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기회로 만든 달인찜닭 박병욱 회장
역경을 기회로 만든 달인찜닭 박병욱 회장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3.07.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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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찜닭 박병욱 회장님

2004년 창업해 현재 380여 개 가맹점을 이룬 기업인이다.

2023년에 제46회 자랑스러운 대구시민 수상 대상을 받았다.

-수상 계기는

▷보통 서민을 위주로 가난한 사람들 위주지요. 결과적으로 이제 예를 들자면 범어3동에 희망자들이 세 명 네 명이 나타나면 그중에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거든요. 우리 회사로서는 선택해도 돈 좀 있는 사람을 선택하면은 그래도 회사에 얻어지는 것이 좀 있다고 보는데. 저는 살아온 거를 간단히 미리 짐작해 드린다면은 제가 어릴 때 고등학교 시절에는 농촌에서 아마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자였다고 봅니다.

황무지 개발 50만 평을 한국전쟁 끝나자 바로 집에 부친이 개척사업을 했습니다. 땅이 50만 평이 탄생해요. 그 50만 평을 사과나무를 다 심어서 1년에 그 당시에 5억 내지 6억 원을 수확하고 그러면은 60년대 그 정도 같으면은 지금으로 봐서는 수백억 원이 되지요. 농촌에서는 현금이 제일 많은 농장입니다. 당시 부친은 새마을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 박정희 대통령님한테 민족 사업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셨다고 해서 민족 산업상 본상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박하수 저의 아버지였지만 선생님으로 여길 정도로 배우는 점이 많았어요. 정신문화 유산 사람 살아가면서 가난한 사람을 많이 도와주는 것이 저의 체질이고 옛날부터 그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사회생활을 한다 이렇게 제 나름대로 원칙을 정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직원들이 불평하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돈 좀 많이 투자하는 사람으로 하지 왜 가난한 사람한테 주냐고 하지만 때로는 직원들의 월급이 밀리면 제 월급까지고 월급을 줄 때도 있고 여러 가지로 본점의 매출이 많아서 그것까지고 충분히 세금을 내고 월급을 줄 수가 있습니다.

이제 13년 만에 회사가 세 개입니다. 100만 원 투자해서 (주)DF&B·주식회사 달인 식품·달인찜닭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넣어줌으로써 그 사람들이 3년 이상 5년 6년 7년 이상하면은 부자가 됩니다. 상가도 사고 땅도 사고 부자가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처음 면접할 때 나중에 돈을 벌면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뭐냐 질문을 하면 가족들과 여행을 하는 것이 소원이라 소박한 마음으로 실제로 여행도 가고 집도 사고 땅도 사고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가 있도록 우리가 여건을 만들어 주었어요.

이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의 고리를 끊어놓고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데 시민상을 받아야 한다는 이래서 시민상이 있는 걸 알게 되었고 2022년 8월에 알게 되었어요. 우리가 서류 만드는 것은 어차피 있는 서류 그대로 복사하면 되고 진땀빼면서 서류에 합격하려고 갖은 애를 쓰고 그런 것 없어서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는 대로 이제 구청에 내고 시에 내고 이제 구청에서 시에 이제 이렇게 서류를 내어서 대구의 일부 상황 관계를 아는 사람이 몇 번 내야 몇 번 떨어져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한 번만에 됐습니다.

또 홍 시장님이 까다로우신 분이라 심사위원을 12명에서 많아 봤자 15명인데 18명으로 되어서 그래서 더욱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경영하는 가맹점은 자유 근로소득자들 자기가 사장이거든요. 어쨌든 폐업이 거의 없고 계속 한 10년 정도 우리가 사업을 한 지가 10년 정도 되거든요.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가맹점사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

▷사과 위주를 전국에 최고의 상품을 수매하다 보면 그걸 쉽게 말한다면 수매를 하게 되면 맛집을 많이 일고 방문하는데 상점 입구에 메달에 딱 걸려 있는데 이 집은 40년 50년 전통이다.

이렇게 있는 걸 보고 그때도 스치는 생각 아무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고 저거 참 대단한 일이다.

