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이금희 '우리, 편하게 말해요'
[장서 산책] 이금희 '우리, 편하게 말해요'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3.03.27 0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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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해 듣고 할 말은 놓치지 않는 이금희의 말하기 수업

저자 이금희는 말하기를 테크닉이 아닌 태도로 접근하는 독보적인 진행자이다. 1989년 KBS 아나운서에 합격해 <6시 내고향>, <사랑의 리퀘스트>, <파워인터뷰> 등과 같은 굵직한 프로그램들을 거치면서 KBS 간판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특히 18년간 <아침마당>의 진행과 10여 년간 <인간극장>의 내레이션을 통해 프로그램의 색깔을 만든 아나운서로 시청자들의 뇌리에 남았다. 숙명여대 미디어학부에서 겸임교수로 1999년부터 22년 6개월 동안 말하기 수업을 해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생각하는 바를 편안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책이라는 방식으로만 전할 수 있는 격려를 담아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준 적 없는 말하기의 태도와 기술을 공개하고 있다.

목차는 ‘1장 잘 듣는 것만으로도, 2장 말을 이해한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 3장 때로 작은 구원이 되어, 4장 말하기를 제대로 배운 적 없기에’로 구성되어 있다.

1. 잘 듣는 것만으로도

말을 하려면 먼저 들어야 해요. 잘 듣지 않고 말을 잘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영어를 배울 때 어떻게 했는지 떠올려보세요. 알파벳을 외우고 단어를 익힌 후에 문장을 만듭니다. 스피킹(Speaking)을 하려면 리스닝(Listening)부터 해야 했죠. 제대로 들어야 제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말을 할 때 우리는 잊어버립니다. 제대로 들어야 제대로 말할 수 있다는 명제를요. 우리말이든 영어든, 아니 모든 언어가 그렇습니다. 잘 듣지 않고 말을 잘할 수는 없습니다. 혼자서 되뇌는 모노드라마, 연극의 독백이나 방백이 아니고서는 ‘먼저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슨 말을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죠. 상대와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알 수가 있고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사이좋은 친구나 가족도 늘 그러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귀를 열어 이야기를 듣는 것은 관계의 시작이자 끝일지도 모릅니다. 사적인 관계뿐 아니라 공적인 관계에서도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은 좋은 관계의 첫걸음입니다. 게다가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신뢰감이 절로 생기거든요.

말을 잘 듣고 나서야 당신은 말을 잘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하는 말이 곧 당신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도 말했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요. 당신의 집은 어떻습니까.(18~23쪽)

2. 낮게 천천히

높게 빠르게 말을 하면 발랄하거나 귀엽게 보이지만 신뢰가 가지는 않습니다. 뉴스를 볼까요. 신뢰감의 대명사인 앵커는 남녀 구분 없이 낮은 톤으로 힘을 주어 말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 중에서 어쩐지 믿음이 가는 사람을 떠올려보세요. 열이면 열, 천천히 말할 겁니다. 그러니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면 지금부터 연습해보세요. 살짝 낮은 톤으로 조금 천천히 말하기!(45쪽)

3. 발표는 기 싸움입니다

여러분, 발표는 결국 기 싸움입니다. 사람이 10명이든 100명이든 나와 그 사람들 간의 기 싸움이에요.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순간부터입니다. 사람들의 기에 눌려서는 안 됩니다. 초반에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면 제일 좋지요.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절대로 풀이 죽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자신감 있게 시작해야겠지요. 자신감은 어떻게 생길까요? 답은 한 가지, 연습입니다. 어느 뮤지컬 배우는 노래 한 곡을 만 번씩 불러본다고 합니다. 100번, 천 번, 만 번을 부르고 나면 이런 마음이 든답니다. ‘빨리 무대에 올라서 이 노래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또 다른 사례는 <개그 콘서트>입니다. 출연하는 개그맨에게 살짝 여쭤봤어요. 도대체 연습을 몇 번이나 하느냐고요. 코너마다 다르지만 100번에서 200번을 한다더군요.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하면 어찌 될까요. 대사를 잊어버리면 어떡하나, 걱정할 겨를도 없이 조건반사처럼 입에서 대사가 술술 나옵니다. 뇌에 저장하는 게 아니라 세포에 새기는 느낌입니다.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봤던 건 남들을 웃게 하는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남들을 웃게 하려고 수백 번씩 준비한 노력이었던 셈입니다. 노력만이 기 싸움에서 승기를 잡게 합니다.(225~228쪽)

