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니어] 지혜와 힐링의 모임 ‘삶과 문학'
[행복한 시니어] 지혜와 힐링의 모임 ‘삶과 문학'
  • 노정희
  • 승인 2019.04.08 14: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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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넘게 이어온 모임, 우정은 산길과 같다. 자주 만나야 길이 된다
김용락 시인을 '선생'으로 만나 공부...회원 25명, 몇 년 전 청일점 회원도

-우정은 산길과 같다. 자주 만나야 길이 된다.

친정 나들이는 설렌다. 구태여 수식어를 달 필요도 없다. 모임 중에도 친정 같고, 고향 같은 곳이 있으니 바로 ‘삶과 문학’이다. 1998년 3월에 문을 연 인문학 교실 ‘삶과 문학’은 대구 반월당 삼성생명 빌딩에서 시작했다. 장소 문제로 여러 번 위기를 맞았으나 그때마다 회원들은 단합된 힘으로 장소를 섭외하였고 현재는 대구 수성구 달구벌대로 ‘문화분권포럼연구소’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삶과 문학’은 정으로 맺어진 모임이다. 가르치는 강사도, 배우는 회원들도 모두가 ‘선생’이다. 지적 교양과 학문을 ‘선생’에게 배우고, 삶의 향기를 또한 여러 ‘선생’에게서 배운다. ‘우정은 산길과 같다. 자주 오고 가지 않으면 어느새 없어진다’라는 말이 향기롭다. 선하고 정겨운 사람들 사이에 자라는 우정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늘 그 자리에 존재한다. 좋은 관계로 맺어진 회원들은 상대의 눈물을 닦아주고 상대의 행복에 환호해 준다. 20여 년을 우정으로 어깨동무하며 걸어온 모임이 바로 ‘삶과 문학’이다.

◆ 25명 회원들 22년 째 한결같은 모임

‘삶과 문학’은 22년째 이어오는 모임이다. 현재 회원은 25명으로, 최초에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모임이었으나 몇 해 전부터 청일점으로 권태영(전도사) 씨가 합류했다. 이미 고인도 있고 지병으로 모임을 접은 분도 있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주는 회원들이 있어, 한 번씩 들르면 고향 같고 친정 같은 분위기에 매료된다. 모임을 이어오는 힘이 바로 정과 반가움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박숙희 시인, 허태연 시인(회장), 박일아 시인, 이필호 시인(왼쪽부터).

초창기 멤버로 구옥남 박경조 박선주 박숙희 박영미 박일아 이필호 최경화 최영자 최종례 허태연 씨가 꾸준히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권태영 권용규 김미정 남인숙 도현숙 류재희 민주현 배정옥 손정민 송옥희 신동희 엄재옥 정은희 씨와 해인 스님이 합류했다. 회원 거의가 중견 시인이며 염색공예가, 피아니스트, 전도사, 스님, 논술지도사, 요양보호사, 청소년상담사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였다.

20여 년 전을 거슬러 오르면 참으로 정스럽다. 보통 여성 모임과는 다르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품새가 넓은 모임이었다. 어느덧 꽃다운 나이의 아주머니들은 할머니가 되었고 언니처럼 동생처럼 그렇게 ‘정다운’ 시간을 수놓았다.

'삶과 문학' 10주년 기념 '좋은 인연' 문집 출판
'삶과 문학' 10주년 기념 '좋은 인연' 문집 출판회. 

2008년 3월에는 ‘삶과 문학’ 10주년 기념으로 『좋은 인연』 문집을 만들었다. 그해 5월에는 김용락 선생 시집 출판식을 빙자하여 염무웅 선생 은퇴식을 마련한 행사에 ‘삶과 문학’ 팀이 자리했다. 2008년 6월에는 속리산 법주리에 있는 도종환 시인을 찾아가는 문학기행을 열었다. 그 외에도 경주 감은사지와 남산 산행, 권정생 생가, 이병주 문학관, 합천군 야로면 월광사에 들렀다가 성철 스님이 즐겨 드셨다는 국숫집을 찾아가고, 합천 해인사 승가대학장인 원철 스님을 뵈러 가는 등 알찬 기획도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팔공산 한티 부근의 허태연 회장 집으로, 딸기밭으로 몰려가 잔치를 벌이기도 했으며, 군위 금성에 있는 박영미 회원의 자두 농장으로 나들이도 다녀왔다.