음식 하나로서 대를 물린다는 거는 그건 그분들이 프랜차이즈를 하는 것이 아니고 고기 요리 라든가 특별한 음식이 그렇게 오랜 사람들이 즐겨 찾기 때문에  50년 60년 가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은 그렇게 갈 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실제로 시식해보면 그 정도 오래 갈 수 있는 상품이라고 생각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평소에 생각해 놓던 그 외식업을 하는데 저는 좀 특이하게 조사를 했어요.

통계청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식자재가 많이 유통되는 순번을 통계청에 의뢰하니 쌀 다음에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큰 틀에서 얘기를 하고 닭고기를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 닭요리를 보통 보면 튀기고 뭐 이렇게 하면은 트랜스 지방이 아무리 좋은 기름도 생기기 마련인데 그게 또 설상 좋다 하더라도 주식이 될 수는 없는 거거든요.

주식이 하루 세끼 밥하고 먹는 거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은 이것을 어떤 요리 식으로 해야 하는데 전국 조사를 또 해보니까 안동에 찜닭이 있더라고요.

안동찜닭의 유래를 역사를 살펴보니 조선왕조 500년부터 그 요리를 먹어왔더라는 얘기가 있고 이봉근 수라상에도 소개가 되었더라고요.

그러면 우리는 신세대에 걸맞도록 새로운 개발을 해야 한다는 이게 소스 양념이죠. 달인 식품을 이야기하는 거입니다. 식품을 연구하고 만드는 공간이 어느 큰 식당으로 간다. 그것도 아니고 집에서 이렇게 만든다는 그것도 아니고 나는 많은 행인이 지나가는 곳 포장마차에서 했어요. 포장마차 음식을 팔아가면서 그래야 자연스럽잖아요.

그래서 달인 식품을 연구하면서 자꾸 발전돼 나가면서 지나가는 단골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이거 한번 만들었는데 이거 한번 드셔보시오. 이러니까 깜짝 놀라더라고요. 내가 찜닭을 좋아하는데 이 찜닭은 맛이 참 신비할 정도로 맛이 좋다.

첫째로 닭에 대해 비린내가 안 난다 깔끔하다.

이런 그걸로 인기가 상승하기 시작하는 그것이 달인 식품 연구를 하는데 3년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 포장마차에 경영 형편이 망할 대로 망해서 진짜 포장마차 신세가 돼서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구미에는 우리 직원들이 280명 무역을 사업하는 터였어요. 틈새시장으로 하나 제대로 한번 미리 준비해서 사전에 워낙 부도를 네 번이나 맞았으니까 다시는 이런 그 부도라든가 또 어떠한 제2인 3인 타의 문제로 인해서 부도가 났으니까 제가 잘못해서 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 자체에 그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외식업을 하나 해야 하겠다.

하나 장려를 시켜야 하겠다고 하는 것이 매주 그러니까 3일은 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직원들이 볼 때 매주 3일 동안은 대구 계속 내려가니까 대표님이 매주 1, 2년도 아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려가니까 궁금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밑에 상무가 이 뒤를 밟았어요. 집사람하고 둘이 포장을 확 뜯어 붙이는 것이 포장마차였다는 거죠.

깜짝 놀라 멀리서 사진을 하나 찍어놓은 적이 있어 그게 대박이 된 거예요.

내가 포장마차에서 그거 한다고 해서 기념으로 촬영해 놓겠습니까? 근데 직원이 자기들도 놀래서 이거는 대단한 사건이다. 이거를 그래 기념으로 단 하나 찍어놔야 하겠다.

해서 찍어놓는 것을 하나하나 책으로 옮겨놓았어요.

그래서 시도를 하는데 이 도전적인 정신은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미래를 위해서 할 수 미래의 일을 위해서 어떤 나의 위치를 생각하고 항상 무역업자 대표로서 한마디로 그 자세만 얘기하려고 그러는 거지 미래를 위해서 포장마차를 한다는 거는 아마도 대한민국의 내뿐이지 않으냐? 그리고 단돈 100만 원에 회사가 2023년도니까 14년째 들어가죠. 회사가 3개를 만들 수 있는가 한 돈 100만 원 가지고 여기는 그 외에 돈은 한 푼도 안 들어갔습니다.

