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역사와 발전된 문명이 공존하는 베이징은 정치, 경제, 인문사회의 면모가 조화롭게 잘 갖추어져 있다. 때로는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세계적인 웅장한 무대, 중국의 수도이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수도, 베이징시의 설계와 계획은 고대 중국 도시계획으로서 가장 높은 업적을 구현하며 인류의 위대한 개별 프로젝트로 불려왔다. 특히 오랜 왕가의 기맥과 기풍은 도시 전체에서 뿜어내고 있으며 풍부한 문화유산은 가히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자원이 잘 관리 되어있다.
명나라 시기제국 도시인 베이징의 궁전 도시는 바깥에 자리잡고, 둘레는 18마일 정도이고 4개의 문이 있었다. 정남쪽은(天安门), 동쪽은东安门)둥안먼, 서쪽은(西安门) 시안먼, 북쪽은(北安门) 베이안먼(청나라는 디안먼으로 바꾸어서 불린다).
동, 서 양쪽에는 사원과 제단이 배치되어 있으며. 황궁 문 앞에는 넓은 왕도(왕의길)가 있으며 양쪽에 능선이 있는 천 개의 계단이 있어 ‘T’모양의 사각형을 형성한다. 광장 양쪽의 궁전 벽 바깥쪽에는 중앙정부의 주요 관청이 대칭으로 배치되어 흩어져 있던 중앙관공서들의 배치가 변경된다. 이 모든 황실정원, 황실 궁궐 등은 모두가 황실 도시에 둘러 싸여져 있다.
청나라 때 베이징은 명나라와 황실과 자금성의 안과 밖은 큰 변화없이 도시 기능을 유지하고 다만 도심에서 9개의 문으로 나누어지며, 황청은 모든 기관들이 궁정 생활에 전념 할 수 있도록 중앙 집중식으로 구조가 개편되며 의무실, 주, 부식 창고, 직조와 염색을 담당하는 기관들도 황실의 유기적인 생활에 불편함을 해소 하기위해 내부 공식 감독관이 관리 감독을 했다.
베이징 도시권내에 있는 수백리의 만리장성, 고대 왕들의 장대한 정원림(이화원)은 거의 경전작품이다. 또한 고궁(紫禁城)은 세계최대의 가장 웅장하고 규모가 큰 궁전이다. 명대 시대에 영정문안에 세운 조상에게 제를 올리는 제단, 천단(天坛)은 매년 동짓날에 친히 천제를 봉사하던 곳이다.
베이징 한 가운데 위치한 이곳 紫禁城(자금성)은 명(明), 청(청) 시대의 궁궐이다. 자금성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색(紫)외에는 금지된(禁) 성이라는 뜻이다. 황제와 그 측근들만이 출입할 수 있고 일반 백성들은 출입금지이며 또한 자색은 우주 중심의 북극성을 나타내는 색인데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하늘의 궁전이 북극성에 세워져 있다고 믿어왔다. 다시 말해 천제(天帝)의 아들인 천자(天子) 황제와 북극성을 동급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황제 외에는 살 수 없는 성이라는 뜻으로, 자금성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1989년 천안문(天安门), 100만 명이 넘는 베이징의 학생, 시민, 노동자들이 모여서 인민들의 민주화를 위해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했던 곳, 바로 천안문 사태가 바로 자금성 전면에 배치된 동일한 문을 가르킨다 . ‘인의예지(仁义礼智)’를 중시한 공자(孔子)의 휴머니즘의 가르침도 집권 세력인 중국 공산당은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대륙의 수도 베이징은 정치 자유화와 부패척결의 구호를 외치며 “베이징의 봄을 요구했지만 실패로 끝난 짧은 시민 저항 민주화 운동”이다. 참 복잡하고도 슬픈 대륙의 도시이다.
지금의 베이징은 1환(一环)부터 6환(六环)까지 동심원 형태의 순환도로 교통체계로 되어있다. 가운데의 중심인 1환이 바로 자금성이다. 그리고 5환 동북쪽 방향에 우리 교민이 많이 살고 있는 코리아타운 왕징(望京)이 자리잡고 있다. 고가(高价의 아파트가 즐비하고 좋은 교육환경 때문에 베이징 시민들이 이주해서 살고 싶어하는 신도시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새 둥지 모양의 올림픽 경기장은 중국 국제화의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겉에서 속을 들다 보면 베이징의 특색(京味)은 깊숙하고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골목길(胡同)과 친근함이 있는 사합원(四合院)이다. ‘ㅁ’ 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담장문화는 내부의 주거생활과 외부의 복잡한 환경을 분리시킨 베이징의 전통 주택 양식인데 가운데 원자(园子)두고 각 방면에 방(房)을 둔 한족의 전형적인 형태로 그 역사는 3천 년이 넘었다고 한다. 수백 년의 바람과 비를 맞으며 베이징인들의 평범하고 성실한 삶의 경험을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인구가 많은 중국인이 복잡한 고밀도의 사회적응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중 하나는 아마 전통 문화를 존중한 유가(儒家)의 혈연중심의 종법제도를 기반할 것이다. 인(仁), 예(礼)에 의거한 행동을 강요했으며 단결, 협동, 조화를 강조함으로서 좁은 주거 공간이 불편해도 그 들의 전통을 지키며 고밀도가 야기한 갈등과 문제를 극복했을 것이다.
중국 고대 도시는 정치, 역사, 지리조건 등 다양한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주요 행정 기능에 따라 도(都), 부(府), 주(州), 현(县), 상업도시, 방어도시, 항구도시 등으로 나누어졌으며. 도시 형태에 따라서 구분되기도 한다. 다양한 중국 고대 도시를 왕조시대의 순서에 관계없이 수(隋), 당(唐)의 장안성에서 명(明), 청(清)의 북경성까지, 고대 대 항구 도시에서 강남(江南)의 '수향마을'까지 공인된 도성을 중심으로 중국 도시를 흥미 있는 여행으로, 곳곳의 다채로운 찬란한 문화와 도시 공간과 장소 등을 여러 편에 걸쳐 면면이 살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