신동희 시인, 박선주 시인(총무), 최영자 시인
신동희 시인, 박선주 시인(총무), 최영자 시인.(왼쪽부터)

‘삶과 문학’ 모임의 허태연(72) 회장은 장기집권 중이다. 박선주(58) 총무 역시 그러하다.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회원을 아우르는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허태연 회장의 모임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우리 모임은 특별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 도시의 여성 모임으로, 인문학에 대한 열정은 중세 르네상스에 버금갑니다. 친척, 형제, 자식도 자주 만나기 어려운데 우리는 1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의 명강의를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선생님이 작년부터 직장을 서울로 옮겨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모이지만 여전히 모임의 맥은 이어갈 것입니다. 회원 모두가 이쁘고 사랑스럽습니다”라며 큰언니처럼 자상하게 말을 이었다.

수업 마치고 식사
수업 마치고 함께 식사하며 정을 나누는 회원들.

선생님의 강의 외에 부수적으로 듣는 즉석 카페 강의도 빼놓을 수 없다. 철학박사인 해인 스님은 “군자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기본 바탕에 둡니다. 그 외에도 차, 향, 서화, 꽃 네 가지 ‘문인사예’를 가까이 두고 마음을 다독였습니다”며 요목조목 조언을 주신다.

민주현 씨는 회원들 만나는 날이라 새벽부터 일어나 전을 부쳤다고 한다. 우엉전과 방풍나물 장아찌를 나누는 마음이 맛깔스럽다.

책을 읽으며 더러는 문장을 빼먹기도 하고, ‘눈이 침침해서’ 다른 분에게 대신 글을 읽으라고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러려니’ 덤덤하다.

강의가 좋아서, 다방면에 많은 것을 배우니 눈이 뜨인다는 회원들은 ‘삶과 문학’에 오면 힐링하고 간다며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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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학'의 지킴이 김용락 시인

 
김용락 시인

'삶과 문학'은 매주 한 번씩, 20여 년을 한결같이 얼굴을 맞대었다. 그 중심엔 김용락 시인이 있다. 김 시인과 함께하는 강의를 듣는 것이 모임의 뼈대였다. 그런데 2017년 하반기에 위기가 찾아왔다. 김용락 선생이 ‘한국국제문화교류 진흥원’의 일을 맡아 서울로 가게 되었다. 결국 한 달에 한 번씩 김용락 선생의 강의를 듣는 것으로 조율이 되어 다시금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강의에서 글쓰기 이론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화제의 시집이나 명 평론을 읽으며 토론하고, 인문 교양, 정치, 경제 등 시대에 맞는 시사를 총망라하여 수업하고 있다. 톨스토이, 사르트르, 토마스 만 등의 글을 논하며 그들의 철학을 배운다.

 

-김용락 선생이 걸어온 길/ 책 읽기는 일상이다

의성 단촌 출신인 김용락(61.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 시인은, 통상 ‘선생’으로 불린다. 대학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교문을 나서면, 교수라고 부르는 호칭을 꺼렸다. 교수는 왠지 직업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했다.

김 선생은 대구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많이 외로웠다. 시골에서 올라온 촌 아이 눈에 보이는 문화적인 충격이 컸다. 같은 반에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 아버지가 의사, 사업가 등 부유한 집안 아이들이 많았다. 자연히 의기소침하여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내면 깊숙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군대에서도 에피소드가 있다. 당시 대학 다니다 온 군인은 드물었다. 대학 다닌 티만 내도 불이익이 돌아오는 분위기가 없잖아 있었다. 하루는 부대 밖에 행군 나갔다 오는데 길가에 표지가 뜯긴 잡지가 있어 품 안에 감추고 들어왔다. 그러나 읽을 장소가 마땅찮아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면서 책을 읽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동료 군인들이 사라진 사람을 찾느라 난리여서 일어나 나왔다. 얼차려를 받는 것보다 엉덩이가 가려워 더 혼이 났다. 변소 모기가 궁둥이에 새까맣게 붙어 피를 빨고 있는 것도 모르고 책을 읽었던 것이다.

