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킬러 문항
  • 석종출 기자
  • 승인 2023.06.28 11:0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킬러라는 단어 자체가 갖는 무게만큼 40여만 명의 수험생들에게 있어 무게를 느끼는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될까? 수능시험에서 킬러문항을 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원이 전체 수험생 가운데 몇 명쯤이나 될까? 단지 변별력의 문제라면 킬러문항은 정말 공정하지 못하다.

수험생을 자녀를 둔 부모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내 아이가 최상위가 되어야 하고, 될 것이라는 기대를 줄이면 조금은 혼란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최고도 있고 중간도 있고 또 하위도 있어야 화(和)가 이루어지고 균형이 잡힌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킬러문항을 풀어내지 못한다 해도 인생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지식과 경험은 나누는 것이다.

킬러문항을 풀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주선을 띄우거나, 새로운 인공지능을 개발하거나, 법관이 되어 판결을 하거나, 의사가 되어 뇌를 수술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설사 만점자가 100명이 나오면, 그게 잘못인가. 굳이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워야만 변별력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학벌을 기준으로 한 차별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킬러문항 한 두개가 차별을 끌어오지는 않는다고 본다. 오래전 일이지만 가까운 가족이 수능 만점이 400점일 때 397점을 받았다. 정말이지 학원에는 두 과목에 육 개월 이상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풀지 못한 3점에 대해 미련을 가지거나 지금껏 삶에서 어떤 장애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대한민국 서울 하고도 강남에 대치동은 치열한 입시경쟁의 현장이라고 하는데 공부전쟁의 근원(根源)은 내 자식에 대한 기대치의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관심 있는 발언이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 어떤 목적을 두고 목표를 세우기를 바라는지, 교육부장관이 어떤 속내로 어떤 말을 하던지 간에 개천에서 용(龍)나던 시절은 지났고 그런 기회조차 없애버린 기득권자들과 많이 배운 자들의 경계는 워낙 단단하고 빈틈이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배움에도 기회의 불공정은 여전하고 빈부의 격차는 존재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계층으로 구분되지 아니하고 신분의 차별이 없으며 개인이 국민 됨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동등하게 갖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교육의 기회균등 또한 만백성에게 고루 주어지는 것이 옳지만 돈이 없어서 학원에 가지 못하고 그 학원이 한 두 개의 킬러문제를 풀어내는 기술(지식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을 전수시키는 일이고 그들이 카르텔을 만들고 있다면 또한 공정하지 못한 일이다.

공정이야말로 어쩌면 신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법과 제도 안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야 하고 일부를 위한 전부가 되어서는 아니 될 일이기 때문에 킬러문항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해법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고 넓고 깊게 다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