.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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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공원의 정문. 안영선 기자

지상철 3호선에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달성공원이다. 달성공원은 옛날부터 대구의 부족국가였던 달구벌의 근거지로 뿌리내려 오면서 한때는 군사요충지로 이용되기도 했던 토성이었으나, 1905년 고종 38년에 공원으로 조성되어 지금까지 가꾸어져 오게 되었다. 현재는 동물원을 비롯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향토역사관이  있어 대구의 역사와 생활과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도심에 있는 공원이기도 하지만 26.446㎡의 잔디광장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눈이 시원하고 전망이 좋을 뿐만 아니라, 교통이 편리하고 어린이들의 산교육장으로 다양한 볼거리 준비되어 있다.

대구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공원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에게는 가장 친근한 휴식처로 어르신들에게는 경로당 구실을 하는 쉼터이고 만남의 장소다.

달성공원은 옛날부터 대구의 부족국가였던 달성서씨가 대대로 살던 사유지였는데 조선조 세종 때 서씨 일문이 헌납하여 국유로 귀속 되었고, 1967년 5월에 지금의 모습 종합공원으로 대공원이 만들어졌다.

달성공원의 관풍루. 안영선 기자

달성은 자연 구릉을 이용하여 그 위에 흙과 돌을 쌓아 만든 토성으로 규모는 동서 약 380m 남북은 약 470m로 전체 길이는 1.300m다. 성벽의 규모는 부분적으로 차이는 있으나 하부폭은 약 20여m에 이르며 높이는 4-7m로 전체의 모습은 오각형에 가까운 모습이다.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에 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경주 월성과 형태가 유사한 평산성으로 생김새와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사적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이사금 15년(261)에 나마 벼슬의 극종을 성주로 삼았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전하지만, 달성은 청동기시대부터 지역의 중심을 이루던 집단이 그들의 생활 근거지를 이용하여 쌓은 토축성으로 여러차례의 증.수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달성은 신라에서 고려시대까지 관아지로 사용 되었으며, 그뒤 임진왜란 때는 감영으로 이용된 적도 있다. 

달성이 공원으로 조성 된 것은 1905년이고 그후 일제의 침략전쟁 수행과 식민지 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1914년 대구신사가 세워졌으나 1966년 8월에 신사건물을 해체하고 공원의 내부를 정비한 후에 오늘날과 같은 동물원 겸 대공원으로 시민에게 개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