여기에 본점을 바로 해서 손님이 밀려들기 시작한 이 집을 살 때는 싸게 샀죠. 장사도 안되고 뭐 해도 8개월 이상 안 갔으니까 그래서 제가 사고 땅값이 오르고 골목을 다 살리는 턱이지요.

-초기 자금 하셨다는데 100만에 사업이 가능합니까?

▷100만 원 가지고 포장마차를 샀잖아요. 100만 원 포장마차하고 재료비는 그날그날 쓰는 거를 배달해줘요. 그러니까 100만 원이죠. 100만 원인데 여기 단돈 100만 원 월 8만 원에 계약서가 있어요. 짧게 설명했습니다마는 현실적인 게 중요하니 왜 그렇게 시작된다고 하면은 거의 단돈 100만 원에 시작해서 소스 개발을 위해서 달인 식품이 탄생했습니다.

-가맹점의 규모

▷가맹점 350개가 있는데 1월부터 경북 자활센터 지역자원센터 협회와 가맹점 200개 계약을 체결하고 전국으로 본다면 250개 물량입니다. 250개 그것을 MOU 체결을 했어요.

이것도 지원 센터에서 와서 MOU 체결 먼저 하자고 그래서 했던 것이지 자활센터가 사실상 있는 줄은 몰랐어요. 솔직히 잘 모르자 자활센터 봐서 좀 해달라고 요청해서 그래 되는 것이고 자활센터는 우리가 가맹비라든가 이런 것도 하나도 안 받고 협조를 많이 해주죠.

-다른 식품에서 생산되는 제품과 특성

▷다른 식품에 생산되는 제품은 이제 우리 가맹점으로 전부 다 들어갑니다. 가맹점 그 이외에 일체 판매는 없습니다. 다른 판매도 이제 채소라든가 경기도 쪽은 이제 거리가 멀기 때문에 우리 이제 소수만 들어가고 이제 양념하고 닭하고 닭이 중요하기 때문에 보세요. 짜장면 한 그릇도 7천 원인데 웰빙음식이고 고기인데 이 고기가 상당히 우리가 그렇게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는 굉장히 아주 불이 강하게 나오면서 요리를 합니다. 그러니까 닭고기가 아무리 좋아도 이렇게 이물질이 있을 수 있거든요. 닭, 기름이라든가 이런 게 연소가 다 돼버려요.

조리 과정에서 이 센 불이 아무리 급한 사람도 16분간 기다려야 맛이 나오고 비린내도 없고 아주 많이 고기가 담백한 게 고소한 게 먹어보면 그러니까 10년 이상 넘도록 가맹사업을 할 수 있죠. 음식은 안 되면 6개월 이상 못 가요. 한 번 온 사람이 다시 안 오면 그건 다시는 용서가 안 되는 것이 음식 맛인데 그러니까 가맹점 10년 이상하고 그 가난한 사람이 여관을 사고 그리고 빌라를 짓고 상가를 사고 그거 보면 기가 막히는 일이죠. 우리 찜닭 아니면 그런 사람은 노숙자로 될 사람들인데도 창업 비용을 최소한 적게 드리도록 해서 간판하고 조금만 바꿔도 바로 창업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시설물을 그대로 쓰고 안 되는 무슨 뭐 식당 이런 거 있거든요. 있으면은 그런 식당을 그래 싼 가격에 그러니 굳이 뭐 달찜 한다고 얘기할 필요는 없고 같은 음식 장사한다는 그러고 달찜한 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이 그래 가게를 얻으려고 하면 돈을 더 줘야 했다잖아요. 그냥 음식 장사한다는 그러고 그래 인수해서 그러면은 요즘은 뭐 걸릴 것도 없이 가게도 할 수도 있고 시작을 하게 됩니다.

