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이우현 우리종합주방 대표
'작은 거인' 이우현 우리종합주방 대표
  • 성정분 기자
  • 승인 2023.07.2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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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종업원 거쳐 사장까지
거래처 부도 도산 아픔 겪고
밤낮없이 일하며 채무 청산
'검정고시'는 인생 최고의 선물
고통을 딛고 다시 일어선 ‘작은 거인’ 이우현 대표. 이원선 기자
고통을 딛고 다시 일어선 ‘작은 거인’ 이우현 대표. 이원선 기자

이우현(62) 대표는 1960년 경북 고령군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친구와 술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서 준 빚보증이 잘못되어 그의 가족은 정든 고향을 떠나, 경북 성주군 용암면으로 터전을 옮겨야 했다. 아흔이 넘은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평생 일구어 놓은 전 재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걸 보고 크게 상심하셨고, 그렇게 가난은 전 가족을 어둠 속으로 내몰았다. 그는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따뜻한 쌀밥이 소망이었던 시절

아버지는 머슴 생활을 자청해서 겨우 주인에게 꾼 돈으로 방을 마련했다. 어머니는 과일과 채소를 이고 장사에 나섰지만, 아홉 식구를 먹여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학교에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갈 형편이 되지 않았다. 가정 형편이 넉넉한 친구들이 그의 도시락을 챙겨 주었다. 어느 날, 급장이 자기 집에 가서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슈퍼와 문방구를 하던 급장네 어머니는 따뜻한 쌀밥과 멸치볶음, 계란말이를 내왔다. 숟가락을 드는데 목이 메었다. 집에서 굶고 있을 할머니와 동생들 얼굴이 떠올랐다.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왔다.

그날 이후 점심시간이 되면 함께 도시락을 먹자는 친구들을 뿌리치고, 혼자 뒷산에 올라 소나무 껍질을 벗겨 질겅질겅 씹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의 점심은 소나무 껍질과 수돗물이었다.

학교에서 옥수수빵과 분유 가루를 지급해 주었다. 친구들은 맛있게 먹었지만, 그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도 참았다. 집에서 기다릴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며 빵과 분유 가루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수업이 끝나면 가방을 품에 안고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방문을 열면 동생들은 이내 환호성을 질렀다. 그의 소망은 동생들에게 따뜻한 쌀밥을 먹이는 것이었다.

서문시장 그릇 가게 종업원으로

초등학교 졸업 후 대구에서 주물공장을 운영하는 종고모부 공장을 찾았다. 14살의 나이에 견습공으로 공장에서 철판을 옮기는 작업자의 보조역할을 했다. 일은 힘들었지만, 월급을 받을 때면 힘듦이 사라졌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일을 하다가 부주의로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믿을 수 없었다. 며칠을 방에만 처박혀 있는 그가 안쓰러웠는지 주인아주머니가 방문을 두드렸다. 아주머니를 따라 서문시장 동산상가에 갔다. 그때 기적처럼 눈에 들어온 문구. ‘종업원 구함’ 사장님은 어리고 작은 그에게 배달일은 곤란하다고 했다. 자전거로 그릇을 배달하는 것이 싶지 않다는 얘기와 함께. 그는 물건을 배달하다 파손되면 100% 책임을 진다는 조건으로 그릇 가게에 취직하게 되었다. 14살의 나이에 손가락을 잃었지만, 그는 더 단단한 의지를 얻었다. 종업원이었지만 가게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일했고, 동료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했다. 사장님은 그런 그를 신뢰하며, 거래처 관리와 금융권 자금조달까지 가게 경영에 필요한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경동상회’ 젊은 사장

1997년 4월, ‘경동상회’ 간판을 걸고 그릇 가게를 열었다. 패기 넘치는 젊은 사장인 그는 재래시장 상가의 획기적인 변신을 위해 신용카드 단말기 도입과 상품정찰제 시행을 상가번영회에 건의했다. 이후 신용카드 결제를 실시했고, 이는 재래시장에 대한 신뢰 회복에 기대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다. IMF 경제 위기 때에도 수입품 그릇과 분청 질그릇을 전략상품으로 도입해 어려움을 극복했다.