4. 문장을 쓰지 마세요

팀 발표에서는 여럿이 호흡을 맞춰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요. 그럼 개인 발표에서는어떨까요. 물론 연습이 중요합니다. 연습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제일 안 좋은 방법은 말할 내용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쓰는 겁니다. 그리고 그 원고를 그대로 외는 겁니다. 그것은 말하기가 아니라 읽기입니다. 이렇게 준비하는 사람은 대개 말에 자신이 없어서 글에 의존하는 겁니다. 당연히 제대로 읽기도 어렵습니다. 남들 앞에 서서 입을 여는 것 자체가 힘든 사람일 테니까요. 게다가 말하기와 읽기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말을 할 때는 화자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몰두와 흥미를 부르죠. 그러다 말하는 사람의 기운과 에너지가 조금씩 떨어지면 듣는 이의 집중과 재미도 조금씩 떨어집니다. 그만큼 말하기에는 크고도 지속적인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읽기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몇 배는 될 겁니다. 읽기에는 에너지가 별로 필요하지 않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크고도 오래가는 에너지를 전달해 사람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까요. 그런 말하기는 어떻게 연습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연습 방법은 바로 단어를 문장으로 만들기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할 말을 문장으로 쓰지 말고 단어로만 써보세요. 키워드라고 할까요. 핵심 단어만 쓰는 겁니다. 1분 동안 말을 해야 한다면 세 단어만 써놓고 머릿속으로 단어와 단어를 연결해가면서 말해보세요.

1분은 생각보다 훨씬 깁니다. 평소 말하기에 자신 있는 분이 아니라면 단어 하나에 문장 하나 정도, 그러니까 3~4초 말하면 다음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문장을 쓰지 마세요. 문장을 쓰면 거기에 의존하게 되고 ‘말하기’가 아니라 ‘쓰기’ 실력만 자라날 뿐입니다. 손으로 쓰거나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지 말고 머릿속으로 써보세요. 말의 흐름을 구상하고 거기서 핵심적인 단어를 세 개 고르는 편이 나을 겁니다. 처음에는 1분을 넘기기가 어렵지만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면 3분쯤은 거뜬히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241~244쪽)

5. 혼자서 해보는 방송

어떤 프로그램을 맡아도 제 몫을 해내는 방송인이 쓴 책에서 읽은 비법 하나를 공유하려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을까, 생방송에서 필요한 순발력을 기를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이런 방법을 고안해냈다고 합니다. 말하며 행동하기, 행동하며 말하기, 자신의 일상을 방송 중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중계하는 겁니다. 1인 방송이나 SNS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연습하기 위해서 그랬던 셈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점심 때 김치찌개를 끓여 먹으려 해요. 그럼 그걸 말로 표현하면서 행동하는 겁니다. 냉장고를 열며 말합니다. “오늘 점심 메뉴는 김치찌개입니다.” 김치 통을 꺼내며 말합니다. “찌개를 끓이기에는 갓 담근 김치보다 약간 신 김치가 제격인데, 어느 정도 익었을까요?” 김치 통 뚜껑을 열면서 말합니다. “아, 안타깝네요. 신맛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런대로 만들어보죠, 뭐.”

이렇게 해서 김치찌개를 끓여 식탁에 올리고 밥통에서 밥을 푸고 수저통에서 숟가락, 젓가락을 꺼내 식탁을 차리는 동안 계속 말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길어야 30분 아닌가 하실지 모르지만, 1분에 우리는 300음절 이상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왜 이런 연습을 해야 하느냐, 묻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말을 하기 위해서,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입술을 비롯한 근육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 마음을 풀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으로 말을 해야지 생각한다고 곧바로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게 아닙니다. 주말 내내 말을 하지 않고 월요일에 출근하면 “좋은 아침! 안녕하세요!”하는 인사조차 잘 나오지 않던 경험, 있지 않나요.

말을 잘하기 위해, 말에 부담감을 덜기 위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순발력을 키우기 위해 이렇게 중계를 해보는 겁니다. 초보일 때는 줄이는 건 쉽지만 늘리는 건 어렵습니다. 숙련된 후에는 늘리는 건 쉽지만 줄이는 게 어려워지죠. 말을 줄이기가 쉽지 않네, 느낄 정도로만 말을 많이 해보세요. 혼자서라도, 말이 어렵지 않게 느껴지도록 연습해보세요.(271~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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