-무역업

▷1986년도에 황인성 농수산부 장관 저희 우리 농장 관련해서 그러니까 농촌진흥청이 직접 관련해서 농촌 후계자 훈련 농장도 하고 국제 근농가 훈련 농장도 하고 이렇게 쭉 해 나오다 보니까 정치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이렇게 나라하고 농촌을 그 당시에는 농촌살리기 운동을 중농 정책이라고 정치를 농촌의 중심을 두고 정치를 해놓은 그때 그 시절이었기 때문에 저희 농장을 잘 알죠. 그래서 이제 무역해라. 이렇게 공문이 왔더라고요. 그래서 대만으로 무역업을 하면서 전국으로 또 다니죠. 사과 50만 평의 사과는 예를 들어서 1년 사업이 못 되잖아요. 50만 평이라 하더라도 전국 상대로 해야 해야지 그래서 상당한 돈을 벌었어요. 벌었는데 처음엔 신용도가 좋았다는 얘기죠 대만에 사는 사람들한테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한 가지만 했으면 되는데 대한민국에 좋은 물건들이 이제 많이 오고 이러니까 자기들도 돈을 벌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들이 다른 업무를 하다가 부도가 났어요. 그러니까 저 돈이 잠겨버렸잖아요. 이래서 같이 또 부도가 나고 그렇게 쭉 살아오면서 아무리 기본 재산이라든가 기초적으로 뭔가 이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금 능력이라든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자신감부터 해서 다 이루어지고 있지마는 이게 전부 무슨 사업이든지 전부 상대성이 있는 거 아닙니까? 종업원들하고도 관계가 있는 것이고 전부 사업이라는 것은 다들 이렇게 상대성이 있는 건데 그 상대가 잘못돼 버리면 나도 억울하게만 이렇게 잘못되고 그런 수가 한두 번 있으니까 그래서 자꾸 그런 일들이 생기는 것 보니까 안정적인 것은 이제 먹거리 사업이다.

먹거리 사업은 외상도 없고 여하튼 좋은 토속적인 우리가 음식이죠. 이 토속적인 음식을 세계에서 최고 맛있다는 소리가 나와 버리면 그것이 세계적인 음식이 돼 버리는 것이고 그러니까 그래서 지금 안정성 있게 잘 지금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농장 경과

▷과거 일이지만 저희가 농장이 전국에서 개인적으로는 제일 크고 하니까 정부에서 이 농장을 모범농가 훈련 농장 여기는 지금 다 나와 있는데 독 농가 훈련 농장 그거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계실 때 농촌 육성 사업으로 첫째도 둘째도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쌀밥을 많이 먹을 수 있는 이런 환경적인 정치를 하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은 농촌 쪽으로 청년들이 가서 농사를 많이 지어줘야 전부 시골에는 나무뿌리 풀뿌리 이런 것밖에는 먹을 수 없는 이런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 있다고 본단 말입니다.

중농 정책을 써서 농촌의 젊은이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는 저희 농장에서 와서 훈련을 6개월간 받아요. 훈련을 6개월을 받으면 그 당시에 부정 축적금 모아놓은 돈들이 많아요. 부정 축적금 김종필부터 해서 등등 이런 돈을 6개월간 교육 이수를 저희 농장에서 받으면 2천만 원씩 그런데 2천만 원씩 그때 2천만 원이면 컸어요. 그걸 거저 주었어요.

1인당 2천만 농촌 장착하는 조건으로….

아마도 72년도부터 계속해서 80년도까지 85년도까지 아마 그 사업을 2천만 원 지원이라는 거는 그냥 거저 줬습니다. 지방에 이제 농촌지도소장이 있어요. 농촌지도소장 밑에 담당 직원들이 있습니다. 담당 직원이 땅 사는 그것부터 관리하고 농촌총각이 있으면 땅 사주고 또 밭갈이 해서 농사를 먹어서 쌀 위주로 옛날에는 생활고에 보리밥을 못 먹어서 그때 그 당시부터였는데 쌀 생산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고 그러니까 이모작 쌀이 끝나면은 예를 들어 다른 작물을 심는다든가 또 양파를 심고 나서 수확이 끝나잖아요. 끝나면은 쌀을 심는다든가 이렇게 농촌 지도를 했어요.

저희 농장에서 정신 6개월 교육받고 나서 농촌진흥청으로 이관을 시켰지요.