몰아치듯 다가온 도산의 아픔

아들의 꿈은 연예인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서울의 기획사를 방문해 아들의 면접을 성사했고, 기획사에서는 아들의 소질과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계약하자고 했다.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계약했다. 여러 장의 계약서 내용을 충분히 숙지도 않은 채 기획사 측의 말만 믿고 서명을 했다. 지인에게 차용한 큰돈을 건넸다. 저녁 뉴스에 나온 기획사의 부도 소식. 그 일이 있고 난 뒤 사업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은행에서 거래처 물건 판매대금으로 받은 유가증권 당좌어음이 부도가 났다며 하루가 멀다고 연락이 왔다. 거래처의 연쇄 부도로 자금 압박까지 받게 되어, 물건을 구입한 공장에서 결재를 요구하면 당장에 돈이 없어 물건을 헐값에 팔아 대금을 지급해야 했다. 지인들과 일가친척들에게 사채를 빌려 결재 하며 갖은 방법을 강구했지만, 자금융통의 어려움으로 그는 10년 만에 도산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바닥에서 일어난 검정고시인의 기적

바닥까지 무너진 그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수중에는 돈도 없고, 신용불량자라 금융권 대출도 받을 수 없고 사채도 빌릴 수 없었다.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 시장에서 일당을 받고 일을 하고 있는데, 우연히 검정동문회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는 그에게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지만, 지금도 채권자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라 사업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 친구의 말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았던 그에게 작은 빛이 되어주었다.

8개월간의 떠돌이 생활과 일용직을 접고, 점포를 임대하기 위해 칠성시장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공실 점포가 없었고 정품 장사는 어렵겠다는 결론을 냈다. 중고물품을 판매하기로 사업 방향을 바꿔 중고물품을 취급할 수 있는 판매장을 임대했다. 친구가 차용해준 1천5백만 원으로 점포 임대 보증금과 판매 진열장 간판을 주문하고 나니, 사업운영자금이 부족했다. 그때 오래 전,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도움을 주었던 김복중 검정동문인이 떠올랐다. 그는 흔쾌히 그 자리에서 800만 원이라는 종잣돈을 마련해 주었다.

봉사와 배움에 대한 그의 열의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지난 해 류규하 중구청장으로부터 표창패를 받는 이우현 대표. 본인 제공
봉사와 배움에 대한 그의 열의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지난 해 류규하 중구청장으로부터 표창패를 받는 이우현 대표.  이우현 대표 제공

‘작은 거인’ 다시 날다

‘우리 주방’으로 상호를 짓고 그릇 판매를 통해 갈고닦은 노하우를 쏟아 밤낮없이 일했다. 그 후 2년이 지나며, 변제하지 못한 채권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돈을 갚고 용서를 빌었다. 사업파트너가 되어준 친구는 독립하여 사업을 키워나갔고, 그는 공장과 도매상회 은행권, 채무를 모두 정리했다. 그렇게 부도 후 11년 만에 신용불량자가 해제되었고 은행 통장과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대구검정동문회 발기인으로 참여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32년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지금은 400여 명의 동문이 동문회에서 활동하고 있고 지역동문회로서 최고의 동문회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10여 명의 작은 모임이었다. 검정고시 출신은 누구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동시대에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서로의 아픔에 깊은 공감대와 동질감을 가진다. 오늘날 그가 있기까지 검정고시라는 인연이 없었다면 암담할 뿐이라 말한다.

“검정고시는 내 인생에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검정고시 없는 제 삶은 생각할 수도 없지요. 지금도 절망에 있는 분들에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파도가 높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결코 ‘희망’이라는 노를 놓지 마십시오. 반드시 고통스러운 그 순간은 지나갑니다.”

주요 이력

전국검정고시 대구동문회 회장

대구대학교 가정법률 대학 수료

영진전문대학 외식 프랜차이즈 수료

계명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대구시장 표창 대한민국 청소년 지도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