한번은 바깥에서 보내온 책을 읽고 싶어서 부대원 전체가 물청소하는 시간에 혼자 사무실 캐비닛에 들어갔다. 철문을 빼꼼히 열어놓고 가느다란 빛을 의지해 책을 읽다가 발각돼 사무실 바닥의 물을 다 핥아 먹을 뻔한 적도 있다.

“독서는 반드시 종이로 된 책을 펼쳐서 활자를 읽는 행위만 말하는 건 아니다. 20대 초반에 문단에 나와서 많은 분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다. 문인뿐만 아니라 사회운동가를 비롯해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다. 이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이분들의 안목을 통해 세상을 배웠다. 그리고 배운 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염무웅 선생, 백낙청 선생, 김종철 선생, 정지창 선생, 이수인 선생, 유홍준 선생, 이하석 선생 등 이분들에게 배운 것은 너무 컸다. 말 그대로 활자로 읽을 수 없는 ‘사람 책’을 엄청나게 읽은 셈이다.”

-수업은 이렇게

수업 1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山嵩海深)

김 선생이 해설을 쓴 김성장 시인의 시집, ‘눈물은 한때 우리가 바다에 살았다는 흔적’을 펼쳤다. 김성장 시인의 예술관이 탄탄하다. “예술은 고매한 취미가 아니며 과시용이 될 수도 없고, 우아한 사치일 수는 더욱 없다. 더구나 지식인이 사회적 과제를 붙안고 고민하는 자리에서 당대의 첨단 메시지를 담아내지 못하면 진정한 예술은 탄생할 수 없다.”

시 몇 편을 읽으며 더불어, 철학과 다방면의 시사 문제를 덧붙이는 수업이다. ‘글씨를 글씨로만 쓰는 것은 사자관(寫字官)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용을 중점으로 다루었다. 김용락 선생은 근래 가슴을 가장 뜨겁게 한 사건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유홍준 교수가 쓴 ‘추사 김정희 –산숭해심’이라는 평전을 읽은 것이라고 했다.

추사는 글씨만 잘 쓴 서예가는 아니었다. 한 사람의 사대부로 당대의 문인이자 학자였다. 문·사·철(文史哲)과 시·서·화(詩書畵)에 두루 능통한 시와 문장의 대가였다. 책의 부제로 붙은 ‘산숭해심(山嵩海深)-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라는 추사의 예술과 학문의 세계를 요약한 글귀이다.

1816년, 84세의 옹방강이 31세의 추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추사는 감격하며 읽고 나서 옹방강의 정신을 제찬했다.

사실 밝힘 책에 있고

이치 따짐 마음속에.

고금을 고증하니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산숭해심’의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는 한라산 자락의 이국적 풍광을 적은 것이지만 속내는 실사구시 정신을 표현한 것이리라.

2008년 5월, 염무웅 선생 은퇴식 행사
2008년 5월, 염무웅 선생 은퇴식 행사

수업 2 : 사자관(寫字官)

김 선생은 얼마 전에 평창동계올림픽의 개‧폐회식 행사를 총감독한 송승환(배우. 공연제작자) 씨를 만났다고 한다. 북경올림픽의 1/10 경비로 행사를 주관한 그는 단순히 보는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살리는, 한국의 과거와 미래를 보여주려’고 힘썼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인면조(人面鳥)’는 고구려의 덕흥리 고분벽화에 묘사된 것으로 사람 얼굴을 한 새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존재’로 알려졌다.