-무역업과 관련성

▷저희 부친이 1976년도 추석 이튿날 별세를 하셨는데 유훈이 앞으로 후손을 위해서 거의 임대로 줘라. 이거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또 이 개척사업은 얘깃거리가 좀 있습니다만 정말로 혼자 가족들과 제 착 명의로 가지고 했던 건 아니거든요. 예 그냥 한국전쟁 때 상이군경 내지는 또 못 살아갈 거지들 위주로 이렇게 일을 이렇게 큰 집을 지어놓고 일을 시켰어요. 그 사람들 먹고살게끔 해주고 그 지역 주민들은 일 은하지마는 다 가난한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래서 농장에 와서 일을 많이 이렇게 개척하는데 많이 일구어준 그 사람들이 대대손손 다 땅을 이용하도록 만들어 줘라. 100년이라는 세월을 유언으로 남겼어요. 30년 경작하게 되면은 이게 땅이 저절로 그 경작자 손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소유권 문제로 25년 경작하게 되면 사인받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과 좌우명에 대해서

▷절박한 심정들이 제일 앞서는 거죠. 예를 들어 네 번의 큰 부도가 나도 다섯 번째에 도전이 없었더라 면은 이렇게 외식업을 할 수가 없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저희 좌우명은 역경을 이겨 내야만이 성공이 기다려진다. 기적은 기다리지 않고 기적을 만들어나가는 도전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이 있었다. 이 얘기를 항상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 전국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 4일 전에 보면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을 잘 먹고 잘살게 하여주는 것이 지금 현시대에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아니냐 일반 가맹점은 일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아니고 일반인도 가난한 사람이 더 많아요. 왜냐하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한 달에 7~80만 원 나오잖아요. 일반 가난한 사람은 무슨 무슨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못 되면서 그냥 단돈 10만 원 하나 어디서 지원이라든가 이런 게 없는 사람이 또 많다는 게 제가 통계를 보면 다섯 명 중에 두 명은 상위층에 있고 나머지 두 명은 공무원이라든가 직장생활을 하고 뭐 돈은 마음대로 못 써서 그렇지 안정적인 생활은 하고 있고 나머지 한 두 명은 가난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얘기입니다. 더군다나 코로나 때에 자영업이라는 사람들이 부채가 어마어마하게 늘었다고 봐요.

정치하는 분들도 그런 걸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천문학적 수치의 부채가 다 대출해서 식당 하다가 6개월도 안 돼서 폐업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분들이 북구청에 가면은 위생 교육을 매주 목요일 받습니다. 그런 데 가서도 특강을 하는데 제가 봤는데 무수히 오는 거예요. 그런 데 가서도 특강을 한 적도 있는데 예를 들어 일반 가난한 사람들이 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보다 더 못하나 하면은 집안에 아들도 있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자격이 될 만한 그런 형성이 못 되기 때문에 일단은 자격이 없어서 70~80만 원 정부에 주는 돈을 못 받게 되고 아까 그 삼각지대에서 굉장히 이렇게 힘들어 는 사람이 많다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고 저희 그 자부심은 14년 동안 나는 회사를 단돈 100만 원에서 세 개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자부심이고 가맹점주들이 이제 잘살게 되었다는 그런 말씀을 확실히 드릴 수가 있습니다.

부자로 살다가 갑자기 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갑자기 이제 이렇게 망하게 되면 괜히 절박하죠.

요즘 세상 사람들을 보면 한번 땅 망해도 자살한다든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30년도에 가면 축의 전환 시대가 온다.

제가 이렇게 세상을 겪어보고 창업을 해보고 앞으로 이제 10년 후는 지금 기존의 어떠한 그런 중심 역할을 하는 모든 과정이 이제 바뀐다는 얘기죠. 그 중심이 축이라고 본다면은 그것이 다른 방법으로 바뀐다는 것은 지금은 현재 예를 들어 기업이라든가 무슨 위주로 볼 때는 역할이 예를 들어 남자 여자의 역할 이렇게 된 상태에서 사업을 하고 또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또 도우미 역할을 하고 이런데 모든 변화가 확실히 온다는 얘기죠. 그 변화는 하나의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그런 시대가 이 순간을 미래에 앞으로 한 10년을 보고 지금 이제 준비해야 한다. 설상 절박한 처지가 됐다. 절박한 심정이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향후 이제 10년을 준비하지 않으면은 살길이 더욱더 황폐해질 수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해 드리고 싶습니다.

사무실에서 만난 박병욱 회장.  김재춘 기자
사무실에서 만난 박병욱 회장. 이원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