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반납되셨습니다
책이 반납되셨습니다
  • 최성규 기자
  • 승인 2023.06.22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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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생물에게 존댓말을 쓰지 말자

도서관에 책 3권을 반납하러 갔다. 반납대에 책을 올려놓고 기다렸다. 직원이 말없이 마우스만 만지작거린다. 확인차 한 마디 던졌다. “반납됐습니까? 회원증도 드릴까요?” 힐끗 올려다보는 직원의 대답이 가관이다. “예 반납되셨습니다.” 하하! 책님께서 반납되셨답니다.

어쩌다 은행에 들리면 은행 직원이 하는 말도 가관이다. “입금됐는지 확인차 왔습니다.” “예 입금되셨습니다.” 하하! 돈님께서 입금되셨답니다.

학교 동기회 총무를 맡고 있어서 경조사에 화환을 보낼 일이 자주 있다. 꽃집에 값을 결재하고 기다리면, 경조사 당일에 화환이 배달된 사진과 메시지가 온다. “주문하신 화환이 배달되셨습니다.” 하하! 화환님께서 배달되셨답니다.

흔히 듣는 말이므로 무심코 넘기기 쉬운 예를 몇 개 들어봤다. 이런 경우에 과연 존댓말이 필요한지 아닌지, 사람이 아닌 무생물에도 존댓말을 써야 하는지, 돌아서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습지 않은가.

심지어 명사나 형용사에도 존댓말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존댓말을 쓴다. “이 단어가 맞으십니다.” “차가 밀리는 게 맞으십니다.”

4살 먹은 손주 녀석이 요즘 부쩍 질문을 많이 한다. 아직 어리니까 존댓말을 붙여야 하는 대상도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역할이 나에게 주어진다. 위에서 나열한 사례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서 반복하여 교육한다.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때에 미리 언어 교육을 하면 나중에 커서도 잊어버리지 않고 잘 구사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말이 세계에서도 우수한 말임에는 틀림이 없다. 각종 통계나 자료를 통하여서도 입증되었다. 세종대왕께서 정말 잘 만드셨다. 그러나 우리나라 말이 어려운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본다. 한글이 너무 상세하게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바로 위에 열거한 예와 같이 존댓말 반말을 해야 할 상대를 구분 짓는 것도 그러하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라는 말도 있다. 단 한 단어를 잘 구사하고 잘 못 구사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전혀 반대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말이 어렵기도 하다. 요즘 부쩍 늘어나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말을 배우기가 어렵다고들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교육열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고 한다. 영어 교육열만 높은 것이 아닌지, 정작 우리나라 말에 관한 공부는 등한시하지 않는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나 조직에서도 직원들의 기본 언어 구사 능력을 키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새삼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