송 감독이 인생에서 변화를 이끈 것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 대학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한 것. 둘째, 세계 시장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난타’를 만든 것. 셋째, MB 정부 때 문화부 장관 제안을 거절한 것이라고 했다. 요즘은 철학이 없고 세계를 보는 통찰력이 없는 예술가가 더러 보인다. 결국 사자관에 불과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송 감독은 해외 난타 공연을 370여 회 이상 기록하고 있으며 여전히 더 나은 발전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송 감독이야말로 진정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이다. 문학에도 조예가 깊고, 특히 책을 많이 읽은 분이다. 사자관이 아닌, 창조하는 사람이다.”

2008년 6월 속리산 법주리, 도종환 시인 탐방
2008년 6월 속리산 법주리, 도종환 시인 탐방

수업 3 : 분별심(分別心)

현재 사회는 정신적 환자가 많다. 서민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부동산 투기를 하고, 깨끗하지 않은 과거를 감추며 정계 공천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도 일종의 정신병이다. 인격이 훌륭해야 예술도 잘한다. 현재는 예술은 잘하는데 인격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

돈이 쾌락의 단어가 된 지는 오래다. 결국 돈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세르비아에서 울린 총성 한 발이 세계 1차대전을 일으켰듯이 사소한 일에서 의도치 않은 연쇄효과가 이어져 비극을 만든다. 가난해야 사람답게 산다. 권정생 작가가 그러했지 않은가.

사람은 분별심을 가진다. ‘나와 너, 좋고 싫음, 옳고 그름 따위를 헤아려서 판단하는 마음’이 사전적 분별심이다. 낮은 차원에서 볼 때 똥오줌 못 가리는 게 분별심이 없다는 것이다. 높은 차원에서는 분별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경지에 오르는 목표는 이익을 따지거나 계산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어느 길로 가느냐. 어떤 방식으로 가느냐가 최종 목표가 되어야 한다.

문체부 도종환 장관이 퇴임하면서 직원들에게 시(詩)로 인사를 대신하였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내가 내리는 지금 이 정거장의 등불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이 시는 중국 시인 수팅의 ‘이별에 부쳐’라는 시이다. 얼마나 가슴 찡한 퇴임사인가. ‘사람의 일생에는/ 수많은 정거장이 있어야 한다/ 바라건대 그 모든 정거장마다/ 안개에 묻힌 등불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

문학인의 목표는 글을 쓰는 것이다. 글에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기능공이 되지만, 철학자는 세계를 보는 눈과 사상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책 읽고, 시사 얘기를 나누는 이 귀한 시간이 소중한 의미로 남길 바란다.

 

2015년 5월 합천 해인사, 원철 스님과 함께
2015년 5월 합천 해인사, 원철 스님과 함께

-김용락 선생과 ‘삶과 문학’의 인간적 만남

김 선생을 개인적인 입장에서 볼 때, ‘걸어 다니는 책’으로 일컫는다. 경제, 정치, 문화의 시사 쪽만 아니라 문학 다방면에 백과사전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를 인용해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사는 사람은 언제나 불안하고 방황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안주하는 편안한 삶이 아니라 거친 돌밭 길을 걷더라도 뭔가 새로운 진리를 찾아 헤매는 순례자의 삶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깨우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세계의 풍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고민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편안하게 살면 정신이 썩는다.

프란츠 카프카의 ‘책이란 무릇 우리 내면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든가, 서양철학자 니체의 ‘위험한 삶이 향기가 난다’, 사회철학자 카를 포퍼의 ‘읽는다는 것, 그리고 쓰는 것을 배우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의 지적 발달에 있어 중대한 사건이다. 이것이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고 일깨워준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머릿속에 넣어주는 지식보다 가슴에 넣어주는 따뜻한 인정이다. 신춘문예 본선에 올랐으나 아쉽게 고배를 마신 회원의 직장에 찾아가 국밥 한 그릇으로 마음을 나누며 위안을 주고, 한때 부유했던 사람이 형편이 어려워져 방황하듯 다니다 한 번씩 찾아오면 음식 대접을 해 주는 모습에서 김 선생의 마음을 읽는다. 막창집에서 소주잔 기울이고, 분식집에서 저렴한 음식을 먹어도, 스스럼없이 대해 주는 편안한 분이 김용락 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