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윤 산문집 ‘풍경의 에피소드’ 출간
이창윤 산문집 ‘풍경의 에피소드’ 출간
  • 노정희 기자
  • 승인 2023.04.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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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 담백한 인생사 이야기
시인의 희망은 ‘평범한 환경’에서 살고 싶은 것
시를 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시를 썼다
이창윤 산문집 '풍경의 에피소드'
이창윤 산문집 '풍경의 에피소드'

-사설

이창윤 시인과 알게 된 세월이 20여 년이다. 방송대학 국문과에서 스터디 멤버로 만났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공부하고 밥을 먹었다. 그녀는 절도(節度) 있었다. 오직 공부에만 매진하는 모습은 춘삼월 오기 전의 귓전을 훑고 가는 이월 날씨 같았다. 어쩌다 빙긋 웃는 모습은 매화 같다고 할까. 모진 겨울 이겨낸 강인함, 봄을 알리는 청순함, 마지막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아릿함이 어우러졌다.

이창윤 시인의 산문집을 펼쳐보고 나서 그녀의 웃음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한 줄, 마음을 전한다. 잘 견뎌왔다고, 잘 살아왔다고.

제2의, 제3의, 이창윤 시인처럼 ‘힘든’ 날을 겪어가고 있는 이가 있다면 ‘풍경의 에피소드’는 분명 삶의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도 그녀의 산문집을 읽으면 진한 울림을 받을 것이다.

이창윤 시인
이창윤 시인

-책소개

이창윤 시인의 첫 산문집 ‘풍경의 에피소드’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책표지는 저자의 그림 ‘설악산’ 캔버스 유화이다.

이창윤 시인은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문예사조』로 등단하고 시집으로 『놓치다가 돌아서다가』가 있다. 현재 대구경북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풍경의 에피소드’는 목차를 3부로 나누고, 총 37편의 글을 실었다.

제1부 너머를 넘어 / ‘변함없는 부재의 기억’ 외 11편

제2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 ‘예수님과 부처님’ 외 11편

제3부 그림같이 아름다운 향기 / ‘시를 쓴다는 것’ 외 12편

 

-작가의 말

지난날을 돌아보며 산문의 형식에 담는 까닭이 있다. 그것은 수많은 형태로 살아 있는 나와 대상을 불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하는 나는 말하는 자이고, 대신해 쓰는 자이다. 나는 무의식과 의식이 공존하는 세계 안에 묶였던 매듭을 풀고 분리시킨 후 망각의 세계로 영원히 보내려는지 모른다. 분리된 모습들은 더 이상 나의 내부가 아니며 해체된 그들 스스로 각자 생명력을 지닌 단독의 개체들이다.

나는 지우려는 동시에 살리려는 자이다. 무수히 많은 과거의 내가 이룬 공동체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를 거울에 비춰 지우고 미래의 나로 나아가는 일, 그것이 앞으로 남은 일이라면 거부할 까닭이 없으므로 나는 말하지 못하던 말을 글로써 말하려 한다.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과거는 때로 고통이거나 상처다. 그러나 되새김의 과정을 통해 승화시키면 뚜렷한 삶의 궤적으로 남는다. 산, 강, 바다 등 자연처럼 풍경이 된다. 일상의 모습이 다양하듯 풍경 속에는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운율로 풀어내면 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산문으로 풀어내면 수필이 되고, 거기다가 허구의 서사를 포함하면 소설이 될 것이다. 삶의 이야기는 문학작품의 훌륭한 제재가 된다. 따라서 기록하는 자에 의해 호명된 대상은 생생히 살아날 것이고, 내용의 성격에 따라 쓰는 이의 사상과 본질로 드러날 것이다.

떠내려갈 듯 풍랑 같은 세월이었다. 세찬 물살에 깎이면서도 삶의 무게는 살아온 날들만큼 무거웠다. 지워지기도 하고 끊임없이 재인식되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하다. 부끄럽지만 더 흐려지기 전 어루만지고 다듬어 골격 단단한 쇠사슬의 기억을 내놓는다. 이것은 솔직담백한 인생사의 고백이며 마음의 테두리를 벗어난 해방구다. 신(神)이 있다면 부여했을 운명, 최선을 다해 살아냈을 뿐이다. 속살을 벗는 순간 내가 아니며, 그 누구도 아닌 또 다른 나의 얼굴이다. 나는 바람 같은 자유인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2023년 봄.

 

시인은 만 4세에 어머니를 잃었다. 이러저러한 사정이 보태져 집안은 풍비박산을 겪었다. 24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여곡절의 가계사가 이어진다. 시인의 희망은 남들처럼 평범한 환경에서 무탈하게 살고 싶은 거였다. 그것조차 순순히 주어지지 않았으나, 그 시간을 무사히 건넌 지금은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시인은 말한다. 자랑스러운 가문의 이야기였다면 스스럼없이 공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가까운 이에게도 말하기 어려웠기에 책으로 엮기까지 심적 부담이 컸다고. 하지만 치열하게 살았고 견디고 이겨내었기에 지금 이렇게, 세상 한편에 글을 내어놓는다고.

“나는 시를 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시를 썼다. 고난을 견디고 고통 속에 허우적대는 나를 치유하여 해방시키기 위해 시를 쓰고 있다. 시는 나의 주치의이며 처방약이다. 시를 쓰는 일은 누가 강요해서도 아니고 내 스스로 강요하지도 않는다. 시가 오면 받아쓰고 오지 않으면 기다린다. 시가 오지 않으면 시가 올 때까지 산문을 쓰며 기다릴 것이다. 생을 마칠 때까지 내가 쓸 수 있는 만큼 형편이 닿는 대로 쓸 것이다. 너무 목숨 걸지 않고 일상을 살듯 시를 쓰는 것 즉 시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다.”―‘시를 쓴다는 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