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시클로를 타다
베트남, 시클로를 타다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3.07.05 07: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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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천국, 베트남에서 만난 사람들

 

6월의 베트남은 더운 열기가 온 몸으로 달려든다. 공항을 벗어나며 3박 5일의 일정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에 걱정 반 설렘 반으로 버스에 오른다. 

다낭이다. 호텔 창밖 멀리 용다리가 보인다. 도롯가에는 오토바이 부대가 부산하게 움직인다. 자세히 보니 오토바이가 사람을 피해 가는 게 아니고, 사람이 오토바이를 피해야 할 만큼 오토바이 천국이다. 

숙소를 벗어나 호이안으로 이동한다. 여러 관광지를 두루 거쳐 시클로를 타려고 버스에서 내린다. 시클로는 자전거의 앞바퀴가 있던 자리에 수레처럼 두 바퀴와 의자를 설치하고, 패달을 밟아 움직이는 삼륜 자전거로 베트남 정부에서 발행하는 홍보물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정도로 그곳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운송수단이다. 

수십 대의 시클로가 일행들을 맞이한다. 호이안은 확실히 다낭과는 다른 분위기로 '논(non)'을 쓴 행상들이 길목을 기웃거린다. 무역의 중심이 호이안에서 다낭으로 옮겨가면서 졸지에 잊힌 마을이 되었다. 그 덕분에 20세기에 베트남에서 일어난 많은 전쟁의 파괴에서 벗어나 건축물들의 훼손이 적었다. 조용한 강변을 낀 고즈넉한 마을로 지금은 전형적인 관광마을이 되었는데, 호텔, 식당, 바,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여 오가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행상들이 들고 다니는 전통모자 '논(non)'을 구입하여 머리에 쓰니 마침 기자가 입고 있는 복고풍 의상과도 잘 어울린다. 시클로를 타고 베트남 서민들의 삶이 묻어나는 소박한 마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거리를 달린다. 우리나라 80년대 시골마을을 연상케 한다. 주거환경이 관광코스로는 미흡하고 지저분했지만, 인위적인 꾸밈이 없어 그들의 속살을 볼 수 있다. 좁은 골목길을 돌아서는데, 중년의 남자들이 웃옷을 벗은 반바지 차림으로 기자에게 손을 흔든다. 까만 얼굴에 흰 치아가 유난히 반짝이는, 그을린 구릿빛 피부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여인네들은 평상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아마도 수공예품을 만들어 납품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갓길에는 먼지를 덮어쓴 들꽃이 반기고, 시클로는 또 다른 신작로에 접어든다. 갑자기 오토바이가 사방에서 쏟아진다. 남자가 속력을 낸다. 찌는 듯한 더위에 기자는 연신 부채질을 한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범벅인데, 페달을 밟은 그들이야 말하면 무엇하랴. 땀방울이 비오듯이 흘러도 견딜 수 있음은 돌아 갈 집이 있고, 시원하게 등물해 줄 가족이 있어서가 아닐까.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돌아본 그들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기자의 머리속으로 빛바랜 사진처럼 보리타작을 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물동이를 짊어진 아버지의 모습도 희미하다. 

해 질 녘 어디선가 풀피리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여행길에 가이드가 선물로 준 흙 피리를 꺼내 답례라도 하듯 힘차게 불어본다. 피리 소리에 그들이 웃고 있다. 생계를 짊어진 고단함 속에서도 투정부리지 않는 묵묵함이, 티 없이 맑은 그들의 미소가 잊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